아빠의 발레파킹(Valet parking)

아빠가 좋아지기 시작한 순간

by 기꺼움

서준아, 안녕!


우리 오늘 아침 정말 바빴지? 엄마에게 아침 시간은 일분일초가 아쉽단다. 눈을 뜨자마자 일단 회사에 갈 준비를 해. 그리고 누나를 깨워 학교에 보내고,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서준이를 재촉해 아파트 지하에 주차된 꼬마차 모닝에 타면 8시 30분! 서둘러 가도 회사에 도착하면 시계는 8시 53분 이쪽저쪽을 가리키지. 유독 차가 더 막히는 날에는 57분을 넘기기도 해. 그런 날에는 주차할 공간을 찾는 일도 버거워.




그럴 때 쓰는 아빠 찬스(발레파킹 서비스)! 도착할 즈음 서준이는 회사에 출근해있는 아빠에게 전화를 하지(엄마와 아빠는 부서는 다르지만 같은 건물에서 일하니까). "아들이 도착했습니다." 서준이 연락을 받고 주차장에 나와서 기다리는 아빠와 바통 터치를 한 뒤, 정신없이 사무실에 올라오면 엄마는 9시에 출근할 수 있지. 그동안 아빠는 적당한 장소를 찾아 주차하고 서준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줄 테고.


엄마는 아빠를 좋아해. 너희를 돌보는 일 대부분은 엄마의 몫이지만(아빠 생각은 다를 수 있음), 엄마가 지치거나 다급한 일이 생기면 어느새 나타나 힘든 일을 해결해주고, 마음을 다독여주거든. 그런 면에서 아빠의 타이밍은 10년 전부터 아주 탁월했지.


회사에서 같은 대학을 나온 선후배 모임이 있던 날이었어. 지독하게 길 눈이 어두운 엄마는 그날 역시 헤매고 말았어. 하필 핸드폰 배터리도 없어서 난감했지. 근데 말이야. 아빠는 엄마가 어느 방향으로 걷고 있을지 가늠해서 기어코 엄마를 찾아낸 거야. 골목 끝에서 환하게 웃으며 걸어오던 아빠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 얼마나 반갑던지. 아빠가 좋아지기 시작한 순간의 이야기란다.




엄마는 오늘도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면했어. 서준이는 아빠 품에 안겨 어린이집에 들어갔겠지? 아빠한테 안긴 서준이 표정을 못 봐서 아쉽다. 행복한 기분을 감추지 못해 슬며시 처지는 눈꼬리와 배시시 웃는 입은 정말 사랑스러운데. 그런 너를 상상하며 엄마의 눈과 입은 덩달아 웃는단다. 우리 내일도 아빠 찬스 쓸까?


2019년 뜨거운 여름을 통과하며 아이들에게 매일 쓴 편지를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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