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현우 Jun 27. 2016

<유혹의 학교>: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책을 접한 계기

난 사랑에 관한 글들을 자주 읽는다. 사랑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면서 흥미를 끄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친인 이서희(필명)씨가 페북에 쓰는 글도 꽤나 자주 읽었었다. 작가의 책을 구매한 이유는 그녀가 달가워하지 않을 법한 이유다. 나는 그녀가 꽤나 매력적인 여성이라 생각했고, 그런 매력적인 여성들은 어떤 생각으로 사랑을 하고, 또 어떤 경험을 하는 지가 궁금했다. 그게 이 책을 구매한 이유다. 호기심. 아마 책의 제목이 무엇이었건 아마 그녀의 책을 구매했을 게다. 


이런 호기심은 '매력적인 여성은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연애경험을 할 것이다'라는 나의 확인되지 않은 선입견을 전제한다. '매력적인 사람'은 일반적인 사람과 다른 연애를 하고, 또 '매력적인 여성' 역시 일반적인 사람들은 겪지 못하는 이벤트를 겪으리라, 라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딱히 책 때문이 아니라-이런 선입견은 천박한 구석이 없지 않아있다. 세상에 평범한 연애가 어디있나? 각각의 연애나 사랑들은 제각각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 특별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런 나의 생각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과거로 돌아가도 이 책을 샀을 거다. 여전히 특별한 건 특별한 거니까. 


"그녀가 달가워하지 않을 법한 이유"라고 말한 이유는 실제로 그녀가 이 책과 관련하여 비슷한 오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썼던 글을 두고 추론하건데, "너는 이쁘니까 그런 경험을 했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다르다"라는 식의 비판인지 비난인지 조롱인지 뭔지 모를 메세지들을 받은 듯 하다. 나는 그녀의 경험이 궁금했을 뿐인데, 어떤 이들은 그녀가 자신의 경험을 서술한 것을 '잘난 척'으로 본 모양이다. 막상 글을 읽으면 딱히 그녀가 잘난 체하는 느낌은 전혀 없다. 뜨거운 감정을 다루긴 하지만, 그 감정을 서술하는 글은 드라이하고 덤덤하다. 


유혹 아닌 것이 없다.

이 책에서 꽤나 감명깊게 읽은 부분 중 하나는 이 부분이다. 프랑스를 언급하면서 나오는 내용인데, 누군가가 누구를 대할 때 하는 행위가 모두 유혹의 일종이라는 이야기. 이는 우리나라에서 자주 쓰이는 친절이라는 행위와는 대비되는 개념이다. 유혹은 나의 매력을 발산하는 것이지만, 친절은 나의 매력을 발산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상대를 배려하는 행위의 일환이다. 그래서 친절을 베풀기 위해서 때로 자기억압을 하거나 '나'의 정체성을 완전히 죽이기도 한다. 그게 예의고 친절이니까. 그런데 유혹이라는 개념은 다르다. '나'를 온전히 보여서 상대에게 자기 어필을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하지만 상대를 무시하며 오로지 나를 드러내는 방식의 유혹은 실패할 게다. 매력적이지 않으니까. 이렇듯 유혹과 친절은 다른 듯하지만 상대를 배려한다는 점에서 통하는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친절보다는 유혹에 더 마음이 끌린다. 나를 온전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를 죽이면서 상대를 기쁘게 하는 삶의 방식은 매력 없다.


작가, 여성으로서

이 책은 여성으로서 작가의 정체성이 꽤나 깊게 베여있다. 작가는 젊은 여성으로서, 유혹이란 이름이 붙여진 남성폭력의 피해 여성으로서, '너 나이 때는 결혼을 해야한다'라는 압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여성으로서, 그리고 결혼을 한 뒤 한 남자의 부인이 되는 모습을 상상하는 여성으로서, 아이의 엄마로서, 그리고 이혼한 여성으로서 사랑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경험과 함께 서술했다. 흥미로운 점은 내가 여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느낀 감정의 가닥들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는 거다. 한 사람이 사랑받고자 그리고 사랑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공감을 자아내는 모양이다. 작가가 한치의 가식도 없이 진심을 담아낸 결과가 아닐런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유혹의 학교>는 이 질문으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사랑은 이렇게 해야한다"라며 자기개발서처럼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기보다는 "어떻게 사랑해야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작가 역시 사랑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답을 찾아가는 인생이기 때문일 게다. 작가가 가식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고 진심을 담아냈다고 느끼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그녀의 겸손함, 반성하는 태도는 책의 전반에 지울 수 없는 지문처럼 새겨져있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서술한 뒤 독자에게 생각할 꺼리를 남겨둔다. 


하지만 작가가 질문만 던졌다면 내가 애초에 이 글을 쓰지도 않았겠지. 난 M.Scott.Peck(이하 스캇펙)이란 양반을 꽤나 좋아하는데, 그의 저서 <아직도 가야할 길>에 서술된 사랑의 정의나 '무엇이 사랑인가'에 대한 스캇펙의 의견에 꽤나 배울 점이 많기 때문이다. 작가 이서희는 <유혹의 학교>에 <아직도 가야할 길>에 서술된 스캇펙의 사랑의 정의를 인용한다. "사랑이란 자기 자신이나 또는 타인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이다.(Love is the will to extend one's self for the purpose of nurturing one's own or another's spiritual growth)"


작가는 스캇펙 외에도 유명 작가들의 문장들을 인용하지만, 내가 굳이 스캇펙의 문구를 언급하는 이유는 스캇펙의 사랑에 대한 관점이 작가 이서희의 관점과 가장 어울리게 맞닿아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상대를 유혹하고 사랑하는 행위는 마땅히 권장할만하고 나를 확장한다는 점에서 스스로에게 이롭지만, 유혹자는 상대의 상황을 배려하고 선을 넘어도된다는 상대의 암묵적 혹은 명시적 동의 여부를 살펴야한다. 그리고 초록불이 들어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선을 넘을 때 그것은 말그대로 범죄가 된다. 


<유혹의 학교>에는 동의가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남녀간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에서 나오는데, (그녀가 이 단어를 쓰진 않지만)짝사랑을 할 때는 상대의 동의가 필요 없다. 그저 내가 맘껏 사랑을 할 때 그것으로 족하다면 그것도 역시 해볼법 하다. 하지만 사랑의 기쁨이 어느 순간 고통으로 변할 때는 그 사랑에 대해서 반성해봐야할 것이다. 스캇펙은 아마 고통스럽기만 한 사랑을 지속하는 것에 대해 '마조히즘이다'라고 하지 않을까? 여튼, 선택은 유혹자의 몫.

-

브런치, 매거진 구독해주세요.

카카오톡- funder2000 제보, 커피 기프티콘은 사랑입니다.

인스타그램- @funder2012

이메일- funder2000@naver.com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lalaldalala1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loveforgooo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