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현우 Oct 06. 2017

연애를 시작한 뒤 음악을 덜 듣는다는 친구


연애를 시작한 이후로, 그러니까 누군가와 육체적-감정적 교감을 꾸준히 나누는 요즘엔 음악을 덜 찾는다는 친구. 예전만큼 음악에 대한 욕구가 있지는 않다고 했다. 매번 재즈를 듣고, 재즈바를 가던 친구의 말이다. 누구보다도 음악을 좋아하고 사랑했던 인간. 친구는 여자친구와 한달간 "시간을 갖는 기간"을 가질 때 다시 음악을 찾아들었는데, 그때 새삼스레 자신이 원래 음악을 듣던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시간을 갖는 기간"이 끝난 뒤 친구는 다시 음악을 덜 찾았다. 어떤 종류의 공백이 연애를 통해 채워지고 있었으니 음악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으리라.


나의 경우, 연애를 시작한 뒤로 글을 잘 쓰지 못했다. 꾸준한 관심을 요구했던 상대탓을 할라면 할 수도 있겠지만 연인이 없을 때의 우울, 고독, 침울함이 글을 쓰는데에 더 없이 좋은 소스라는 것을 부정하기도 힘들다. 사랑이란 것 자체가 글을 쓰는데에 도움이 안되는 건 아니었다. 군대에서 누군가를 짝사랑할 때 썼던 편지들은 고민도 없이 쉴 새 없이 휘갈겼다. 문장 하나를 쓰면 다음 문장은 자동으로 쓰여졌고 세 장은 기본이었다. 그 뒤에 또다른 누군가를 생각하며 글을 썼을 때나 그 사람에게 차인 뒤에 글을 쓸 때도 크게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다. 아니, 글은 이미 적혀있었고, 그저 손을 놀렸다. 감정이 강렬하니 글도 쉽게 나왔던 것. 그런데 사랑이 쌍방으로 교환될 때, 그러니까 나 역시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으며 어떤 종류의 환희가 내 감정 전반을 지배할 땐 문장이 쓰이지 않았다.


연애 초기엔 글을 쓸 욕구 자체가 없어서 글이 써지고 말고의 문제는 별로 거슬리진 않았다. 행복에 겨워죽겠는데 글 따위에 관심이 갔을리가? 그런데 연애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글에 대한 욕구가 올라왔는데 정작 글이 쓰이지가 않았다. 연애가 더이상 즐겁지 않았고, 더이상 상대를 사랑하지도 않게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이라기보단 집착을 받는 상황이었으니 환희가 찰 틈도없었고, 상대에 대한 감정도 사라지고 없었다. 상대방이 보인 어떤 모습은 순식간에 내 속에 있던 좋은 감정을 앗아갔고, 자연스레 연애는 당장 벗어나야할 무엇이 된 것이다. 연애는 그저 시간 낭비였고, 연애가 지속될 수록 영혼이 매말라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별 후에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연애와 글쓰기가 필요충분조건인지, 함께 할 수 없는 종류의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환희건 우울이건 감정이 극단으로 치달으면 글 자체가 잘 안쓰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적당한 기분 좋음과 적당한 우울함을 속에 가두어놔야하는 건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