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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Jun 14. 2017

<원더우먼>과 페미니즘


대표적인 여성 히어로

원더우먼은 DC가 저스티스 리그 영화를 만들기 위해 세계관을 리부트 한 이후 가장 먼저 내놓은 여성 히어로입니다. 그리고 그는 비단 우연히 여성이란 성별을 부여받은 여성 캐릭터로만 존재하기보다는, 여성 차별적인 세계에서 여성으로서 존재감을 발휘하는 캐릭터로 자리매김을 합니다. 여성 투표권 운동이 한창인 20세기 초 영국을 배경으로 영화가 시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죠.


저스티스 리그가 등장하는 애니에서 원더우먼이 등장해도 원더우먼은 여성주의적 발언을 하고는 합니다. 영화관 데이트를 하고 나와선 동행하는 자에게 "이 영화는 너무 여성들이 의존적으로 나와서 별로야"라고 합니다. 애니상 그 대사는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스토리와도 무관하고, 그 대사가 어떤 복선이 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해당 대사가 원더우먼의 입에서 나온다는 건, 그가 DC세계관에서 상징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죠. 


요즘엔 페미니즘이 돈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트랜스포머5>가 아래와 같이 예고편을 만들기도 했겠죠. 같은 차원에서 <원더우먼> 영화가 리부트된 것도 있을 거라 저는 짐작합니다. 저스티스리그에서 원더우먼이 빠질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크기도 하겠지만요(그럼에도 DC가 원더우먼을 한동안 영화화 하지 않았다는 건 의미하는 바가 있습니다).



강한, 너무도 강한

영화 <원더우먼>에서 그는 신입니다. 그는 함께 살아온 여성들 중에서도 가장 강하고, 마주하는 남성들 중에서도 강합니다. DC유니버스에서조차도 그는 막강한 캐릭터 중에 하나죠. <배트맨 V 슈퍼맨>에서 남자들이 서로의 엄마들 이름만 알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싸움을 하는 도중, 왠 돼지 한마리가 튀어나와서 도시를 개차판으로 만듭니다. 


그 때서야 서로의 엄마 이름을 알게된 두 남자들은 극적인 화해를 하고 돼지를 잡으러 가죠. 하지만 두 남자가 돼지에게 수도 못쓰고 개털리는 도중에-그나마도 한놈은 튀기 바쁜 와중에-손오공처럼 나타나 두 남자를 구원해준 여자가 있으니 그게 원더우먼입니다. 존나짱센 그리고 템빨 쥑이는 여신.



슈퍼맨도 역시 신급인지라 이렇다할 약점이 없이 강력한 캐릭터이지만 그럼에도 크립토나이트에 예민하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원더우먼은 이렇다할 약점이 없습니다. 한 때는 남자한테 묶이면 힘을 잃는다는 원더우먼 원작자의 본디지 성 취향이 다분히 담긴 설정이 존재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없습니다. 


(사족, 이런 성취향이 그대로 반영되어서 원더우먼은 빌런에 의해 자주 묶입니다. 이번 2017년 영화에서도 철근에 의해 움직임이 제한당하죠. 그 억압에서 벗어가는 것이 알레고리적으로는 여성이 남성에 의해 씌워진 코르셋으로부터 벗어나는 좋은 그림이 나오기는 합니다만, 원작자의 성 취향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고보면 오묘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일본 애니에서 촉수로 여성 캐릭터가 몸이 감길 때, 아무도 그 촉수를 여성을 억압하는 코르셋으로 해석하지는 않습니다. 작가의 의도가 좀 빤하기 때문이지요. 다만, 원더우먼의 경우는 원작자의 성 취향이 다소 덜 알려져서 성적으로 해석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코르셋을 깬다는 의미가 원더우먼이라는 얼마 없는 여성 캐릭터를 살려주는 해석이라 더 넓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있을 것 같구요. 뭣보다 이번 영화 감독의 의도는 해석에 이론이 있을 여지가 딱히 없죠)


원더우먼이 워낙 강력하다보니 이렇다할 유명한 빌런도 없습니다. 슈퍼맨과 원더우먼의 강력함 수준이 비슷하다보니 그들이 나온 단독 영화들은 비슷한 빌런들이 등장합니다. 슈퍼맨은 <맨 오브 스틸>에서 자기 동족인 조드 장군과 싸우고, 원더우먼은 <원더우먼>에서 자신과 같은 신족(?)을 만나 싸우죠.


고아, 결핍 덩어리, 정신병자, 자경단원, (신이 아닌) 인간 등등의 설정을 가지고 있는 배트맨에겐 유명한 적수들이 많습니다. 배트맨과 가장 닮아있는 적수인 조커, 배트맨과 지능 싸움을 벌이는 리들러, 배트맨의 피지컬을 능가해서 그의 척추를 부러뜨리는 베인, 그리고 이보다는 인지도가 적을지라도 여전히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아이스맨(슈마허 개새끼야), 파이어플라이, 스케어크로우 등등.


원더우먼의 강력함과 미모는 아마 설정상 불가피했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 주먹이 아닌 사랑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의 히어로를 만들려는 게 원작자의 기획이었는데, 그러자면 주먹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슈퍼맨을 비롯한 대부분의 히어로들과 대척점에 서야했을 겁니다. 그리고 슈퍼맨과 대척점에 서려면 슈퍼맨과 비슷한 정도의 강함이 있어야 캐릭터를 살려낼 수 있었을 겁니다. 


또, 비록 원작자의 특수관계자가 '그 캐릭터는 여자로 해라'라는 지시 아닌 지시를 내린 것도 있긴했지만 남성인 슈퍼맨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강해야할 필요도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남성이 대부분인 히어로판에서 원더우먼이 여성으로서 존재감을 발휘하려면 강하지 않고는 베길 수가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미모. 미국의 모든 코믹스의 히어로들은 대부분 잘생겼고, 이쁘고, 몸짱입니다. 팬 장사이기 때문이죠.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원더우먼과 페미니즘

원더우먼은 평범한 여성이 아닙니다. 그녀는 인간이 아닌 신이고, 신 중에서도 워낙에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기적인 아이템들로 무장하고 있죠. 아쉬운 부분은 여기서 발생합니다. 


원더우먼이 페미니즘의 선봉대장격인 캐릭터가 되었고, 이번 영화에서도 그런 역할을 맡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여성 캐릭터가 남성과 동등해지기 위해서, 혹은 그보다 뛰어나지기 위해서 신이 되고, 또 사기적인 아이템들로 무장했다는 사실은 아쉽습니다. 왜인지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니까요. 


즉, 원더우먼의 승리는 평범한 여성의 승리로 여겨지기 보다는 일반적인 여성과는 다른 특별한 여성의 승리로 보여집니다. 이것이 원더우먼이란 강한 캐릭터의 한계라면 한계일 수 밖에 없는 지점입니다.



그가 그저 여성 캐릭터라면 이런 맥락의 글은 성립할 수가 없습니다. 슈퍼맨과 대등한 어떤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건 전혀 이상할 게 없습니다. 하지만 DC와 <원더우먼>의 감독이 원더우먼을 포지셔닝한 지점이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승리하는 어떤 여성이기에 이런 비판이 가능해집니다. 


가령, 마블의 스칼렛 위치나 피닉스의 강함은 그 캐릭터 고유의 강함으로 설명되지, 여성의 강함으로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강한 이유는 그저 그들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승리는 그들의 승리이지, 여성의 승리로 해석되지는 않죠. 그렇게 해석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자면 꽤나 설득력있는 논리들을 대거 들여와야할 겁니다. 


즉, 감독은 원더우먼이라는 여성이 승리케하기 위해서 그를 신으로 만들었고, 무지막지한 장비들을 들려주었습니다. 뭐랄까, 반칙 같다는 느낌입니다. 그런 게 없다면 여성이 승리할 수 없다는건가, 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들기도 발생합니다. 이 영화를 찬양하는 여성들 못지않게 불편함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는데, 대부분 이 지점에서 문제를 느끼더군요.


<원더우먼>을 다룬 앞선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여성이 승리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굳이 그 여성이 신적인 권능 가지고 있거나 무지막지한 장비들로 무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로 다크 서티>에서는 한 여성이 남성들을 지휘해서 오사마 빈라덴을 잡아내고, <조이>는 남성의 도움을 받지 않은 한 여성 발명가가 홈쇼핑에서 대박을 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여성 변호사의 삶을 다룬 드라마인 <굿와이프>의 ost가 이 영화에 삽입되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또 최근에 개봉한 <미스 슬로운>에서도 여성 주인공은 멋지게 일을 처리해내죠. 


그럼에도

그럼에도 이 영화가 많은 여성들에게 환호받는 이유는 있을 겁니다. <아이언맨>을 기점으로 수많은 히어로 영화들이 나왔지만, 지금까지 여성이 주인공인 히어로 영화는 단 한 편도 나온 적이 없습니다. 비록 아이언맨의 승리가 남성의 승리로 연출된 것은 아니었고, 슈퍼맨의 승리나 배트맨의 승리 역시 남성의 승리로 묘사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여성들 입장에선 답답함과 갈증을 느꼈을 겁니다. 대부분의 히어로 영화들이 남성들에 의해 스토리가 전개되고 결론이 나고는 했으니까요. 여성의 삶을 다룬 히어로물이 지금까지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남성을 압도하는 어떤 여성 캐릭터가 나왔으니 환호가 나오는 건 굉장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필 이런 상징적인 인물이 시오니스트라는 게 아쉽기는 합니다. 거기다가 원더우먼이 평화의 상징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번 영화에서 원더우먼은 칼로 빌런을 죽이지 않습니다. 손목에 있는 이지스의 방패로 그를 처단하죠. 그런데 갈 가돗에겐 칼이 더 어울립니다. 미스캐스팅이라고까지는 하지 않겠습니다만, 옥의 티인 점은 분명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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