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허블, 2019)를 읽고 쓰다.
소피.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9쪽) 작지만 많은 것을 품고 있을 것 같은 짧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편지글은 우리를 어느 마을로 데려갑니다. 그 마을의 성년식은 시초지 지구로 순례를 떠나는 것입니다. 많은 이야기의 처음은 호기심을 발판으로 합니다. 순례자들 중 다시 마을로 돌아오지 않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화자인 데이지의 궁금증은 시작됩니다. 데이지를 통해 마을 탄생의 숨겨진 진실이 서서히 밝혀지게 됩니다. ‘행복하지만, 이 행복의 근원을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는 차별도 배제도 없습니다. 반면 순례를 떠나야 하는 지구는 다르죠. 마을에서 온 순례자들에게 지구는 단절, 배제, 혐오로 가득 찬 곳입니다.
'릴리 다우드나'라는 과학자(끝내 해커가 되는)는 지구를 두 개의 세상으로 나누는 단초를 제공합니다. 인간배아를 디자인해서 양질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탄생시킨 것이 그것이죠. 디자인을 통해 탄생한 완벽한 ‘신인류’, 문제는 이들 개조인들과 열등한 비개조인 간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게 된다는 점입니다. 꿈꾸던 유토피아는 없음을 깨닫게 된 릴리가 자신의 딸 올리브(인간배아 디자인 실패작)를 위해 마을을 만들게 됩니다. 이곳은 결함이 결함으로 여겨지지 않는 평화로운 마을이지만, 단 한 가지 여기에서는 서로가 사랑에 빠지지 않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나눌 수 없는 마을. 순례자들이 마을로 돌아오지 않는 이유의 실마리는 ‘사랑’에 있었습니다. 지구를 순례하던 중, 단 한 사람으로 충분한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서 끝내 지구에 남기로 결심하게 되는 것이죠. ‘사랑하는 존재가 맞서는 세계를’ 함께 맞서기를 감내하는 이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유토피아를 생각했습니다. ‘유토피아’는 이상적인 국가를 말하며, 16세기 르네상스 시대를 배경으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상상하며 묘사한 토마스 모어의 소설 제목이기도 합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그곳, 유토피아란 결국 궁극의 이상일뿐이고,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반대급부는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개조인들의 사회 이면에 비개조인들의 팍팍한 삶이 있었듯이 말이죠. 그러다 문득 사랑에 대한 단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유토피아는 실존할 수 없지만(릴리 역시 유토피아를 만드는데 실패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밥을 먹고, 대화하고, 어루만지는 순간만큼은 그곳이 어디든 유토피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시초지 지구에서 단 한 사람과의 사랑(그것의 형태나 방식을 불문하고)으로 유토피아를 경험한 순례자들은 지구에 남는 것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그 혹은 그녀가 없는 곳은 분명 상실과 슬픔이 가득할 테니까요.
이제 눈을 감고 나의 한 사람을 떠올려봅니다. 저의 삶에도, 당신의 삶에도 유토피아라고 느낄 만큼 안온한 사랑이 존재하기를 바라고 싶어 지는 새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