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쓰는 삶

playlist, 편지_아이유 <원곡, 김광진>

by 기꺼움


말로 하지 못하는 말들이 많은 나는 편지를 좋아한다. 그건 아주 어린 시절부터다. 좋아하는 아이에게 편지를 썼고, 태권도 학원에 계속 다니고 싶다는 바람도 장문의 편지로 대신했다. 편지를 좋아하던 소녀는 이제 어른이 되었고, 여전히 편지를 쓴다.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고, 층간 소음으로 인해 죄송한 마음까지도 편지에 담는다. 말보다 글이 편한 사람이라는 걸 서서히 깨닫는 중이다.



다정한 편지를 쓰다.


말이 글이 되고, 글이 편지가 되면 평범한 말들도 다정해진다. 퇴근길 상대를 떠올린 사실을 편지로 쓴다면 이런 문장이 된다. “어스름한 저녁노을을 보며 퇴근하는데 문득 네 생각이 났어.” 이처럼 풍경과 생각을 편지에 담으면 온기를 갖게 된다. 말이 글이 되려면 오래 품어야 하니까. 말이 편지가 되는 과정을 떠올리면 쿠키 반죽이 생각난다. 반죽이 오븐에 구워져 따끈한 쿠키가 되어 나오는 모습과 닮았다. 쿠키가 익어가면서 고소하고, 달콤한 향기를 풍기듯이 말이 편지가 되면 다정함을 자아낸다.


진솔한 편지를 쓰다.


말보다는 글을 쓸 때 솔직해진다. 왜 그럴까? 말은 끊임없는 상호작용이다. 내 말 끝에는 대답이 걸린다. 서운함을 토로하는 것도 사랑을 고백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반응을 빠르게 마주하는 게 두렵다. 진솔한 말을 꺼내기 망설여지는 이유다. 편지는 조금 다르다. 편지에 쓰인 마음은 천천히 닿고, 답도 아주 천천히 온다. 내가 당신을 많이 사랑하고 있음을 용기 내 전할 수 있다. 설령 거절을 당한다고 해도 편지가 오가는 시간이 상처를 무디게 한다.


기억을 담은 편지를 쓰다.


두 아이가 어릴 적에 각자의 이메일 계정을 만들었다. 처음으로 이유식을 먹었던 날, 처음으로 걷게 된 날, 처음으로 말을 했던 날. 그날 느꼈던 기분을 그대로 담아 편지를 보내 두었다. 아직 읽히지 않은 편지가 아이들 이메일 계정 안에 있다. 당시의 엄마가 아니라면 들려줄 수 없는 이야기를 읽게 될 아이들을 상상하면 웃음이 난다. 작은 타임캡슐을 품고 있는 기분이 된다. 어린 엄마가 썼던 편지를 그 나이가 된 아이들이 읽으면 어떨까? 아이들에게 메일 계정을 공개할 시기를 고민하며 미소 지을 수 있는 것도 모두 편지 덕분이다.




오늘도 나는 짧은 편지를 쓴다. 다정한 말이, 진솔한 말이, 오래 기억될 말이 글이 되고 편지가 된다. 편지 한 통이 우리의 삶을, 우리의 하루를 한 뼘 더 따뜻하게 채운다.




https://www.youtube.com/watch?v=sJ8tkaR2-c4&list=PLa8akc3Kuq33a7MO4-EKyteKYhK4syw_c&index=2&t=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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