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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Jun 08. 2017

루머의 루머의 루머:강간 장면, 피해자 감정에 집중하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 <소드 아트 온라인>, <왕좌의 게임> 스포일러 주의


서론- 강간 장면을 다룬다는 것

작년-2016년에 한 유명 팟캐스트측에서 연락이 와서 애오개역 근처 작은 카페에서 미팅을 했던 적이 있다. 그들은 내 글들 중에서도 강간과 관련된 컨텐츠에 관심을 보였는데, 그 이유는 관련 이슈를 다루는 사람이 국내에 몇 없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추측한다). 미팅이 진행되었으나 그 이후에 딱히 팟캐스트 콘텐츠가 만들어지지 않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일단 강간을 다루는 컨텐츠를 다루는 논지가 확실하게 정해져있지 않음을 인지했기에 팟캐측에 '나는 아직 공부 중이다'라는 입장을 밝혔고, 그들은 강간을 다룬다는 건 큰 리스크를 안고 있기에 미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후에 연락이 없을 수도 있다고 했다. '오늘의 미팅'은 그들의 입장에서 나와 그들 간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의미에 더 방점이 찍혀 있었다. 그 외에도 이유는 있을 수 있다. 내가 하는 헬조선 늬우스 등의 활동에 대해 비호감을 가졌을 가능성. "헬조선"이라는 네이밍이 가지는 한계다. 그 팟캐측이 말하는 "역국뽕"이라는 말이 아주 설득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여러모로 내 인생에 1도 도움이 안되는 페이지인 거 같다)

여하튼, 강간 장면을 계속 다루다보면 나 역시 강간 장면에 대한 입장이 좀 더 분명하게 설 것이라 생각하고, 관련 글들을 읽는 분들도 그렇게 될 거라 생각한다. 더 나아가 내 글이 하나의 아티클로서 토론 자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식의 입장도 있는데 그럴듯하더라."라던가 "이런 식의 입장이 있는데 동의하기는 어렵다."라던가.

최근에 한국에서 에로 영화가 급증하고 있는데 여기에도 강간 장면은 꽤나 많이 등장하고 있다. 약을 먹이고 정신이 없는 여성을 강간하기도 하는 남성도 등장하고, 정신이 온전한 여성을 강간하는 남성도 등장하고, 폭행을 한 뒤 강간을 하는 남성이 등장하는 에로 영화도 있고, 약을 먹이고 강간하는 남성과 피해자 여성이 러블리한 엔딩을 맞는 영화도 있다. 그렇다. 강간범과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고 있다.

포르노와 에로 영화에는 서로 다른 잣대가 들이대져야할까? 일반 영화와 에로 영화에 들이대는 잣대는 서로 달라야할까? 강간 장면에 대해선 다양한 논의가 진행될 수 있다. 나는 물꼬를 트는 작업을 해볼 생각이다. 지금까지 이와 관련한 글들은 브런치의 매거진 <페미니즘으로 작품 읽기>에 모두 수록해놓았으니 링크를 통해 들어가서 보시면 될 것 같다. "페미니즘으로 작품 읽기"라고 해놨지만 저기에 써놓은 글들이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하는 진 여전히 잘 모르겠다. 다만, 그보다 나은 단어를 아직 찾지 못했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의 제목

넷플릭스에 2017년 3월 31일에 업데이트된 미드다. 한국 넷플릭스엔 <루머의 루머의 루머>로 번역(?)되어 올라왔으나 원제는 <13 reasons why>다. "13가지 이유"라는 제목인데, 그 앞에는 "내가 자살한"이 생략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이쯤되면 왜 한국에 <루머의 루머의 루머>로 번역되었는 지 어느정도 감이 오실거라 생각한다. 자살을 암시한다는 이유로 밴드 넬의 곡 <안녕히 계세요>도 방송금지 당한 한국 환경을 고려하여 넷플릭스측에서 먼저 <루머의 루머의 루머>로 제목을 잡았거나, <13가지 이유>라는 제목으로 방통위나 방심위에 올렸으나 빠꾸먹고 <루머의 루머의 루머>로 바꾸었거나, 장사가 더 잘 될 것 같아서 <루머의 루머의 루머>로 제목을 정했을 수도 있다. 정확한 경위는 알 수 없다. 아무튼, 이 미드는 13화짜리로 구성되어있고 자살을 다룬다(이 포스팅도 금지당하려나).


<루머의 루머의 루머>: 강간 장면

이 미드에서 강간 장면은 2개가 있다. 두 번 모두 브라이스 워커라는 남성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첫번째 희생자는 제시카 데이비스고, 두번째 희생자는 주인공 한나 베이커다. 제시카가 강간을 당하는 장면은 1시즌 9화에 담겨있고, 한나가 강간을 당하는 장면은 1시즌 12화에 담겨있다. 참고로 한나는 강간을 당한 뒤 1주일 뒤에 자살한다. 각각의 장면들을 집중 분석하기만 해도 하나의 포스트는 완성될 수 있을 것이지만, 두 장면은 모두 공통되는 원칙에 기반하여 연출되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니, 이 글에서는 두 장면을 굳이 분리하여 분석하지는 않겠다.

공통되는 원칙이라 함은, 강간 피해자의 고통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강간이란 행위의 본질, 타인의 동의를 얻지 않은 상태에서 타인의 육체를 강제하는 행위가 얼마나 폭력적인 것이고 타인의 정신을 파괴시키는 지를 최대한으로 묘사하려 했다. 제시카는 술에 취해있을 때 브라이스에게 강간 당한다(S01E09). 시청자는 제시카의 입장에서, 혹은 그것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켜보던 한나의 시점에서 강간 장면을 보게 된다. 제시카는 술에 취해 힘이 없는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거부를 하지만 물리적으로 강한 상대에게 압도당한다. 카메라와 마이크는 괴로워하는 제시카에게 집중하고 시청자는 그 고통에 전염된다.


한나 베이커
브라이스 워커

한나 베이커 강간 장면(S01E12)에서도 이 원칙은 고수된다. 강간 장면은 더 없이 적나라하게 편집없이 연출된다. 자살을 고민하던 찰나 한나 베이커는 삶에 대한 희망을 얻기 위해서 파티에 참여한다. 파티에선 그를 환영해주는 친구들의 미소가 흔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파티에 참여한 한나는 풀에 들어가 있는 친구들의 요청에 옷을 벗고 풀에 들어가게 된다. 시간이 지나고 술에 취한 친구들은 풀에서 빠져나가고 풀에는 한나 베이커와 브라이스 워커만 남게 된다. 브라이스는 서서히 한나에게 접근하고 그녀의 어깨끈을 내린다. 한나는 다시 어깨끈을 올리고 벗어나려고 하지만, 학교에서 제일 잘 나가는 거구의 스포츠 선수를 당해낼 힘은 없다. 브라이스는 그녀의 등을 볼 수 있게끔 그녀의 자세를 강제로 바꾸고, 그녀의 속옷을 벗기고 삽입한다.


이때 역시 카메라나 마이크가 집중하는 것은 속옷이 벗겨진 한나의 몸매나 브라이스의 쾌감이 아니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한나의 얼굴만 보여준다. 잠시 동안만 해당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이제 좀 그만 보여주면 좋을 것 같은 순간이 와도 카메라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강간이 일어났다는 사실 관계만 전달하려했다면 편집자는 얼마든지 도중에 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감독은 해당 장면에서 한나의 고통을 조금도 편집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편집의 칼날을 놀리지 않는다. 한나는 처음에는 괴로워하다가, 마지막에는 결국 힘을 풀고 체념해버린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다른 강간 장면들과 어떻게 다른가?

<소드 아트 온라인>에서 한 아스나라는 여성 캐릭터가 성희롱을 당할 때, 감독이 집중했던 부분은 피해자의 감정이 아니라 그 행위자들의 쾌락이나 그 행위를 보고 분노하는 '왕자님'이었다. 촉수 괴물을 통해 해당 캐릭터를 희롱할 때는 대놓고 성희롱 당하는 피해자를 대놓고 성적 쾌락의 대상으로 삼았다. 좀 더 쌈마이나게 표현해볼까? <소아온>은 성추행 피해자를 딸감으로 삼았다. <일곱개의 대죄>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 작품에는 굳이 포르노로 넘어가지 않더라도 이런 식의 묘사가 상당히 많다. 

<왕좌의 게임>의 산사 스타크 강간 장면도 마찬가지다. 감독은 강간 피해자의 감정에 집중하기보다는 그것을 지켜봄으로서 어떤 심적 자극을 받는 남성의 감정에 더욱 집중했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남성의 얼굴을 비추었고, 마이크는 산사 스타크의 신음 소리만 들려주었다. 한국 에로 영화에서 강간을 다룰 땐 어떨까? 남성 가해자의 쾌락에 집중하거나 강간 피해 여성의 몸매에 집중한다(에로 영화니까 괜찮은 거 아니냐는 사람들에겐 다른 글을 통해 답하겠다). 앞서 언급한 다른 콘텐츠의 강간 장면만 보더라도 <루머의 루머의 루머>, 아니 <13 reason why>의 강간 장면이 왜 다른 장면들과 구별되는 지가 명확해진다.

(각 작품의 제목을 클릭하면 더 자세한 내용으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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