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손을 내밀어. 내가 그 손을 잡을게

기꺼운 독서일기 열둘

by 기꺼움

# 1


코로나로 인해 흐트러진 일상을 또 다른 일상으로 여기며 견디는 날들이다. 당장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지만 모든 것을 멈출 수 없으니 천천히 굴러가는 중이다. 첫째는 친정에 맡기고 둘째는 긴급 보육을 신청해 어린이집에 보낸다. 친정 엄마께도 죄송하고, 어린이집 선생님들께도 죄송하고, 이번 주는 내내 죄송하다는 말을 내려놓을 틈이 없다. 이렇게 주변에 빚을 지면서 오늘의 일상을 영위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일인지 잊지 않으려고 애쓴다.



# 2


엄마 퇴근 시간까지 꼼짝없이 어린이집에 있어야 하는 아이에게 오늘은 아빠가 4시에 데리러 간다고 말하니, 두 손을 모으고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그럼, 4시가 되기를 손꼽아 기다려야겠다." 손꼽아 기다린다는 표현이 안쓰러우면서도 예뻐서 기억해두고 싶었다. 투정 부리지 않고 잘 헤어지고, 하루 끝에 만나도 반갑게 인사해 줘서 아이도 견디는 중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 3


마음이 단단하지 않을 땐 정혜윤 PD의 책을 꺼내 읽는다(종종 소리 내어 읽기도 한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수많은 책과 다양한 작가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수 세기 전의 책부터 동시대를 함께하는 책들까지 그 연결 고리 안에서 부유하다 보면 떨어지는 바닥에 매트리스가 깔려 있을 것 같은 안정감을 찾아온다. 눈앞의 문제에서 벗어나 살아 있는 지금 순간을 응시하게 된다.

우리가 무엇인가 된다는 것은 다시 올 수 없는 시간 속에서다. 신비는 이렇게 현실 속에, 잊을 수 없는 이야기 속에, 잊을 수 없는 미지의 것 속에, 잊을 수 없는 얼굴 속에, 다시 못 올 시간 속에 있다. 흘러가는 시간이 아쉬워져 사물 하나하나를 자세히 바라보고 싶다. 모든 살아 있는 것을 느끼고 모든 살아 있는 것을 소중히 사랑하고 싶다.
- 정혜윤 『뜻밖의 좋은 일』(창비, 2018) 285~286쪽 중에서



# 4


안개가 언제 걷히게 될지, 아무것도 기약할 수 없다. 평범해서 지루했던 일상이 그리워진지도 오래다. 그러나 자꾸 내 안에 갇히면 나밖에 볼 수가 없다. 각자의 일상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지금을 견디고 있을 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무게의 시간을 버티고 계신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행동해야지. 이토록 평범한 진리를 책을 읽고서야 겨우 깨닫는다.

"네가 힘들면 나에게 손을 내밀어. 내가 그 손을 잡을게." 그렇다. 나는 믿을 만한 손을, 사랑하고 사랑받고 사랑을 줄 줄 아는 손을, 결코 놓지 않는 꽉 잡은 손들을 긍정한다.
- 정혜윤 『뜻밖의 좋은 일』(창비, 2018) 302~303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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