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걸어도 되긴 하는가?
애인이 없는 남성이 한 매력적인 여성을 우연히 마주쳤을 때 그 남성은 그 짧은 찰나에 머리를 굴린다. 아, 시작이 틀렸다. 애인의 유무와 관계 없이, 그보다는 차라리 남성의 이성관-윤리관과 관계가 있을 듯 한데, 남성이 한 매력적인 여성을 만나면 그 짧은 찰나에 머리를 굴린다. 어떻게 말을 걸 것인가? 말을 걸어도 되기는 하는가? 말을 걸 때의 목적은 하나다. 저 여성에게서 호감을 얻고,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는 것.
낯선 여성에게 어떻게 말을 걸 것인가?라는 질문은 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흔히 흔한 것들처럼 무시하고 지나가도 될 법한 질문은 아니다. 특히나 글쟁이들은 흔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다양한 방향으로 확장하는 것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는데, 이 질문은 그러기 위한 꽤나 괜찮은 소재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 정치적으로 올바르면서도, 효과적일 수 있을까?
1. "남자친구 있으세요?"
이 질문은 꽤나 불쾌한 감정을 낳을 수 있다. 이 질문을 하는 의도가 '너가 나와 만나주건 안만나주건, 일단 그건 차치하고 너에게 남자친구가 있는 지의 단순한 그런 사실 관계만이 궁금하다.'일지라도 질문을 받는 입장에선 '남자친구가 없다면 나와 만나다오'로 전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여성의 입장에선 남자친구가 있건말건 당신과 만나야할 이유가 조금도 없다. 그러므로 "남자친구 있으세요?"라고 물으면 "그게 너랑 뭔 상관인데요?"라는 답이 오는 건 꽤나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남자친구 있으세요?"란 질문은 하나마나한 것이 된다.
또다른 문제도 있다. 그녀에게 설사 남자친구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녀는 남자친구의 소유물이 아니다. 즉, 남자친구가 있다고할지라도 그녀에겐 기존의 남자친구를 벗어나 새로운 남자를 만날 옵션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여성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선택권이 있는 한 주체적인 여성에게 "남자친구 있으세요?"라고 물어보는 건, 꽤나 실례다. 남자친구의 유무는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는 것에 있어 크게 걸림돌이 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처음 본 여성에게 "남자친구 있으세요?"라고 물었을 때 개연성있는 여성의 반응은 다음과 같다. 쟤는 나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나한테 들이대나? 외모만 보고 들이대는 흔한 남자인가? 더 나아갈 수도 있다. 쟤는 여자는 다 섹스할 대상으로 밖에 안보이나? 사람으로 보이기보단 버자이너로 보이나? 불편한 진실이 하나 있다면 그녀의 그런 판단이 아주 틀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저, 이쁘거나 화려해서 첫 눈에 반했을 것이고, 이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지도 모른다는-10분 뒤에 잊혀질-불안감에 용기 내어 말을 걸었을 것이다.
남성의 입장에선 여성의 입장을 배려한 것일 수도 있다. "남자친구 있으세요?"라고 물음으로써, '너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면 더이상 귀찮게 하지 않겠다'라는 의미를 포함하여 '당신이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존중하겠다'라는 나름의 신사적인 의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이란 건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여지는게 다반사고, 우리-남자들은 낯선 이성, 아마도 운명적인 대상이 될지도 모르는 자에게 위험한 베팅을 할 수는 없다.
2. 낯선 여성에게 말을 거는 것 그 자체
2016년, 강남역 부근에서 한 여성이 처음보는 한 남성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했다. 이 사건이 상징적인 이유는 강남이라는 한국에서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 한복판-꽤나 안전하다고 믿는 그 공간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살인마는 자신의 육체로 상대하기 버거운 남성들은 모두 제치고, 상대적으로 제압하기 쉬운 여성이 나타나자 살해했다. 누구나 짐작했지만, 살인마 남성의 여성관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것도 드러났음은 물론이다.
해당 사건이 있은 직후 강남역 10번 출구에 여성들이 지금까지 당해왔던 (성)범죄에 대해 고발하는 자리들가 마련됐다.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여성들은 익명이나 실명으로 자신들이 당해왔던 범죄들에 대해 고발했다. 필자는 남성이고, 그렇기에 딱히 여성들이 당하는 그런 종류의 범죄의 대상이 되어본 적이 없다. 아니, 그들-여성이 사는 세상과 남성이 사는 세상은 엄연히 달랐다. 한쪽은 남자 화장실에 가고 나머지 한쪽은 여자 화장실에 가는 정도의 사소한 차이만 있는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렇기에 온오프라인에서 이어지는 고발들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여성들은 정말 어디에서나 (성)범죄에 노출이 되어 있었다. 지하철, 버스에는 치한들이 있었고, 중고등학교에선 남성 교사들이 성희롱이나 성폭행을 했고, 대학에선 선배란 것들이 만져댔고, 회사에서는 상사들이 완장을 두르고 성희롱-성폭행을 일삼았다.
낯선 남성인 우리가 낯선 여성에게 말을 거는 문제를 고민할 때, 이런 현실은 당연하게도 고려되어야한다. 우리가 스스로를 얼마나 바람직한 인물상으로 그리던 간에, 낯선 여성이 보기에 우리는 그저 낯선 남성일 뿐이다. 야밤에 가수 김범수가 장난으로 낯선 여성에게 발자국 소리로 장난질을 했을 때, 그 의도가 순수한 '장난'일지라도 그것은 전혀 장난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낯선 여성에게 반해 말을 걸 때, 우리의 순수한(?) 의도는 의도대로 전달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그건 전혀 낯선 여성의 잘못이 아니다.
3. 드라마를 통해 학습하면 안된다.
때로 드라마는 좋은 교보재가 된다. 그런데 적어도 연애와 사랑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드라마, 특히 한국 드라마는 좋은 교보재가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한국의 드라마에서 남성들은 마음에 드는 여성이 있으면 무작정 손목을 잡고 어딘가로 끌고가거나 큰 소리를 내서 상대를 제압하는, 뭐랄까, 사파리의 사자가 하이에나를 제압하는 방식으로, 사냥꾼이 사냥감을 제압하는 방식으로 '헌팅'을 한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드라마에서나 통하고, 그나마도 요즘에는 드라마에서도 안통한다. 한국 드라마 속의 여성들도 조금씩 사람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그전에는 사람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그보단 사람 형체를 하고 있는 이쁘장하고 머리긴 생명체에 가까웠다). 그러므로 낯선 여성에게 말을 거는 문제를 고민할 때 한국 드라마는 좋은 배움의 수단이 아니다.
4. 어떻게 해야될까?
앞서 언급한 문제들을 우회하면서 말을 거는 방법은 당연히 존재한다. 우린 어쨋거나 답을 찾아내는 존재들 아니던가. 낯선 여성에게 첫 눈에 반했을 때, 몇가지 조건이 충족된다면 그때는 말을 걸어도 된다.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여성이 위치한 장소에 사람들이 많아야한다. 그래야 여성은 낯선 남자의 접근에 크게 위협받지 않을 것이고 자신의 뜻에 따라 거절하거나 호감을 가지고 받아들일 것이다. 둘째, 여성이 위치한 곳이 밝아야한다. 외부라면 해가 떠있어야할 것이고, 내부라면 실내 조명이 밝아야할 것이다. 그래야 낯선 여성은 낯선 남성의 접근을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자신의 뜻에 따라 거절하거나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조건들이 충족되었다면 이제 다시 우리에게 남겨진 질문은 "어떤 말을 꺼낼 것인가?"다. "남자친구 있으세요?"는 앞서 말했듯 문제적이다.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그리하여 현명한 이들이 여러 방법을 고안해냈다. 남자친구의 유무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말을 꺼내며 남자친구의 유무를 확인하는 것이 그것이다. 물론 여전히 그녀에게 애인이 없더라도 당신을 받아줘야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 헐리우드 영화의 남정네들이 이런 방법을 주로 활용한다. 같은 말인 듯 다르게 말한다. "혼자 오셨나요?" 라던가 "남자친구는 언제 오나요?"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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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직구를 날리는 옵션도 채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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