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겨울 초입에 찾았던 제주의 감귤 따기 체험 농장이 떠올랐다. 바람은 잦아들고, 화창해진 날씨 덕분에 모두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노동이 아닌 체험으로서의 농사는 설렘투성이다. 한 손에는 바구니, 한 손에는 쪽가위를 쥔 아이들의 양손이 바빴다. 바구니를 채우기도 전에 귤을 먹느라 작은 입 또한 쉴 틈이 없었다. 선명한 하늘빛과 샛노란 귤빛은 눈이 부셨고, 귤나무 사이에서 톡톡 나타나는 아이들은 예뻤다.
# 2
김성라 작가의 『귤 사람』이란 그림책을 읽었다. 제주가 고향인 작가가 12월이 되어 귤을 따러 가는 이야기를 그린 책이다. 이른 새벽 과수원으로 출발해 종일 귤을 딴다.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하기 전에 국수를 후후 불어 먹고, 읏차읏차 체조하는 그림들이 눈에 들어온다. 수많은 나무에 총총 박힌 귤들이 귀엽다. 그림 속 말풍선에는 제주 사투리가 그대로 담겨있고, 각주에서 표준어로 풀어놓았는데. 제주 방언은 글로 보아도 알아채기 어렵구나, 싶었다.
# 3
경험에 책을 더하면 새로운 기억이 된다. 감귤 따기 체험의 낭만적인 순간들에 그림책 속 농부들의 땀방울이 더해지면서, 귤에 담긴 고됨과 정성을 귀하게 품게 된다. 귤 한 알 한 알이 어쩐지 소중하다. 함께 읽은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말풍선 속에 제주 사투리는 저희가 읽겠다며 더듬더듬 낭독했고, 생소한 단어와 문장에 신기해했는데. 어떤 모양의 생각이든 제주에 대한 또 다른 기억이 한 겹 더해졌을 거라고 짐작한다.
# 4
파스텔톤의 따듯한 그림만큼 엮인 문장도 폭신하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진 라디오에서는 종일 겨울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햇볕이 따스한 날에도, 쌀쌀해 발가락이 시려운 날에도' '실은 나도 모르게 천천히 따뜻한 곳으로 가고 있는 계절. 겨울을 좋아한다'이런 문장들을 모아 놓고 앉아 있으면 손이 시리지 않을 것 같다(작은 모닥불 앞에 앉아 있는 것처럼). 심지어 추천사까지 훈훈하다. 겨울을 보내며, 봄을 기다리기 딱 좋은 책이다.
귤을 많이 먹으면 손톱과 손바닥이 노래지듯, 눈에 띄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귤처럼 매일 익어 간다. 별, 비, 바람을 맞으며 오늘의 무늬 완성한 당신에게 잘 익은 걸로 한 알 건넨다, 귤. - 김성라 『귤 사람』(사계절, 2020) 오은 시인 추천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