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열 살이 된 딸은 영어를 전혀 모른다. 알파벳은 알겠지 싶지만 그도 확신할 수 없다. 교과과정상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를 배운다고 하니 올해부터 학교에서 영어를 공부하게 되겠지, 생각하고 있다. 사교육이나 선행학습의 필요성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하는 학습지를 제외하면 학원 등 교육적인 부분에는 다소 무관심한 편이다.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가끔 또래 아이를 가진 엄마들을 만나면 마음이 요동치곤 한다.
# 2
영어 유치원을 보냈다거나, 매일 원어민과 컴퓨터로 수업을 한다거나 하는 이야기에는 일단 침을 꼴깍 삼키지만, 학교 수업을 토론식으로 진행한다거나, 기본기가 없는 아이들은 주눅이 든다는 이야기에는 맥없이 무너지고 만다.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책을 읽고, 글을 끄적일 시간에 아이들을 위한 교육 정보를 살뜰하게 모아서 뒤처지지 않도록 배움의 기회를 열어줘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은 생각을 낳고, 스멀스멀 죄책감까지 몰려오기 시작한다.
# 3
이럴 때 마음의 균형을 잡으려면 나만의 교육관을 가질 수 있게 도움을 주었던 책 속의 문장들을 떠올려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궁합이 있듯이 사람과 책 사이에도 궁합이 있다고 믿는데, 수많은 육아서 속에서도 나와 맞는 작가의 책들이 하나 둘 책장에 채워지는 것을 보면서 문득문득 실감하곤 한다. 요즘 읽는 오소희 작가의 『엄마의 20년』(수오서재, 2019)이라는 책 역시, 기대고 의지하고 싶은 문장이 많았다.
엄마가 베이커리를 배우면 아이는 빵을 많이 먹으며 자랄 것이고, 엄마가 노래를 배우면 아이는 엄마의 흥얼거림을 따라 하며 자랄 겁니다. 엄마가 노력하는 동안, 아이는 그 일부를 자기 세계에 하나씩 가져가는 것이죠. 그거면 충분합니다. 엄마가 아이의 세계를 전부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 아니에요.(63쪽) - 오소희 『엄마의 20년』(수오서재, 2019)
# 4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일상의 사소한 부분은 물론이고, 가정과 직장에서의 크고 작은 질문 앞에서 최선이라고 믿는 것을 택하며 나아간다. 나 스스로의 거취에 대한 결정은 오롯이 내가 책임질 수 있기에 크게 겁나지 않는다. 그러나 엄마로서 해야 하는 결정 앞에서는 항상 흔들린다. 내 존재 이상으로 귀한 아이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기에 두렵고, 걱정스럽다.
# 5
수많은 변수가 작용하는 삶에서 오늘의 선택이 미치는 결과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정답이란 건 애초부터 없는지도 모른다. 모두 자신이 옳다고 택한 일에 의미를 찾으며 걸어가는 것뿐이니까. 유독 인적이 드문 길에서 끊임없이 울렁이는 마음을 잡으려면 먼저 걸어간 이들의 경험이 담긴 책을 손에 꼭 쥐고 가야 한다. 가로등 불빛조차 없는 시골길에서 손전등을 들고 걷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