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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Aug 14. 2017

'뷰티풀 군바리'는 왜 구린가?

딸감 제공만 남은 흔한 미소녀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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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남, 마초, 꼴통들이 감당하지 못합니다.


밑밥

표현의 자유 운운하는 멍청이들의 귀찮은 댓글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밑밥부터 깔겠다. 필자는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뷰티플 군바리'의 연재 중단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 하나는 아니다. 앞으로도 '뷰티플 군바리'를 연재하는 것 자체에 문제제기할 생각은 없다. 그런 콘텐츠의 창작까지 허용하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성숙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하니까. 연재 중단이 설사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것은 작가의 의지에 의한 것이어야지 단순 여론 조사 혹은 연재 중단 서명에 의한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즉, 연재 중단 서명으로 작가가 압박을 느껴서 스스로 연재를 중단한다면 그것은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의지로 그렇게 된 것이니까.

'뷰티풀 군바리'라는 괴작이 탄생할 수 있는 배경

'뷰티풀 군바리'는 한국의 첨예하지만 딱히 생산적이지 않으면서 그 전통은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논쟁에서 시작한다. 왜 남성만 군대에 가는가? 이 질문에 담겨있는 건 일종의 억울함이다. 이 억울함은 군대를 가지 않은 자에게 표출된다. 니들은 왜 군대를 안가는가? 이 억울함을 마케팅 포인트로 잡은 군국주의 군대미화 포르노 예능이 지상파에서 만들어진 적이 있었으니 그게 이름하여 MBC의 '리얼 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이하 '진짜 사나이')의 여군 특집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여군 특집이 애초에 방영되기 전부터, 그러니까 기획 때부터 구린내를 풍겼다. 군대를 통해 쿠데타를 일으킨 아빠에 대한 아무런 반성도 없고 오히려 존경해 마지 않는 군대뽕에 푹 빠진 박근혜란 인물이 청와대에 입성한지 2달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육군이 MBC와 콜라보로 만들어낸 프로그램이 '진짜 사나이'이기 때문이다(박근혜의 청와대 입성-2013년 2월 25일, 진짜 사나이 첫 방송-2013년 4월 14일).


군대도 다녀오지 않아 전문성도 확보되지 않았고 이렇다할 연구조차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여성들로 작가진으로 구성있어 고증이 허접한 건 그렇다치더라도 애초에 해당 프로그램이 왜 존재해야하는 지부터 의문이었다. 왜 멀쩡히 살고 있는 사람들을 군대에 보내야하나? 왜 민간인이 군대 체험을 해야하나? 이 프로그램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이런 문제 의식은 여군 특집이 만들어졌을 때도 동일하게 유지됐다. 왜 멀쩡히 살고 있는 사람들을 군대에 보내야하나? 왜 민간인이 군대 체험을 해야하나? 이 프로그램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이 질문들에 여성을 넣어도 마찬가지다. 왜 여성이 군대 체험을 해야하나? 나는 이 질문에 설득력있는 답을 한 자를 본 적이 없고, '진짜 사나이'도 이렇다할 설득력있는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제작진들은 그저 출연자들을 그 어느 조직보다도 폭력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는 군대에 처밀어넣고 비극을 팔았을 뿐이다. 간혹 '군대 생활 잘한다'는 식으로 추켜세워지는 연예인들도 있었다. 아마 그런 걸 칭찬하는 자들이 이 프로그램을 기획했겠지.


군대는 그 특수성 때문에 폭력적으로 작동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최대한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하더라도 위에서 명하면 아래에서 그 명령을 따라야하는 조직이기에 개인의 자유는 축소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필자는 가급적 군대는 최소한의 인원으로 구성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조직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오히려 그런 조직을 더 경험하게끔 종용하는 측면이 있다. 필자가 워낙 젊은 탓에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초등학생 때의 기억이 있다. 교장이 부른다고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일라치면 우리는 군대에서처럼 오와 열을 맞춰서 줄을 섰다. 내 기억은 전혀 특별할 것이 없어서 한국의 학생들은 군대를 가지 않았음에도 차렷과 열중 쉬어가 정확히 어떤 자세를 의미하는 지 알고 있다. 이는 아직 입대 과정도 채 끝나지 않은 사복을 입고 논산에 온 육군훈련소 신병들만 봐도 알 수 있다. 딱히 배운 것도 없는데 저 앞에서 '차렷, 열중 쉬어'라고 시키면 다 척척 해낸다. 소름끼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학교를 다닐 땐 매년 수련회라는 것을 갔다왔는데 거기에선 미성년자들에게 소리치는 거 외엔 할 줄 아는 게 없을 것 같은 교관이란 놈들이 군인처럼 줄을 빠르게 서고 대답을 크고 빠르게 하게끔 학생들을 조련했다(그걸 왜 학생들의 돈으로?). 2박 3일간의 수련회가 끝나면 교장은 조련이 끝난 학생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여러분이 더 성숙한 학생들이 된 것 같아 뿌듯합니다"고 흔히 하던 헛소리를 반복했다. 아이러니한 건 조련당한 우리들은 그 칭찬에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는 거다. 군대 문화가 사람 돌아버리게 하는 뭔가가 있지 않나 싶다. 기업들이 사원들을 두고 '군기가 빠졌다'면서 해병대 캠프에 보내는 것도 한국적 현상이 아닐까나. 이 나라는 박정희 이후로 군대라는 척추에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것 같다. 군대적인 사고방식부터 군대를 가지 않은 자들에 대한 차별 의식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이런 토대가 있기에 '뷰티풀 군바리'가 탄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뷰티풀 군바리'를 비평한다는 것

최초에 이 작품을 접했을 때, 나는 작가들이 사회에 말하고자하는 어떤 메세지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것이 꼰대적이건, 진보적이건, 남성적이건, 뭐든 담겨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뷰군'의 작가들이 왜 여성을 군대에 보냈을까?에 정치적인 답을 찾는 건 어려웠다. 어려웠던 이유는 그런 게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들 딴에는 그냥 재밌을 거 같으니 만든 거고, 그러다보니 세계관이 빈곤해졌다.


비평하는 입장에선 괜히 이걸 시작했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소하게 시작한 이 작품에 비평의 칼을 들이대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달까? 비평에도 상도덕이란 게 있다. 인디 영화는 암만 쓰레기처럼 만들어졌더라도 열악한 위치에서 힘들게 만들었을 거고, 적은 상영관에서 상영될테니 최대한 긍정적으로 비평해주거나, 비판적인 비평을 할거면 차라리 침묵을 해주는 게 내가 생각하는 상도덕이다.


네이버 웹툰에 달린 댓글이 이 웹툰을 비평하는 것에 회의감을 던져주기도 했다. "진짜 사나이보다 전보다 시작했어요"라면서 이 작품의 별 것 없는 오리지널리티를 지켜주려는 자들이나, 여성들을 야하게 그려주어서 고맙단 식의 댓글들이 베플이었다. 이 개념없는 변태 찌질이들이 보는 웹툰을 까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럼에도 내가 이 작품을 문 이유는 이 작품의 인기가 결코 작지 않고(보는 사람이 많고) 연재 중단 움직임이 발생할 정도로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거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발상: 여성이 군대를 간다면?

발상 자체를 못할 건 없다고 본다. 여성이 군대에 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는 발상을 하기 위해 딱히 많은 창조성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 오히려 너무 빤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흔한 발상이다. 그 발상을 기반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 자체도 딱히 문제될 거는 없다. 문제는 여성으로 구성된 군대를 어떻게 그려내는 가에 달려있다. 소재만 잘 살려낸다면 문제될 건 1도 없고, 오히려 박수받는 작품이 될 수도 있다.


이미 독자 여러분은 이 글의 제목에서부터 필자가 이 '뷰군'이라는 웹툰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지 대략 각을 잡으셨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이 작품이 꽤나 허접하고 수준 낮은 작품(?)이라 생각하는데, 이는 이 작품(?)이 가져오는 특수한 세계관-여성이 군대에 가는 세계관을 잘 살려내지 못하고 오히려 엉뚱한 방향으로 작품(?)을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 군대에 갈 때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정치사회적 이슈와 젠더 이슈가 있는데 이 작품은 그 모든 것에 ㅈㄲ를 외치고 엉뚱한 논점을 잡아 이슈를 흐린다. 아래의 이미지를 보자.



여성이 군대를 가게되면 여군들을 대상으로 한 성형 이벤트가 많아질 거라는 식의 발상은 이 웹툰을 만들어가고 있는 두 인물-설이, 윤성원(이하 작가들)이 얼마나 빈곤한 상상력으로 무장하고 있는 지를 잘 보여준다. 여성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외모에 집착한다는 식의 차별적 시선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나라 정부가, 기업들이 언제부터 군인들을 그리 잘 챙겨줬다고? 퍽이나 성형 프로모션을 해주겠다.


이 웹툰은 여성이 군대를 가게되는 특수한 상황을 여성을 비꼬는 데 사용하거나, 여성을 성적대상화해 딸감으로만 소비한다. 이 웹툰이 취한 미러링,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도 군대에 가게끔 미러링을 해서 어떤 그럴듯한 의미를 창출됐나? 남성들이 군대에서 후임들의 물건을 빼앗는 것을, 여성들이 화장품을 빼앗는 것으로 미러링했을 때 어떤 의미가 있는가? 군대는 쓰레기같은 곳이다? 여성도 군대에 가면 다 쓰레기가 된다? 여성은 군에 가서도 외모만 신경쓰는 종족이다? 아, 이건가. 이걸 노린건가. 여성은 어떤 상황에서건 찌질하다는 걸 보이기 위한 미러링이었나?


'뷰티풀 군바리'의 성적대상화


작가가 여성도 군대에 가야한다고 주장한다면 필자는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그런 주장도 있을 순 있기에 존중은 해주겠다. 웹툰을 통해 여성을 군대에 보내는 것도 작가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를 그려내기 위해 꼭 필요했다면 그것 자체도 딱히 문제될 거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선 앞에서도 충분히 밝혔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여성도 군대에 보내야한다고 할 때 흔히 그 주장을 펼치는 자들은 이스라엘의 사례를 들면서 여성도 남성과 동일하거나 비슷한 수준의 전투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주요 논거로 든다. 혹은 행정병 등을 예로 들면서 "그런건 여자도 충분히 할 수 있잖아"라고 하기도한다. 나는 이 웹툰을 만들고 있는 두 작가들도 비슷한 주장을 펼칠 거라고 생각한다. 한 여성이 강간 피해를 당할 뻔할 때 군 복무를 하는 여성 의경들이 나타나서 날라차기로 남성 성범죄자를 뚜까패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성범죄자가 공익이거나 면제라는 거에 500원 건다). 여성도 군대에 가면 존나 쎄질 수 있고 성범죄를 당할 때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을 거라는 작가의 뉘앙스가 느껴지는가? 난 정작 군대가서 벽돌 나르고 삽질만했는데 암튼 여성이 군대에 가면 날라차기도 배우는 모양이다. 암튼 쎄짐!


이 작품이 정말 설득력을 가지려 했다면 여성도 군대에 가야한다는 당위성을 보이는 것에 목적이 있었다면, 이 작품은 시작부터 실패했다. 글이 이정도로 길어졌음에도 우리는 아직까지 이 웹툰의 제목을 유심히 살펴보지 않았다. 이 웹툰의 제목은 '뷰티풀 군바리'다. 즉, 아름다운 군인들을 다룬다. 그리고 여기서 아름다운 군인은 의심의 여지도 없이 여군이다. 아닌가? 가슴 디따 큰 그 주인공만을 지칭하는 건가? 전자건 후자건 본질적으로 바뀌는 건 없다. 이 작품은 어떤 이유로 여성을 군대로 보내긴 했지만, 딸감으로 삼을 거라는 의도를 제목에서부터 숨김없이 밝힌다. 이 작품에서 여성은 여성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뷰티풀한 무엇으로 존재한다. 아래 짤만봐도 뭐.





2015년 12월 7일에 이 작품을 간단하게 언급하며 다룬 적이 있긴하다.


위 글에서 '뷰티풀 군바리'는 여성을 성적대상화하는 콘텐츠로서 교보재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하려고만 한다면 성적대상화에 관한 요소들을 이 웹툰에서만 긁어올 수도 있었다. 여성을 성적대상화하는 온갖 클리셰들이 매화마다 난무했기 때문이다.


일단, 일본 콘텐츠(영화, 드라마, 애니, AV)에서 흔한 배빵을 아주 잘(?) 수입해왔다. 일본에서 유래한 배빵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남성이나 여성이 여성의 배를 때린다(1), 배를 맞은 여성이 배를 움켜쥐거나 입을 벌리며 침을 토해낸다.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액체의 향연이다(2), 배를 맞은 여성이 쓰러져서 괴로워하거나 기절한다(3).


일본의 배빵을 수입한 '뷰군'의 배빵을 보자.

배를 때리는 것이나, 배를 맞고 쓰러진 여성을 섹시하게 그리는 것이나, 그렇게 맞은 여성의 눈이 풀리고 침을 질질 흘리는 것이나 배빵의 오리지널리티를 아무런 오염 없이 차용해왔다. 배를 맞은 여성의 가슴이 출렁이고 있고, 쓰러진 여성은 침을 흘리고 있고, 쓰러진 자세를 찍는 카메라는 여성의 엉덩이와 가슴을 강조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런 걸 "성적대상화"라고 하는 이유는 누가봐도 명백하게 폭력을 당한 누군가를 섹시하게 그려넣었기 때문이다. 폭력이 악한거고, 폭력 그 자체를 비판하기 위한 거라면 피해자의 고통에 집중해야하는데, '뷰군'의 작가들은 폭력 피해자에게 집중하기보다는 '야하게 그려줘서 고마워요'라는 댓글을 달고 거기에 추천 버튼을 누르는 변태 애긔들에 몰입해서 카메라의 앵글을 잡았다. 이런 게 한 둘이 아니다. 계속 가보자.


주인공은 길거리에서 강간을 당할 뻔한 위기에 처한다. 그런데 작가들은 여기에서도 피해자에게 집중하기보다는 '야하게 그려줘서 고마워요'라는 댓글을 달고 거기에 추천 버튼을 누르는 변태 애긔들에 몰입해서 카메라의 앵글을 잡았다. 웹툰을 통해 확인해보자.



이 장면에서 부각되는 것은 주인공의 가슴이다. 한 여성이 강간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이 와중에 작가들은 주인공의 가슴에 영혼을 투입한다. 이런 부분 역시 일본 애니에서 많이 빌려온 부분이다. 일본 애니들은 성추행 당하거나 성희롱당하는 여성 캐릭터를 보여주고, 그들이 괴로워하는 장면을 일종의 서비스신으로 삽입한다. 성범죄를 에로틱하게 만들어서 서비스화한달까? 이에 대해선 '소드 아트 온라인'이나 '일곱 개의 대죄'를 통해 자세히 다룬 바 있다.


성범죄를 에로틱하게 그려내는 것은 비단 일본 애니나, '뷰티풀 군바리'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현재 한국에 우후죽순처럼 나오고 있는 IPTV판매용 에로 영화들은 적지 않게 강간을 딸딸이 소재로서 활용한다.



레진코믹스의 '속죄캠프'는 비록 19금을 달긴했지만 대놓고 강간을 포르노화해서 서사(랄게 있는 진 모르겠지만)를 이어나간다. 온 몸이 포박당한 상태에서 남성의 성기를 억지로 물게되는 강간 피해 여성을 섹시하게 그려낸달까?



작가는 마치 여성이 잘못했으니 그런 폭력은 당연하다는 식의 뉘앙스를 풍겨댄다. 강간 피해 여주인공은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남성들에게 한번씩 빅엿을 먹였던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뷰티풀 군바리'는 '속죄 캠프' 정도로 자극적이진 않지만, 여전히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폭력(배빵) 피해자나 강간 미수 피해자를 섹시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등장하는 여성들을 죄다 딸딸이 대상으로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떤 이들은 강간 미수 피해자를 섹시하게 그려낸 게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고, 별로 섹시하지도 않다고할 수도 있고, 가슴이 큰 여성을 가슴이 크게 그린 것 뿐이라고 쉴드를 칠 수도 있다. 그런 주장을 펼치는 자들은 일본 포르노가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들을 다룰 때도 입을 다물고 있어야하고, 김구라나 장동민같은 인간들이 사람 하나 약점 잡아서 웃음거리로 삼을 때도 그냥 닥치고 있어야한다. 약점을 가진 자나 피해자는 그런 식으로 다루는 게 아니다. 피해자를 다룰 때는 피해자에 공감해줘야하고, 그걸 못할 것 같으면 거리를 두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해야한다. 그런데 이 글에서 언급되는 작품들은 그렇게 하기보다는 피해자를 던져두고, 벨트를 푼다.



물론 이 작품을 즐기는 자들도 작가와 똑같은 짓을 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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