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걸음이 아쉬웠던 겨울은 못다 한 이야기를 하듯 눈을 쏟아냈다. 어린이집에서 나오는 아이들은 폴짝폴짝 뛰었고, 어른들도 퇴근길 걱정은 제쳐두고 커다란 창 앞에 서서 떨어지는 눈과 하원하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첫눈 오면 만나기로 했던 날들을 회상했고. 또 누군가는 이 눈이 쌓여서 아이와 눈썰매를 탈 수 있기를 고대했다. 나는 눈은 반기는 말들 틈에서 몇 번이고 웃었다.
# 2
오후 여섯 시, 문을 밀고 밖으로 나오는데 날선 바람이 훅 불어왔다. 쨍하게 싸늘한 바람에는 봄이 숨어 있었고, 어쩐지 겨울이 건네는 마지막 인사 같아 슬펐다. 백설기 가루처럼 흩날리는 눈은 봄의 기운에 금세 녹아버렸다. 자동차 창문에는 낮 동안 내린 눈이 얇게 얼어서, 히터를 틀고 와이퍼를 켠 채로 운전했다. 창문에 눈이 녹으면서 선명한 풍경과 반짝거리는 간판 여럿이 또렷하게 보였다.
# 3
스마트폰에서 문학평론가가 낭독해주는 소설이 흐르고 있다. 수십 번을 들었지만 들을 때마다 아득해지는 문장이다. 너무 좋아서 이제는 외워버린 문장들을 조용히 따라가며 이야기에 빠진다. 회사일에서 집안일로 넘어가는 시간 짧은 휴식이다. 현실의 나를 잠시 지우고, 소설 안에서 부유한다. 무엇보다 하루의 일들을 되뇌지 않을 수 있어 반갑다. 이미 일어난 일이라면 곱씹고, 후회하며 마음 상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 4
책은 주로 눈으로 읽지만, 때때로 귀로 읽는다. 귀로 읽는 독서는 눈으로 알아채지 못한 문장을 데려온다. 귀를 통해 들어온 문장은 입을 통해 나간다. 외우려 애쓰지 않아도 내 안에 들어온 문장은 소리가 되어서 나온다. "셔틀버스와 버스.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는 길에 여자는 내내 그 문장을 곱씹었다. 단어들만이 순서를 바꾸었다. 도대체 너는 누구였어? 너는 도대체 누구였어? 너는 누구였어. 도대체?"(장강명『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152쪽 중에서)겨울이 쏟아내는 눈을 떠올리며, 아끼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읊조리던 2월 어느 저녁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