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한 겨울

playlist, 겨울에 누워_강아솔

by 기꺼움




가을인가 싶더니 겨울이다. 점심에는 뜨끈한 알탕을 먹었다. 주파수가 잘 맞는 선배와 함께였다. 선배는 광역수사대 형사다. 몇 년째 새벽 수영을 꼬박꼬박 다닐 만큼 운동을 사랑하고, 술도 멋지게 즐긴다. 춤, 노래 등 뭐든 배우는데도 열심이다. 아이는 셋인데 중학생인 첫째는 독립적이고, 자기 꿈이 확고하다(엄마를 꼭 닮았다). 이에 비해 나는 전형적으로 내향성이 높은 사람이다. 운동은 해야 할 때만 겨우 하고, 술은 그저 좋아만 한다. 새로운 걸 배우는 것보다 책을 읽고 생각하는 것을 선호한다.




각자가 지닌 성품이 다름에도 선배와 나 사이, 퍼즐이 맞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 안에 있다. 나는 선배가 품은 내면의 견고함을 알아채는 사람이고, 무엇보다 거기에서 나오는 깊은 사유를 좋아한다. 말이 되어 나오는 선배의 통찰을 집중해서 듣고, 내 견해를 보태 정리하는 것으로 세심하게 반응한다. 대화가 끝날 즈음엔 마치 책을 한 권 읽은 듯이 쾌감이 느껴지고, 생각은 한 뼘 자란다.


오늘은 공감에 관한 선배만의 정의가 기억에 남는다. 몸이 아플 때, 가령 뼈가 부러진다던가 하면 병원에 가서 고칠 수 있다. 그런데 마음의 병은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누군가 내면의 아픔을 꺼내 놓았을 때 그걸 제대로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 접점에서 상처는 치유된다. 그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마음의 병이 나을 수 있으니, 공감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하는 이야기였다. 향이 진한 아메리카노와 갓 구운 치아바타를 앞에 두고 오가는 이야기에는 타인이 없다. 들은 말도, 뱉은 말도 단단하다.




선배와의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며, 함께 글을 쓰는 모임을 떠올렸다. 필명을 쓰는 데다 얼굴도 알지 못하는 이들과의 온라인 모임이다. 비록 겉모습을 마주하지 않지만, 우리는 글로 통해 생각과 감정을 나눈다. 내면에서 길어 올린 말이 글이라는 형태가 되어 서로에게 닿는다. 각자의 쓰는 자아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독자를 얻은 글은 비로소 완성된다. 단순히 함께 글을 쓴다는 행위를 넘어 삶을 응원하고, 상처를 회복하는 일이다. 나의 글과 당신의 글이 만나 우리의 하루를 버티게 하는 것이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도 마음의 기온은 떨어지지 않는다. 온난한 겨울*이다.


* 김금희 작가의 『나는 그것에 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마음산책, 2018)』라는 소설집에 담긴 「온난한 하루」라는 단편소설 제목의 영향을 받아지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GMkt8B47ms&list=PLa8akc3Kuq33JPCEhlQtSWvZmnc56WyMf&index=2&t=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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