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님의 '일간 이슬아'를 보고 적잖이 충격 받았습니다. 구독을 신청하는 자들에게만 글을 보내는 그런 모델은 이전에 상상도 하지 못했었으니까요. 발상의 문제입니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잡지와 일부 인터넷 언론사들이 채택하고 있는 모델이니까요. 미국에서도 지금은 언론사들이 구독 모델을 다시 살리는 실험을 하고 있죠. 그런데 '1인'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는 조금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박스 안에 있었던 거죠.
‘일간 이슬아’가 보여준 구독 모델이 인상적으로 보였던 이유는 매개체를 통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출판사를 통할 필요도 없고, 웹사이트를 만들어 회원가입이나 결제 시스템을 구현할 필요도 없죠. 글만 쓰면 되고, 그 외의 것들은 그다지 신경쓸 필요가 없습니다.
글만 쓰면 되고 그외의 잡다한 부분을 신경쓰면 안된다는 부분이 얼마나 이상적인 것인지는 아는 분들은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글을 쓰는 자와 글을 받는 자들은 이메일 사용법만 알면 됩니다. 아, 송금을 하는 방법도. 하지만 정작 ‘우와’만하고 시작하지는 못했습니다. 스스로를 그다지 믿지 못했기 때문이죠. 사람들이 저나 제 글을 좋아해줄 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제 글을 돈을 주고 구독할 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습니다.
쓴 글 중에서 넷상에서 흥행한 글이 많고, 이 부분에서는 딱히 다른 넷상의 글쟁이들에게 꿀리지 않는다 생각하면서도 확신을 가지지 못한 이유는 글이 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글이 흥하는 것은 글이 내포하고 있는 어떤 메세지 때문이지 그 글을 쓴 사람 때문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입장은 지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헬조선 늬우스도 마찬가지입니다. 헬조선 늬우스는 ‘헬조선’이라는 2015년 9월 당시 나름 핫했던 단어로 빠르게 성장한 페이지입니다. 그 유행을 이용하려고 만든 페이지는 아닙니다. 다만, 그 코드에 열광하던 사람 중 하나였고, 장난 삼아 만든 페이지인데 '물'이 좋았죠. 노를 살짝만 저어도 멀리 나아갔습니다. 박현우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페이지 작명을 잘하고, 그 코드에 부합하는 글을 쓰거나 적당한 기사들을 효과적으로 배포했을 따름이죠.
상황이 이렇다보니 제 이름을 걸고 글을 배포한다는 컨셉 자체가 과연 먹힐 지 의문이었습니다. 브런치의 구독자가 5천명이 넘건, 페이지의 좋아요가 5만이 넘건, 그런 건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죠. 저 개인에 대한 호불호가 반영된 숫자가 아니니까요. 결국, '일간 박현우'는 제 글을 좋아하거나 박현우라는 인간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만' 효과적인 무엇이 될 것이라는 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하지 못했죠.
지금까지 일종의 후원 모델을 실험했었습니다. 글이 마음에 들면 돈이나 커피 기프티콘을 달라는 거였죠. 이 모델은 물뚝심송 박성호님의 '자발적 후불제 원고료' 실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따라한 것입니다. 그는 글 말미에 이런 문구를 넣고는 했죠.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자발적 후불제 원고료를 지불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시길 권합니다. 지불 방법도 아주 쉽습니다."
저도 브런치에 비슷한 문구를 넣기 시작했습니다.
"콘텐츠 소비에 대한 자발적 후불제 원고료를 지불해주세요. 1인 창작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현금 후원- 카카오뱅크 3333-03-5528372
페이팔 정기 후원(링크)
스타벅스 커피 기프티콘을 받기도 합니다. 카카오톡-funder2000"
이 문구는 효과적이었을까요? 네, 효과적이었습니다. 후원료나 기프티콘 같은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더군요. 저 문구는 일종의 트리거가 되어서 사람들이 후원을 하게끔 만들었습니다. 별 생각 없던 사람들도 저 문구에 영향을 받았죠.
하지만 썩 만족스러운 정도로 후원이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 즉, 후원으로 생계를 꾸릴 수는 없었습니다. 스타벅스를 내 집처럼 드나들 경비는 충분히 마련되었지만, 그 외의 경제적인 것들은 해결되지 않았죠. 그래서 Be Sensitive라는 월간지도 기획해서 먹고사니즘을 해결해보려 했고, 출판사와 미팅도 가졌습니다. 월간지는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출판사와 작업하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습니다.
출판사는 하는 일에 비해 가져가는 게 많더군요. 5~7%의 인세를 준다는데 딱히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위에 책 디자인해준다는 분들도 있고, 홍보할 역량도 있고, 텀블벅이나 와디즈같은 클라우드 펀딩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어서 굳이 출판사를 통해야할 이유는 찾지 못하겠더군요. 시대가 변했습니다. 글쟁이들은 출판사를 통할 필요가 별로 없어요. 노동 대비 아웃풋이 심각하게 떨어집니다.
이것저것 알아보는 와중, 저는 '일간 이슬아'를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것처럼 '우와'하게됐죠.
고민을 멈추고 무작정 시작했습니다. 잃을 건 없는데 얻을 수 있는 건 많더군요. 가령,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면 제 글을 돈을 주고 구매할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 지 데이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는 차후에 나올(나와야한다) 월간지 Be Sensitive가 얼마나 팔릴 지 가늠하는 데이터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원래 하루에 글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한다고 해도 딱히 노동량이 늘어나거나 하지는 않죠. 브런치에 공개적으로 썼던 글들을 앞으로 유료 구독자들만을 위해 쓴다는 게 바뀔 뿐입니다. 다만 전보다 힘을 빡 주긴하겠죠.
또, 이게 가장 중요한데,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글이 잘 나옵니다. 돈 때문에 사람이 찌질해지면 찌질수록 사상이 빈곤해지고 폭력적으로 변합니다. 박스 바깥의 생각을 할 수도 없게 되죠. 글의 퀄리티-저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이 실험은 해볼법한 무엇입니다.
개인사정을 언급하며 후원을 구걸할 수도 있지만, 존심상 그것은 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글을 써내고, 그 글을 구독자분들이 구매하게끔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면 서로 윈윈할 수 있겠죠.
잘될까요? 잘되게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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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박현우 3월분 신청은 3월 4일 자정까지 받을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