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칼럼 #의사결정
친구와 여행가서 절교를 한다는 썰, 약혼자와 여행갔다가 각자 다른 비행기 타고 돌아왔다는 류의 이야기는 지상파 드라마의 삼각 관계처럼 흔하디 흔하다. 혹자는 누군가에 대해 진실로 알고 싶으면 함께 여행을 떠나라고 하기도하고, 실제로 그런 이유로 연인과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고서 잘 안풀리면 말한다. "걘 쓰레기였어"
그런데 장기간 연애를 할 때 문제 없던 커플이 여행을 가서 문제가 생겼다면, 그건 사람의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행을 하는 방식은 누구나가 다르고, 서로의 여행 방식에 대한 이해가 없이 무작정 손 잡고 여행가면 문제가 터지는 건 필연이다. 함께한 자가 본색을 드러내서 문제가 터지는 것도 아니고, 그대를 사랑하지 않아서 문제가 터지는 것도 아니다. 사전 조율의 과정이 없었음에도 무작정 같이 여행을 가서 싸우지 않았다면 우연하게 그렇게 된 것 뿐이다.
조율의 중요성
한 사람은 호텔을 베이스로 잡고 거리를 누비는 여행을 하고 싶어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유명한 여행지를 돌고 싶어한다면, 조율을 거쳐야한다. 조율은 당연히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이루어져야하고,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조율은 계속되어야한다. 여행 전이건 여행 중이건 선택의 순간들은 계속해서 온다.
조율 과정이 없이 한 사람이 여행지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 때 "넌 니가 하고 싶은 것만 하냐"라면서 상대를 이기적인 사람으로 만들고 "드디어 너의 진짜 모습을 발견했다!"라면서 혼자 짐싸고 집에 오는 건 너무 신경질적인 판단이다.
맞지 않는 사람과는 여행을 가지 않는 것도 좋은 선택
그런데 누군가가 조율을 하려하지 않는다, 그건 그 사람의 문제가 맞다. 이는 여행 전에 파악을 해둬야하고, 그런 사람과는 애초에 여행을 가지 않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서로의 여행관이 너무도 다를 경우가 있기에 여행 전에는 서로의 취향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 지를 파악해야한다. 연인과 함께 여행을 해야한다는 법은 없다. 서로의 여행 스타일이 너무 다르다면 함께 여행을 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취향이 너무 불일치하면 함께 하지 않는 게 좋고, 취향이 어느정도 일치하더라도 모든 것이 똑같을 수는 없으므로 그때도 어느정도 조율의 과정을 거쳐야한다. 그러면 문제가 남는다.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
6인과의 여행: 의사결정 과정
고등학교 때 만났던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곤 한다. 모임은 총 6명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여섯이서 다 함께 여행을 갈 때도 있고, 유닛으로 2~5명이 여행을 갈 때도 있다. 국내 여행을 갈 때도 있고, 해외 여행을 갈 때도 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서건, 적어도 여행에 있어선 다투거나 한 적이 없다. 서로 의견이 다를 때 조율하는 과정을 중요시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여행 가기 전, 중, 후에 항상 대화를 나눴다.
존슨빌 소시지와 뉘른베르크 소시지
닷돈재를 갈 때였다. 닷돈재에는 야영장이 있는데, 야영장에서는 음식을 직접 해먹을 수 있다. 음식들을 구매하기 위해서 다같이 코스트코를 갔다. 소시지를 고를 때 의견이 갈렸다. 5명의 아해는 존슨빌 소시지를 구매하자고 했고, 1명의 아해는 뉘른베르크 소시지를 구매하자고 했다. 다수결 원칙을 따른다면 우리의 선택은 당연히 존슨빌이었어야했다. 그런데 우리는 존슨빌 소시지와 뉘른베르스 소시지를 모두 구매했다.
존슨빌과 뉘른베르크 소시지를 모두 고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둘 모두를 구매해도 경제적으로 크게 문제가 없었다.
여행에 있어서 돈 문제는 아주 중요하다. 어떤 선택을 했을 때 포기해야되는 기회비용은 필수적으로 고려해야한다. 그런데 우리가 뉘른베르크 소시지를 고른다고해서 포기해야되는 비용은 딱히 없었다.
맛이 없으면 5인이 손해를 보긴한다. 그런데 그 손해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가 없다면 뉘른베르크 소시지는 구매해도될 것이다. 실제로 5인 중에 뉘른베르크 소시지에 대해 예민하게 구는 이는 없었다. 설사, 뉘른베르크 소시지가 맛이 없어서 5인이 먹지 않는다면 1인이 다 먹어서 헤치울 수도 있을 것이다(그리고 정말 그렇게 되었다).
둘째, 1인이 격하게 요구했다.
1인이 격하게 요구했다는 건 중요하다. 여행은 모두에게 즐거운 경험이 되어야하고, 비록 한 사람일지라도, 그 한 사람이 어떤 요구를 강력하게 한다면 그 요구는 무시되어선 안된다는 게 우리의 암묵적인 룰이다. 1인이 강하게 요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뉘른베르크 소시지를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뉘른베르크 소시지를 고르지 않는다면 1인이 왠지 삐질 것 같았고, 그러면 여행의 분위기가 망쳐질지도 모르다고 생각했다. 5인은 다수의 이름으로 1인의 선택권을 침해하지 않았고, 결국 뉘른베르크 소시지를 구매했다.
한편, 1인이 모든 것을 제 뜻대로 하려고 하면, 그 사람은 함께 여행을 할 만한 사람은 아니다. 5인이 1인의 의사를 존중하듯, 1인도 5인의 의사를 존중해야하고 본인의 요구가 무리한 것은 아닌지 반성할 줄도 알아야한다. 다시 말해, 뉘른베르크 소시지를 그다지 강하게 원하지 않는다면 1인은 뉘른베르스크 소시지를 패스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강한 욕구 또는 강한 거부감
또다른 사례를 들어보겠다. 우리는 닷돈재로 갈 이동수단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을 때, 2~3인은 다마스를 렌트해서 타고 가자고 했고, 또다른 1인은 다마스를 극구 거부했다. 이때 3인은 다마스에 딱히 강한 욕구가 없었고, 2인은 다마스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결국 우리는 다마스 대신 다른 이동수단을 강구했다.
한 옵션에 대한 누군가들의 욕구가 얼마나 강력한 지가 의사결정에서 중요하다. 모두에게 행복한 여행이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단체로 여행을 갔을 때 "거수로 문제를 해결하자"라고 하는 건 가급적 해서는 안되는 선택이다. 다수의 거수가 한 선택의 정당성을 부여해줄 수는 있겠지만, 소수 인원의 불쾌감을 자아낸다면, 그건 잘한 선택이라고 보기 어렵다.
다수결로 문제를 해결하는 건 가급적 피해야 한다.
의견을 나누는 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집단이 어떠한 선택을 할 때 그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 지만을 따져서는 안된다. 한번은 우연히 다수에 속해서 기분이 좋을 수도 있지만, 소수에 소속되어있을 시에 그 불쾌감은 어찌할텐가? 굳이 어떤 선택을 하게되더라도 설득과 조율의 과정을 거쳐서 어떤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롭다. 거수가 빠르긴 하다. 빠르기만 하다.
<정도전>에서 정몽주가 하는 말이 일품이다. 어떤 안건에 있어서 세력 간의 갈등이 있자 한 신하가 말했다.
"그러면 투표로 해결합시다"(정확한 대사 아님)
정몽주는 거부한다. 만약 문제가 있을 때마다 거수를 하게된다면, 정치 세력들은 모두 '한 표'를 얻기 위해 이합집산하게 될 것이고, 진정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논의하기는 힘들어질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나는 정몽주의 말에 동의한다. 무작정 거수를 한다면 어떤 사안에 대해 속속들이 토론하기 어려워질 것이고 거수의 결과만 중요시하게 되어 정치질만 늘어날거라 보기 때문이다.
거수가 중요하다면 애초에 토론은 쓸모없는 것이 된다. 그런데 토론을 하다보면 의견이 바뀐다. 의견 교환을 하다보면 사안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기 때문이다. 설사 궁극적으로 투표가 필요하다고 해도 그것은 충분한 토론을 거친 뒤의 마지막 선택이어야지, 사안을 빨리 해결하려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어떤 여행지를 강하게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고하더라도, 그 여행지의 매력포인트를 어필하다보면 의견이 바뀔 수도 있다. 반대로, 어떤 여행지를 강하게 원하는 사람에게 그보다 나은 옵션을 제공한다면 그 옵션을 선택할 수도 있다. 결국 여행 전에서건 여행지에서건 끊임없이 대화를 해야하고, 상대방의 의사를 확인하고, 본인의 의사도 어필할 줄 알아야한다. 원하는 것을 원한다고 말하고, 싫은 건 싫다고 말하면서 의견을 계속해서 나눠야한다. 아, 필요한 순간에 의사 표현을 하지 않고 혼자 삐져있을 거면 상대를 욕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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