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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Jul 07. 2016

강간 장면, 어떻게 연출되어야하는가?

<돌이킬 수 없는 Irreversible의 강간 장면>


특정 장면은 어떻게 '금기'가 되나?

미국은 표현의 자유가 어떤 나라보다 존중받는 나라 중 하나이지만, 동시에 암묵적으로 금기시하는 장면들이 있다. 하지만 이는 법적 제재는 아니다. '어떤 윤리'를 지키라는 의미의 가이드라인에 가깝다. 그 가이드라인은 윤리적인 시청자와 비평가들에 의해 더욱 공고해진다. 시청자들이 어떤 장면을 더욱 불편해할수록, 그런 장면들은 자제되거나, 어떤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번에 tvN에서 방영된 <또! 오해영>에서 박도경(에릭)이 오해영(서현진)의 두 손목을 잡고 벽에 밀치는 장면이 있었는데, 많은 시청자들이 이 장면에 대해 분개했다. 박도경의 행위는 데이트 폭력이라는 주장과 데이트 폭력을 조장한다는 주장 등이 있었다. 반론도 있엇다. 오해영이 박도경을 때리고 있는 상황에서 말리는 행위일 뿐인데 과민반응한다는 주장이었다. 여튼, 이런 종류의 토론이 진행되고 특정 방향의 여론이 만들어지면 드라마 시장에서 '금기시 되는 장면'은 늘어날 수 있다. 같은 이유로 줄어들 수도 있고.



사회적 편견이 '금기'를 만들기도 한다. 한 때, 할리우드에서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과 키스를 하거나 섹스를 하는 장면은 금기시되었었다. 아시아인도 마찬가지다. KKK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그런 장면을 금기의 영역으로 끌어오지 않았을까? <킹콩>은 흑인 남성이 금발의 백인 여성을 사랑하다가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내용의 영화다. '금기'가 없었다면 굳이 흑인을 거대한 검은색 고릴라로 만들 진 않았을 게다.


사회가 진보해서 이런 금기는 차츰 깨어지고 있다. 넷플릭스의 드라마 <제시카 존스>에서 백인 여성 제시카 존스는 흑인 남성 루크 케이지에게 잠자리 제안을 하고-이마저도 파격적이다- 백인 여성과 흑인 남성은 섹스를 한다. 게다가 남성이 주도하는 흔한 섹스 장면과 달리 <제시카 존스>에선 제시카 존스가 남성을 눕히고 여성 상위 체위로 리드한다.


영화라는 예술이 만들어질 때는 클로즈업이 금기시되기도 했다. 이유는 머리가 잘린 것 같다는 것. 여튼, 영화, 아니 대부분의 예술은 금기, 터부와 때놓을 수 없는 관계일지도 모른다. 금기라고 반드시 나쁜 것도 아니고, 금기라고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특정 금기에 대해 제각각 접근하는 게 권장되어야하지 않을까?


오해하지 말아야될 부분은, 금기를 깬다고 더 훌륭한 예술가인 것도 아니고, 금기를 깨지않는다고 보수적인 예술가인 것도 아니라는 거다. 특히나 나는 이 글에서 '강간'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사람들을 다루게 될텐데, 나는 그 사람들을 예술가로보기보다는 천박한 장사치로 본다. 그들에게 '예술가'라는 수식어는 돼지 목의 진주목걸이다.

'금기'는 가이드라인일 뿐이기 때문에 금기시되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은 법적으로나 뭐로나 가능은 하다. 연출자가 강단이 있고, 특정 장면이 없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면 어떤 장면이건 연출하는 걸 막을 수는 없어야한다. 다만, 특정 장면을 연출함으로 인해 누군가의 비판을 받는다면, 그것 역시 연출자가 부담해야될 부분이다. "표현의 자유라구욧!"이라며 도망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아이유 <스물셋>, <제제>의 로리타 이슈 때 느낀 게 하나 있다면, 한국의 많은 이들이 표현의 자유와 비판받을 자유를 혼동하고 있다는 거다. 마치 표현의 자유만 내밀면 모든 비판에서 해방된다는 듯이 구는 바보들이 많다. 비평가들조차도 이런 식의 인식을 한다는 건 이 나라의 비평 문화가 얼마나 한심한 지경에 있는 지를 잘 보여준다.


헐리우드서 금기시되는 장면- 강간

연출이 금기시되는 것 중 하나가 강간 장면이다. 강간이란 소재 자체를 문제삼는다기보다는 강간을 어떤 식으로 묘사하고 연출하는 지에 대한 비판이 주요하다. 최근에 강간 장면으로 가장 크게 이슈가 된 것은 <왕좌의 게임 Game Of Throne>이다. 해당 미국 드라마에서 한 여성 캐릭터는 남성 캐릭터에게 강간을 당하는데, 그 여성이 강간당하는 걸 지켜보는 남성은 그것을 통해 무력감을 느낀다. 그 여성이 자신의 친동생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장면이 문제되었던 이유는 여성이 강간을 당하는데 그것이 한 남성이 자극받는 요소로서만 소비되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미국의 국회의원의 보이콧은 물론 시청자들의 보이콧도 일으켰다. 이와 관련해서는 써놓은 글이있으니 참고하시라.



헐리우드 영화 <원초적 본능 Basic Instinct>에서도 강간 장면은 있다. 남자친구가 여자친구의 집에 갑자기 들어가더니 옷을 거칠 게 벗기고 강간을 한다. 이 장면은 다른 차원에서 문제적이다. 남자친구가 여자친구를 강간하는 이유는 그가 따로 욕망하는 여성이 있기 때문이다. 즉, 강간당하는 여성은 다른 여성의 '대체재'로서 소비되고, 또한, 남성 캐릭터의 감정-욕정을 해소하기 위한 장치로 기능한다.


한편, 남자친구가 그 여자친구를 강간하는 내용이 불필요하다는거냐, 라고 내게 묻는다면 "그 남자가 어떤 여성을 욕망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강간하는 내용이 필요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굳이 강간 장면을 그렇게 적나라하고 야하게 묘사할 필요는 없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즉 강간당했다는 상황적 묘사만으로도 충분하지, 굳이 한 여성이 강간의 희생자가 되는 것을 직접 보여줄 필요는 없다는 게 나의 입장이다. 물론 강간을 당했다는 상황만 묘사한다고해도 내가 앞에서 언급한 '소비되는 여성' 이슈는 여전히 남는다. 하지만 이는 강간 장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보다 덜 논쟁적이며, 덜 문제적이다.


헐리우드서 금기시되는 장면- 고문

비슷한 이유로 누군가를 고문하는 장면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굳이 물고문하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냐는 게다. 무력하게 고통당하는 사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강간 장면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 <제로다크서티 Zero Dark Thirty>에서 CIA는 테러리스트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한 사람을 물고문한다. 이 장면은 꽤나 많은 비판을 샀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조이의 성우를 맡았던, 그리고 시상식에서 사회를 맡았던 에이미 폴러는 그 비판에 대해 "고문에 관해서라면 제임스 카메론과 3년과 결혼했던 여성의 의견을 믿습니다."라고 위트있게 받아쳤다. 아래 영상에서 2분쯤을 보면 에이미 폴러의 발언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모든 장면은 논쟁적일 수 있다. <또! 오해영>의 그 장면도 마찬가지다.



헐리우드서 금기시되는 장면- 아동살해

강간만큼 금기시되는 장면 중 하나가 아동 살해 장면이다. 아동을 때리거나 죽이는 식의 연출은 헐리우드 영화에서 찾기 힘들다. 찾으면 있긴하다. <시카리오>에서 아동 살해 장면이 있었고, 최근에 리부트된 <로보캅>에서도 아동 살해 장면이 있다. 또한, <왕좌의 게임> 시즌6의 9화에서도 한 아이가 화살에 심장이 관통당해 죽는다. 아니, 굳이 이 장면이 아니라도 <왕좌의 게임>에선 수많은 애들이 처참히 죽었다.


아동이라고 하기에도 뭔가 미안한 걷지도 못하는 갓난 애기를 살해하는 장면은 어떤가? <왕좌의 게임>에서 왕좌를 차지한 조프리 바라테온은 자신의 '아버지'인 로버트 바라테온이 창녀들에게 뿌린 씨앗이 자신의 왕좌를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사들에게 의심되는 아기들을 죽이라 지시한다. 창녀들은 갓난 아기를 빼앗기고, 어머니인 그들은 자신의 아기가 죽는 장면을 목도한다. 물론, 직접 아기를 죽이는 장면이 나오진 않는다. 내 생각에 강간 장면의 경우는, 소재 자체가 금지시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비판의 성립 여부가 결정난다. 아동 살해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일이 있었다'정도의 묘사라면 괜찮지 않은가?  


헐리우드서 금기시되는 장면- 근친상간

근친상간도 금기 중의 금기로 꼽힌다. <왕좌의 게임>에는 이 근친상간마저 나온다. 세르세이 라니스터와 그녀의 동생 제이미 라니스터는 성관계를 가지고, 그 둘이 성관계하는 장면은 있는 그대로 연출된다. <왕좌의 게임>이란 드라마 자체가 금기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느낌이다. 그런데 <왕좌의 게임>을 제외한다면 딱히 근친상간이란 소재를 다루는 작품을 헐리우드에서 찾기는 어렵다.



<왕좌의 게임>의 세르세이 라니스터와 제이미 라니스터


<요스카노소라>에서 남매는 성관계를 가진다


일본의 경우는 19금 헨타이물이 아니라 <소드아트온라인>같은 꽤나 대중적인 애니에서마저 친오빠를 사랑하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고, 19금 애니 <요스가노소라>에선 현관문 앞에서 여동생과 오빠가 성관계를 가지기도 한다.


강간장면은 왜 금기시되는가?

강간, 고문, 아동살해, 근친상간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그것들이 현실 세계에서 금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것들이 금지라고 해서 영화에서 그것들을 소재로 활용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가령, 살인이나 전쟁은 현실에서 일어나선 안될 일이지만, 얼마든지 영화화되고 있고, 소재만으로 문제가 되진 않는다. (적어도 나는 문제제기할 생각이 없다)


강간, 고문, 아동살해, 근친상간 장면의 또다른 공통점은 해당 행위들을 보는 게 괴롭다는 것이다. 사실 살인같은 건, 내 말이 어떻게 들릴 지 조심스럽긴한데, 한 큐에 끝나는 일이다. 살인은 순식간에 벌어지고, 그 과정 자체가 잔인무도하진 않다. 하지만 살인 자체도 <쏘우>시리즈에서처럼 잔인하게 그려진다면? 그것을 보는 건 괴롭고, 그런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쏘우1>에 비해 <쏘우2>부터는 악평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면 관람객들이 보기에 괴롭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소재는 금기시되어야하는가? 이 문장 자체만 보고 생각해보면 '그렇다'라고 말하기 굉장히 어렵다. 관객을 괴롭게 만드는 것도 연출자의 전략일 수 있기 때문이다. 관객을 괴롭게 만들거나 특정 캐릭터를 증오하게 만들어서 '아름다운 복수'를 만드는 것은 꽤나 유명한 영화적 플롯이다. 예를 들어, <왕좌의 게임>에서 조프리 바라테온은 아기들을 죽이고, 람제이 볼튼은 한 남자의 성기를 자르고, 한 여자를 강간하고, 한 남자 아이를 화살로 살해한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는데, 아마 앞선 행위들이 없었다면 그들의 비참한 최후가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주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물론, 카타르시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행위들이 해당 행위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단순히 시청자들이 특정 장면을 괴로워한다는 이유만으로 금기가 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강간, 고문, 아동살해, 근친상간을 관객이나 시청자들의 유희를 위해 활용하는 경우는 어떤가? 나는 이 경우에 한해서라면, 당연히 금기시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일본 애니 <소드아트온라인>에선 한 빌런이 여성 캐릭터를 결박하고 그녀의 치맛자락을 들추면서 혓바닥을 낼름거린다. 이 장면은 굉장히 야하고 헨타이처럼 연출된다. 같은 애니의 또다른 장면에서 동일한 여성 캐릭터는 촉수로 이루어진 괴물들에게 붙잡혀서 희롱당한다. 한 여성 캐릭터가 겪는 고통을 시청자들을 위한 '서비스'로 활용하는 게다. 강간 포르노다. <소드아트온라인>은 2기에서도 비슷한 연출을 했는데, 이런 연출은 비단 <소드아트온라인>에서만 등장하는 건 아니고, 일본 애니들에서 흔히 관찰된다. 이에 관해서도 여러 글을 적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강간 포르노란 게 비단 일본 애니에서만 등장하는 건 아니다. 굳이 스즈무라 아이리가 나오는 포르노가 아니더라도, 한국의 몇몇 웹툰이나 몇몇 영화에서도 강간을 '서비스'로 활용하는 모습은 흔히 발견된다. 강간까지는 아닐지라도, <뷰티플 군바리>같은 걸 보면 괴로워하는 여성의 몸매를 부각하는 천박한 연출을 찾아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선 따로 글을 적은 게 있으니 참고하시라.




레진의 <속죄캠프>에서는 결박된 여성이 4인의 남성에게 불러쌓여있는데 그녀의 몸매를 부각시키는 연출을 했다. 강간 장면이 나왔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 아래의 장면들은 트위터를 통해 확보하게 되었는데(2016.02.27트윗 @neawgim), 트윗에 의하면 트윗을 쓴 2월 말 당시까진 연재분에 강간하는 장면이 나오지는 않은 듯 하다. 그런데, 딱 강간삘인데?



나는 이런 콘텐츠들을 따로 리스트화했다. 이 콘텐츠들은 듣보잡이라서 잘 다뤄지지 않았을 뿐이고, 또 많은 이들이 이런 장면에 별로 불편해하지 않아서 대중에게 크게 언급이 되지 않았을 뿐이다. 글이 길어졌으니 해당 장면들에 대해선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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