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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Apr 04. 2017

[유럽 여행] 그들은 아직도 열쇠를 쓴다.

로마에서 머물 때 썼던 열쇠
항상 열쇠였다.

2017년 2월 9일.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한 뒤 나비고를 끊고 에어비엔비 숙소로 향했다. 주인장은 건물의 위치와 비밀번호 몇가지를 알려줬다. 그 뒤에 그는 "xxx우편함에 열쇠를 넣어놨다. 체크아웃할 때도 거기에 열쇠를 넣어두면 된다."라 말했다.


번호키를 통해 건물을 들어간 뒤 xxx우편함에서 열쇠를 찾았다. 그리고 어렵사리 방을 찾고(뭔 문짝에 호수가 적혀있질 않나?) 문짝의 열쇠 구멍에 열쇠를 넣고, 돌렸다. 한번에 성공하진 못했다. 반시계 방향으로도 돌려보고 시계 방향으로도 돌려보고 이케이케하다보니 문이 열렸다.


문짝에 번호가 안적혀 있다. 그리고 열쇠 구멍이 달려있다.


열쇠를 통해 문을 여는 경험은 꽤나 오랜만이었다. 그럴만도 한 게 필자의 경우 열쇠를 손에 잡은 기억이 까마득하다. 학생 때부터 문짝에는 열쇠 구멍 대신 번호키가 달려있었다. 형태는 여러가지였는데, 껍질(?)을 위로 올려서 연 뒤 번호를 입력하고 껍질을 내리면 문짝이 열리는 게 있는 가하면, 샵 버튼을 누르고 네자리 정도되는 길이의 번호를 입력하고 샵 버튼을 다시 누르면 문이 열리는 형태도 있었다.


지금 필자가 살고 있는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두 번의 보안을 거쳐야한다. 건물에 들어갈 때 한 번, 그리고 집 안으로 들어갈 때 한 번. 여전히 번호키를 통해서 통해서 두 번의 보안을 통과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편한 방법도 있다. 신호를 발산하는 엄지 손가락만한 기기를 가방에 넣어두면 건물의 문짝이 그 기기의 신호를 인지하고 자동으로 문을 열어준다. 그리고 동일한 기기를 집 앞 카드키에 갖다대면 문이 열린다. 해당 기기를 통해 문을 여는 것은 쉽고, 간편하다. 가늘고 세균 범벅이가된 쇳덩이를 정확한 위치에 정확한 각도로 정확한 방향으로 돌릴 필요도 없다. 새로운 기술은 확실히 어떤 측면에선 예전 것보다 낫다.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프랑스를 떠난 뒤 로마를 향했다. 로마에서는 Un Posto a Roma라는 곳에서 머물렀다. 거기에서 열쇠를 받았는데, 입이 떡 벌어졌다. 열쇠가 한 두개가 아니었기 때문. 열쇠는 총 4개로 이루어졌다. 하나는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 써야하고, 또 하나는 건물에 들어온 뒤 철창문을 열기 위해 쓴다. 나머지 둘 중 하나는 집 안으로 들어갈 때 쓰고, 남은 하나는 집 안에서 방 안에 들어갈 때 썼다.




(1) 여전히 벨과 인터폰을 쓴다. (2) 건물 내부에서 찍은 정문 사진

(3)정문쪽에서 찍은 철창문 (4) 집으로 들어가는 문.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 첫번째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가면 앞의 철창문이 나온다. 왜 굳이 여기에 또 하나의 문을 뒀는 지는 알 수 없다. 열쇠 하나를 더 들고다녀야하고 굳이 또 열쇠 찾아서 구멍에 꽂고 돌려야하는 수고로움도 수반된다. 어쨋든 들어가야하니 두번째 열쇠를 써서 통과한다. 건물에 엘리베이터는 없다.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 또 문이 나오는데 이때 세번째 열쇠를 쓴다. 집으로 들어왔다. 이제 집안의 방에 들어가기 위해 또 열쇠를 쓴다. 집을 호텔처럼 활용하는 것이기에 해당 숙소는 다른 한 개 팀과 함께 썼다. 그게 아니었다면 네번째 열쇠를 굳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로마 다음으로는 피렌체를 갔는데, 그 때도 열쇠를 사용했다. 호텔 건물에는 로마 때와 달리 엘리베이터가 있긴했는데 완전 구형이어서 문을 직접 수동으로 열고 닫아야아야 움직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뒤에도 문을 닫아줘야한다. 다른 층의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쓸 수 있게하기 위함이다. 지배인은 엘리베이터를 (신식으로) 바꿀 수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게 법이라나.


왜 열쇠인가?

보안의 측면에서 접근해보자. 열쇠는 번호키보다 보안성이 높은가? 그럴 수도 있다. 오직 열쇠를 가진 사람만 문을 통과하게끔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쇠가 도난당하면 보안에 심각한 위협을 받게된다는 점, 열쇠가 없더라고 특수한 기술을 가진 이는 락픽을 통해 문을 열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열쇠가 완벽한 보안 체계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번호키를 통해 문을 여는 것은 어떨까? 일단 열쇠와 달리 번호는 도난당할 수 없다. 그렇기에 도난으로 인해 보안이 위협되진 않는다. 다만 암호가 다른 이들에게 노출되었을 때에는 손쉽게 문을 열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은 여전히 번호키가 가지는 한계다. 모든 보안체계는 각자의 한계를 가지고 있는 법이니까.


편리성의 측면에서 접근해보자. 열쇠는 항상 소지하고 다녀야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불편하다. 집을 떠날 때는 항상 가지고 있어야하고, 직장 등에 열쇠를 두고 나왔으면 되돌아가야한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열쇠를 문짝에 넣고 돌리는 일련의 행위 자체가 불필요하게된 기술적 진보를 이룬 마당에 굳이 그런 수고를 들여야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번호키는 어떨까. 번호키를 기억만하면 언제든지 문을 열 수 있다. 들고 다녀야할 것도 없이 없다는 점에서 문을  열 때 거쳐야할 때 거치는 단계가 비약적으로 감소한다. 열쇠를 통해 문을 열 때는 열쇠를 꺼내고(1), 열쇠를 구멍에 넣고(2), 돌려서 열고(3), 다시 열쇠를 빼고(4), 열쇠를 넣어야한다(5). 번호키는 훨씬 간단하다. 번호키를 활성화 시키고(1), 번호를 입력한다(2). 보안의 측면에선 우열을 가리지 어렵지만, 편리성의 측면에선 열쇠가 나은 점이 딱히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기억을 못하면 문을 열 수 없다는 것 정도가 번호키의 단점일텐데, 글쎄, 그쯤되면 고민해야될 건 열쇠냐 번호키냐가 아니다.


다시, 왜 열쇠인가?

열쇠와 문짝의 멱살만 잡고 답을 찾으려하면 답을 찾을 수 없다. 열쇠를 굳이 고집하는 이유는 열쇠가 최선이기 때문이 아니다. 두가지 가설이 있을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엘리베이터처럼 "법이 문짝 바꾸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굳이 바꿀 필요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난 이탈리아 사람들이 법이 문짝 바꾸는 것을 허용해도 여전히 열쇠를 사용할 거라고 짐작한다. 근거는 없다. 그냥 감이다.


열쇠는 문을 열기에 가장 합리적인 도구는 아닐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쇠는, 열쇠의 유일한 임무인 문을 여는 것에 있어서 꾸준한 기능을 발휘한다. 문을 여는 것에 있어서 전혀 문제될 게 없는 도구다. 더 편리한 수단이 있을 수는 있지만 굳이 바꿔야할 이유는 딱히 없다. 마치 내 아이폰5s같은건데, 이 폰은 2017년 갤럭시S8+가 나온 시점에서 최고의 폰도 아니고 최선의 폰도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화와 문자, 이메일 확인 및 보내기, 유튜브 감상과 카카오톡 이용 등에 여전한 기능을 발휘한다. 최신 폰들에 비해서 느릴 수도 있고, 화면이 작을 수도 있으나, 여전히 쓸만하다.


"멀쩡한데 왜바꾸나?"

일본계 회사를 다니는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얘네는 앵간해서는 시스템을 안바꾼다고. 시스템을 바꿀 때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란 게 주요한 이유였다. 그럴 법도 한 것이, 하나의 시스템에 조직이 익숙해지면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할 때 그 시스템에 적응하기까지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리고 또 그에 따르는 비용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종이를 통해 결재를 하던 조직이 전자결재를 도입하면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될 것이다. 무엇이 더 나은가를 저울질이야 하겠지만, 앵간해서는, 정말 앵간해서는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례를 통해 설명해보겠다. W라는 친구가 다니는 한 일본계 회사에서는 특정 물품을 제조하는 장비를 다룬다. 장비를 다루므로 당연히 장비의 수리도 서비스로 제공하는데 그러다보니 부품을 구하거나 신청할 때가 있다. 그런데 장비에 쓰는 부품의 위치를 찾는 사이트와 그것을 신청하는 사이트가 분리되어 있다고 했다. 이상한 일이다. 두 사이트가 통합되어있는 게 여러모로 편할 텐데 왜 굳이 분리를 해놨을까?


설명은 이렇다. 애초에 두 사이트 중에 하나가 먼저 존재했고, 그 뒤에 사이트 하나가 추가되었다. 통합하는 것이 편하긴 하겠지만, 친구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이미 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쓰고 있는 선배들은 이제와서 이게 뭐가 불편하지도 까먹었고", "수정해야될 게 많고 일본 본사에 요청해야되고 하니, 귀찮기도 하고, 사실 안해줄 거 같기도 하고하니, 그냥 쓴다."


두 사이트를 통합하면 확실히 편해지기야 하겠지만 불편한 사람들이 생긴다. 수정을 하려면 피드백을 넣어야하는데 일본인들 특유의 '주장 없음'이 일본 회사들의 보수적인 성향을 더욱 보수적으로 굳히는 역할을 하는 거 같다. 같은 회사의 친구는 하나의 사례를 더 말해줬다. 클라이언트가 "BB업체꺼 장비는 x라는 기능이 있는데 AA(친구의 회사)에는  그런 거 없어요? 수정 요청하면 안되요?"라고 하면 업체측에선 "아, 네, 안돼요."라고 단칼에 자르거나 "한번 요청은 해볼게요"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 안한다고 한다. 어차피 위에서 안받아들여지니까.


수정 요청도 메이저한 이슈가 아닌 사소한 이슈에 대해서는 딱히 반영을 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가령 "컴퓨터를 샀는데 하루에 2~3번씩 블루스크린이 뜬다"고 하면 피드백에 응해주겠지만 "시작 버튼 옆에 프로그램 단축메뉴가 있으면 좋겠어요" 같은 마이너한 이슈에는 대응을 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또다른 일본계 회사에 다니는 친구의 사례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CH가 다니는 일본계 회사는 계약서 사인을 받을 때 오로지 원본을 통해서만 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계약서에 사인 한번 받으려고 한국에서 계약서 원본을 일본 본사에 쏘고, 일본 본사가 원본에 사인을 한 뒤 다시 한국으로 쏘는 식이다. 보통 일본 회사들은 원본 주의라고 친구는 말했다.


반면 한국은 보통 계약서에 사인을 받을 때 스캔본으로 대체한다고 한다. 스캔본이 유사시에 법적 효력 인정받기가 쉽지 않은 점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용이나 소모되는 시간을 감안할 때 효율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유사시'는 말그대로 '유사시'이기에 그리 흔히 발생하지 않을 것이고.


일본이 보수적인 사회가 된 것과 "지금 멀쩡한 걸 굳이 바꾸지 않는" 경향은 서로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게 내 생각인데, 그래서인지 40년짜리 수명이 다된 노후원전 등의 수명을 20년 더 연장하는 아베 정권의 움직임도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여전히 잘 기능하는데 뭣하러 폐쇄하나? 하는 판단으로 노후원전을 연장하지 않았을까?


바꾸는 것과 바꾸지 않는 것

사실 이 글을 시작할 때는 한국의 신문물 중독(?)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려 했다. 멀쩡한 것도 굳이 바꾸려고하고, 다들 새로운 것에 열광하는 모습이 강박적으로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느끼는 거지만 장단이 있는 것 같다. 가장 빠른 인터넷을 가진 것과 스마트폰의 보급이 완전 빠르다는 게 '나름'의 장점이라면 장점일 것이고, 워낙 옛 것을 보존하려는 마인드가 없다보니 한국에 관광할 컨텐츠가 없고, 그러다보니 '한국적'이라고 할만한 게 실종되었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일 수 있을 것 같다.


흔히 한국인들은 이야기한다.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관광하기가 굉장히 좋다고. 그런데 한국의 유적지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치안을 이야기하거나 빠른 와이파이를 이야기하거나 편한 대중교통 시스템을 이야기한다. 여행 자주 다니는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빠른 와이파이와 대중 교통 시스템이나 치안은 여행을 결정짓는 주요 변수가 아니다. 교통이나 치안이 좋으면 좋지. 그런데 치안이 좀 안좋거나 교통이 불편해도 여행을 안가진 않는다. 그보다는 "그곳에 콜로세움이 있는가"가 여행 여부를 결정한다.


무엇을 지킬 것이고, 무엇을 바꿀 것인가? 기준을 먼저 잡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가령, 앞서 로마의 건물들을 이야기했지만, 대부분의 건물들은 오래되었다. 거주자 마음대로 문짝을 바꾸지도 못하고 신식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수도 없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건물에 페인트 칠도 마음대로 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사정은 다르다. 건물 밖은 낡아빠졌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사람 사는 집이고 새롭게 지어지는 집들과 딱히 다른 점을 찾기 어렵다.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로 손꼽히는 상젤리제 거리에는 고전적인 모습의 건물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막상 안을 들여다보면 전혀 고전적이지 않다. 미국에 방문했을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건물의 몇층 이상으로는 손도 못대지만, 몇 층가지는 리모델링하는 게 가능하다고.


건물은 도시를 구성하는 가장 큰 요소이기에 국가가 제재를 하는 느낌이다. 모르긴 몰라도 건물에 좀 관심있는 사람은 특정 건물만 보고도 어느 도시의 건물인지 파악할 수 있을 거다. 싱가폴의 경우, 국가가 관여하지 않는 영역이 없긴하지만, 하나의 빌딩은 다른 빌딩과 너무 유사하면 지을 수가 없다. 그래서 싱가폴의 고층 빌딩들은 모두 독특한 룩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그런 거 없다. 우린 누구보다 빠르고 뛰어난 게 중요한 민족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건물들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촌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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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가 잠실에 겁나 높은 빌딩을 짓고 이번에 축포를 쏘아올렸다.

현대차가 이에 질세라 105층 짜리 건물을 짓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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