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list, 당신은 참_성시경
글쓰기라는 취미 생활은 겉으로 보기엔 고요하고, 정적이지만, 실제로는 에너지가 꽤 많이 드는 일이다. 우아한 백조의 필사적인 발버둥이라고 해야 할까? 글을 쓰는 일상을 꾸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감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전적인 의미로 감성이란 자극이나, 자극의 변화를 느끼는 성질을 뜻하는데 실제로도 감성이 깨어 있어야 글감을 찾는 일도, 문장을 엮어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일도 수월해진다. 글을 쓰는 자아가 가뭄에 시달리지 않도록 늘 촉촉한 상태를 유지해야 할 책임감을 느끼는 요즘이다.
하루 내내 감성을 유지하기 위한 나만의 의식은 이렇다.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 준비를 하며 시요일을 듣는다. 시요일은 시인이 직접 시를 낭독해주는 콘텐츠이다. 잔잔한 음악에 맞춰 활자가 춤을 춘다. 커피 향을 맡듯 시어의 향을 음미한다. 음악을 많이 듣다 보면 좋아하고, 자주 듣는 곡이 생기는 것처럼 ‘시’ 역시 그렇다. 내 마음과 결이 맞는 시인의 시를 듣고 또 듣는다. 요즘 나는 안희연 시인에게 푹 빠져있다.
30분가량의 출근 시간, 차 안에서 클래식 FM을 듣는다. 귀에는 설핏 익숙하지만 소리 내서 이름 불러주지 못할 클래식 음악들을 듣는 시간이다. 비록 차이콥스키의 곡과 바흐의 곡을 구분하지 못하지만, 선율은 풍경이 되고 마음은 편안해진다. 그거면 충분하다. 8시 45분 전후로 DJ가 ‘보통의 아침’이라는 에세이를 읽어주는데, 짧은 에피소드에 담긴 메시지는 생각거리를 건네준다. 담백하고 따듯하게 글을 풀어가는 방식에 마음을 기울인다. 예전 같으면 흘려 들었을 문장을 유심히 듣고, 글 전체의 구조를 가늠하면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면 감성은 잠시 접어둔다. 이성적인 글쓰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글 파일을 열고 뭔가 쓴다는 행위는 같지만 작성되는 글의 방향은 판이하게 다르다. 종일 앉아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보고서를 완성하는 게 일이기 때문에 내 취미 생활을 직장 동료들이 안다면 놀랄 게 분명하다. 그렇게 쓰고 또 쓰세요? 묻겠지. 최근에는 일을 할 때 집중력이 높아졌고, 퇴고도 더 많이 한다. 국어사전을 검색하며 적절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지도 확인한다. 취미로 글을 쓰면서 글에 향한 욕심이 생기고, 덕분에 업무 능력도 나아지는 중이라고 감히 믿고(?) 있다.
퇴근 즈음이면 확실히 지친다. 매일 글을 쓰느라 새벽 공기를 느끼며 잠들기 때문일까? 피곤한 눈을 끔벅이며 아이를 데리러 간다. 아주 가끔은 증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흠칫 놀란다. 그래도 헤실헤실 웃는 아이를 만나면 없던 기운이 생긴다. 아차, 감성이 마르기 전에 물을 뿌려줘야지. 나만의 글쓰기는 이제 곧 시작이니까. 여섯 살 아들과 하루 이야기를 나눈다. 상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아이의 말은 언제나 반짝인다. 함께 해가 지는 하늘을 보고, 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날리는 것을 본다. 어스름해진 저녁, 손톱달을 보며 감탄한다. 날이 좋으면 아이와 산책을 나선다. 겉옷을 챙겨 입고 알맞게 쌀쌀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걸으면 절로 개운해진다. 아이들이 잠들기 전 함께 그림책을 읽는다. 그림을 더 자세히 보고, 문장을 또박또박 정성껏 읽는다. 그림책 속의 이야기가 글감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략 이렇게 나만의 작은 의식을 챙기며 하루를 보내고 나면 하고 싶은 말이 문장이 되어 조금씩 흘러나온다. 그럼 그제야 나는 밥을 짓 듯 글을 짓는다. 언젠가 고슬 거리고, 윤기 나는 글을 짓고 싶은 마음을 담아 오늘은 감성 발라더 성시경의 노래를 플레이해야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vf56Hk_l2qw&list=PLa8akc3Kuq30ShadpFE1DgG-RXrfpERYF&index=2&t=73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