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현우 Aug 25. 2017

일본 콘텐츠로 여성의 지위를 판단하는 문제


<테라스 하우스: 도시 남녀>(이하 <테라스 하우스>)라는 일본 리얼 다큐 프로그램이 있다. 한국식 표현을 쓰자면 일종의 일본 예능인건데, 포맷은 한국이 한 때 했던 <짝>과 유사하다. <짝>이 한 마을(?)에 남녀 몇명씩을 넣어둔 뒤 이성끼리 썸타고 동성끼리 경쟁하는 모습을 주로 아이템으로 팔았다면 <테라하우스: 도시 남녀>는 각각 3명씩의 남녀를 겁나 큰 테라스 하우스에 넣어두고 썸을 타게 한다. 


<테라스 하우스>에 탭댄스를 한다는 남자가 하나 나오는데 요놈은 테라스 하우스에서 호화로운 주방을 보곤 이런 대사를 친다. "이건 여자들보고 분발하라는 거 아닌가요?" 빻은 소리긴한데, 방송사측에서 사람 뽑다보면 빻은 놈 하나 섞여들어올 수 있는 거긴하니까 탭댄서의 말 한마디에 큰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다. 실제로 계속 보다보면 설거지하겠다고 나서는 남자도 있다.


흥미로운 건 그 말을 들은 제 3자들의 반응이었다. 일단, 그 말을 옆에서 들은 남성이나 여성들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서로 처음 본 사람들이니 일본 특유의-싫어도 싫은 티를 내지 않는 문화 때문에 그랬던 걸 수도 있다. 둘째로, 일본 예능에는 관전평을 들어놓는 패널들이 늘 마련되어있는데, 패널들도 별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패널들은 테라스 하우스에 사는 주인공들에게 나름 기분 나쁠만한 말들도 서슴없이 뱉는지라(김구라, 양세형, 유세윤, 장동민식의 개그가 일본에선 디폴트다) 딱히 주인공들에게 예의를 차려서 문제를 삼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패널들의 침묵은 동의로 간주하면 그럭저럭 퍼즐이 맞춰진다.


<테라스 하우스>를 계속 보다보면 패널들이 왜 해당 발언을 문제삼지 않았는 지 알 수 있다. 탭댄서보다 더 빻았다면 더 빻은 수준의 말들을 서슴없이 내뱉기 때문이다. 얼평은 기본이고, 온갖 근거 없는 편견들을 늘어놓는다. 2화에서 여성 주인공들이 수영복을 입었는데, 이를 두고 패널들은 "뛰어난 몸매였죠.", "훌륭하죠", "정말 예뻤어요.", "볼륨도 상당하구요."란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이건 뭐 디스패치도 아니고.


외모에 대한 칭찬이 반드시 나쁜 거란 생각은 안한다. 많은 경우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노력으로 이루어낸 뭔가를 칭찬해주는 건 받는 입장에서 기분 좋을 수도 있으니까(하지만 그런 종류의 칭찬도 듣는 입장에선 압박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다). 다만, 남자들도 수영을 하려고 맨 몸을 드러냈음에도 남자들의 몸매에 대한 평가는 1도 없고, 오로지 여성들에 대해서만 외모 평가가 있다는 건 일본에서 여성들이 다른 지표들보다 우선 외모로서 더 자주 평가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대놓고 한다는 게 일본 특유의 문화라면 문화라 볼 수 있지 않을까나. 적어도, 한국 예능 프로에서 대놓고 외모 평가를 하지는 않잖나. 디스패치도 아니고.


난 일본에서 여성이 2등 시민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 중 하나인데, 이는 일본 콘텐츠에서 거의 매번 여성을 2등 시민으로 보는 듯한 뉘앙스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애니, 영화, 소설 등등에서 매번 확인한다. 전자기기를 제외한 메이드 인 재팬에선 항상 확인한다. 그래서 이런 글도 적고, 이런 글도 적었었다. 일본 콘텐츠에는 여자는 남자보다 무엇이건 못할 거다 라는 식의 뉘앙스가 상당히 많다. 이는, 콘텐츠 제작자들이 유독 빻은 인간들이라서 생기는 환상일수도 있다. 즉, 일본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일본의 콘텐츠 제작자들이 유독 빻은 인간들이라 생기는 신기루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이 전혀 그렇지 않고 제작자들만 빻은 소리를 한다면, 해당 작품들은 대중들에게 호응도 받지 못하고 나오자마자 묻히는 게 정상이다. 가령, 제작자 혼자 부인하지만, 누가봐도 강남역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영화 <토일렛>은 8월에 개봉한다고 시건방을 떨지만 개봉도 못할 가능성이 높다. 여론이 분명하니 극장주 입장에서 온갖 리스크 감당하며 극장에 걸어줄 이유가 1도 없기 때문이다. 아니, 상업성이 없으면 영화가 담은 뜻이라도 아름다워야할 거 아냐? 


콘텐츠는 소비자들의 이데올로기를 거스를 때 필연적으로 공격을 받는다. 그런데 일본의 수많은 빻은 콘텐츠들은 그럼에도 유통되었고, 유통되고 있고, 앞으로도 딱히 바뀔 것 같진 않다. 그러므로 그런 것이 아무런 문제 없이 대중 전반에게 유통된다면 그것을 소스로 삼아 해당 문화권을 이해하는 것은 꽤나 효과적인 접근법이라 본다.


이런 접근법에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 일본에 살아보고, 일본의 사람들을 겪어보는 게 더 나은 접근법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접근법에도 한계는 있다. 사람을 직접 만나는 식으로 일본 문화를 이해하려한다면, 물리적으로 만나볼 수 있는 표본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더 나아가, 일본에서 직접 여성으로서 살아보지 않는 한 이 문제는 영영 제3자 입장에서 접근하는 것일 수 있고, 또 한편으론 일본에서 직접 여성으로서 살아보는 이들은 더욱 해당 이슈를 객관적으로 접근하지 못할 개연성이 있다. 


필자는 그저 콘텐츠로, 경제적으로나 물리적으로 허용된 범위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리고 썩 나쁘지 않은 접근법인 것이라 자평한다. 이 접근법에도 한계는 있다. 볼 수 있는 콘텐츠의 양이 제한되어있기 때문에 어떤 콘텐츠를 보느냐에 따라 판단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노화가 진행되지 않는 시간과 정신의 방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 방은 늙지 않는 사이어인들에게만 유용하다.

-

제 글을 즐기셨다면 원고료를 지불해주셔요. 소액도 관계 없습니다.

현금 후원- 카카오뱅크 3333-03-5528372 박현우

스타벅스 커피 기프티콘을 받기도 합니다. 카카오톡- funder2000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사랑입니다.

-
작가 페이스북
글쟁이 박현우
헬조선 늬우스

매거진의 이전글 '뷰티풀 군바리'는 왜 구린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