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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Jun 13. 2016

부잣집 도련님은 어쩌다 자경단-배트맨이 되었나?


시작하며

흔히 배트맨-브루스 웨인의 정신을 결정한 가장 큰 사건은 부모의 사망으로 설명된다. 그가 배트맨이 된 이유, 그가 (권)총류의 장비들을 피하는 이유도 모두 부모가 사망한 것에과 관련이 깊다.


나는 요즘 <미움받을 용기>를 다시 읽고 있는데, 배트맨의 이런 성격 결정은 다분히 프로이트적-결정론적이긴 하다. 과거에 그런 경험을 했으니 이렇게 되는 건 당연하다는 식이다.  


작가들이 <미움받을 용기>에서 설명하는 아들러식의 심리학을 지지하는 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아들러식으로 배트맨의 성격을 푼다면, 브루스 웨인은 그저 과거에 얽매여있는 찌질한 인간, 아니 평범한 우리의 모습과 꽤나 닮아 있기도 하다.


이런 지점에서 브루스 웨인 부모의 죽음을 한번 다뤄볼까 한다. 참고로 배트맨 세계관을 다루는 작품들은 거의 대부분이 브루스 웨인 부모의 죽음을 다룬다. 하지만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같은 부분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다. 살인을 당하는 장소는 거의 매번 극장가 거리로 동일하지만, 살인마는 다르고, 부모의 죽음에 대응하는 브루스 웨인의 태도도 제각각이다. 권총을 쓰는 배트맨도 있으니까.


이 글에서 다룰 배트맨 세계관은 팀 버튼의 <배트맨>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게임 <아캄 시리즈>, 잭 스나이더의 <배트맨 v 슈퍼맨>이다. 스포 주의하시기 바란다. 다 쓸 거다. 그리고 슈마허는 개객끼다.




부모의 죽음은 브루스 웨인에게 어떤 영향을 줬나?
고담에 대한 인식(1)

브루스 웨인은 부모의 죽음을 통해 많은 것을 느낀다. 그중 하나가 사회에 대한 생각이다. 그는 부모의 사망을 겪은 뒤 여러 경험을 하며 사회가 범죄에 물들어 있고, 썩지 않은 곳이 없다는 판단을 내린다. 그는 자신이 겪은 고통을 다른 이들이 또 겪지 않기를 바라면서 자경단 활동을 시작한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

이것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에 잘 드러난다. 브루스 웨인은 부모가 죽은 뒤에 마피아 팔코니를 만난다. 팔코니를 만나러간 브루스 웨인은 팔코니에게 붙잡힌 뒤 이런 말을 듣는다. "지금 여기에 경찰과 판사가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너를 지금 여기서 총으로 쏴죽일 수 있다." 이때 브루스 웨인은 고담이 아주 ㅈ되서 법만으로는 범죄들을 처리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법안에서 범죄들을 처리할 수 없으니 브루스 웨인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 뿐이었다. 법 바깥으로 나와서 활동하는 것. 그는 박쥐 얼굴을 한 자경단이 된다. 박쥐의 공포를 범죄자들이 느끼게해서 범죄자들을 사라지게 만들겠다면서. 


미드 <고담>의 제임스 고든

고담의 망한 법과 제도는 미국 드라마 <고담>에도 비슷하게 등장한다. <고담> 시즌1을 보면 경찰들은 썩을 대로 썩어있고, 판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시즌1의 메인 스토리는 젊은 제임스 고든이 그 썩어빠진 고담경찰청(GCPD)을 정화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어느정도 정화에 성공한다. 배트맨은 아직 등장하지도 않았는데!


<고담>에서 브루스 웨인은 아직 학교를 다니는 꼬맹이다. 그리고 세상에 대해선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이 드라마에서 부잣집 도련님 브루스 웨인에게 고담의 거친 생활을 알려주는 역할로는 홈리스 셀리나 카일이 등장한다. 후에 셀리나 카일은 캣우먼이 된다. 캣우먼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3부작 중에선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여기에서 배트맨을 각성시키는 역할로 등장한다.


불살주의(2)

악한 자는 죽여도 되는가?는 여전히 논쟁적인 이슈다. 나는 사형제를 반대하는 사람 중에 하나이지만, 여전히 한국에선 사형제를 옹호하는 사람이 많고, 해외에도 사형제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많다(한국은 사실상 사형제 폐지 국가다). 히어로 중에서도 악한 자들을 살인하는 유형의 히어로들이 있는가 하면, 살인을 하지 않는 히어로들도 있다. 예를 들어 미드 <데어데블>의 데어데블은 살인을 하지 않는 히어로다. 반면 같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퍼니셔는 악당들을 살인을 해야한다는 주의다. 범죄를 완전히 끝내려면 죽여야한다는 게 퍼니셔의 입장이다. 그래서 데어데블은 곤봉이 주력 무기이고, 퍼니셔는 총을 쓴다.


배트맨 역시 악당을 죽이지 않는 결심을 하는 히어로로 유명한데, 이는 세계관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가 있다. 팀 버튼의 <배트맨>에선 딱히 불살주의에 관한 논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배트맨은 악당들의 본거지에 수류탄을 날리기도하고, 배트윙을 몰고 조커에게 총을 난사하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자신의 부모를 죽였다는 이유로 조커를 높은 건물에서 떨어뜨린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3부작으로 오면 불살주의에 대한 논의가 보인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브루스 웨인의 부모를 죽인 건 <배트맨>(1989)처럼 조커가 아니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브루스 웨인의 부모를 죽인 건 뭔가 허당같은 듣보잡 깡패 '조 칠'이다. 


조 칠


체포된 조 칠은 법정에서 판결을 받는데, 브루스 웨인은 권총으로 그를 저격하려 한다. 하지만 브루스 웨인은 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그의 변호사 여자사람친구인 레이첼 도스에게 '그 놈을 죽이려고 했다'라는 사실을 고하면서 권총을 보여주는데, 이 때 레이첼 도스의 불꽃 싸닥션을 맞는다. 레이첼은 '니만 존나 힘든 거 같냐'면서 빈민가에 그를 데려가고, 좀 뒤에 브루스는 마피아 보스 팔코니를 만난 뒤에 총을 버린다. 총을 버린다는 건, 살인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미드 <고담>의 브루스 웨인
미드 <고담>의 매치스 말론

미드 <고담>에서 브루스 웨인의 부모를 죽인 인물은 시즌2에서 밝혀지는데, 그의 이름은 '매치스 말론'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에서 '조 칠'은 뭔가 아마추어같은 강도였지만, <고담>의 '매치스 말론'은 전문적인 히트맨이다. 브루스 웨인은 그를 만나고 '왜 나의 부모님을 죽였냐'면서 캐묻다가 권총을 그의 이마에 들이댄다. 하지만 결국엔 총을 거두고 총을 매치스 말론 앞에 던져두고 집 밖으로 나온다. 


매치스 말론은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브루스 웨인의 부모를 죽였는데, 누가 사주했는 지는 밝히지 않은 채, 브루스 웨인이 버리고 간 총으로 자살을 한다. 이 장면은 어린 브루스 웨인이 불살주의를 선택하는 장면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는 악당들을 죽이지 않을 것이다. 불구로는 만들어도


사족, 매치스 말론은 코믹에서 배트맨의 위장신분으로 활용된다. 배트맨은 마피아 조직원 중 한명인 매치스 말론을 반강제적으로 자신의 '작은 새'로 삼지만, 조직간의 경쟁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자 배트맨 본인이 '내가 매치스 말론이요'하면서 직접 매치스 말론이 되어서 마피아 조직에 잠입한다. 그런데 <고담>에서는 매치스 말론이 죽어버렸으니..에......뭐 그렇다. 애초에 <고담>은 미스터 프리즈와 그의 와이프도 배트맨이 아직 등장하지도 않은 시점에서 다 죽였으니. 같은 이름의 인물들은 등장하지만 여타의 배트맨 세계관을 다루는 작품들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관이라고 보면 될 듯 하다. 관련 링크


게임 <아캄 나이트>

게임 <아캄 시리즈>에서도 배트맨은 살인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게임에는 딱히 그가 왜 불살을 하는 지에 대해선 이렇다할 설명이 없다. 그저 살인을 하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가 친절한 영웅이라는 말은 아니다. <아캄 시리즈>의 가장 마지막 게임인 <아캄 나이트>에서 배트맨은 양아치 하나를 잡은 뒤 이렇게 말한다. "정보를 토하지 않으면 너의 모든 뼈를 분질러 버리겠다." 겁을 먹은 양아치는 자신이 아는 것을 말해준다. 원하는 것을 얻은 배트맨은 그의 일부 뼈를 분질른다. 그러니까 배트맨은 사람을 죽이지만 않을 뿐이지 불구로 만드는 것에는 딱히 거부감이 없다고 볼 수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에서도 깡패 하나를 2층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 뜨리잖나? 그런 느낌이다. 


고아라는 정체성(3)

배트맨의 여러 성격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그가 고아라는 것이다. 부모가 살해당하면서 브루스 웨인은 고아가 되었고, 고아에게 특히 관심이 많은 인물이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보면 브루스 웨인이 고아원에 기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사이드킥인 1대 로빈 딕 그레이슨도 고아다. 슈마허(개객끼)의 <배트맨 포에버>에서 1대 로빈인 딕 그레이슨의 부모들은 서커스를 하다 도중에 낙사한다. 이에 브루스 웨인은 고아가 된 딕 그레이슨을 거둔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선 브루스 웨인이 지원하던 고아원에서 성장한 인물 중 하나가 로빈인 것으로 설정된다. 배트맨이 사랑에 빠지는 캣우먼, 셀리나 카일도 고아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 카일은 자살했고, 그의 아버지는 알콜 중독에 빠져있다 세상을 떠났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게 있다. 배트맨이 부모의 죽음을 전혀 극복하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그것에 먹혀있다는 것. 긍정적인 측면만 본다면, 그는 고아들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아빠'의 역할이나 '남편'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리고 부모의 죽음이 없었다면 애초에 그는 배트맨이 되지도 않았을 게다. 


그렇다고 브루스 웨인의 멘탈이 건강한가, 하면 딱히 그렇지는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설정상 그는 어떠한 인간보다도 강한 인내심이나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픽 노블 <파이널 크라이시스>를 보면 '존나 쎈 애들'이 배트맨의 정신을 파괴하려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그렇게 강한 배트맨이지만, 부모 이슈만 나오면 찌질이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배트맨의 크립토나이드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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