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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Sep 29. 2020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한 썰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돈이 아닌 경험을 목적으로 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내가 원할 때, 내가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는 일. 그런 일은 놀이와의 경계가 희미하다.      


형, 오늘 뭐해요? / 오늘? 별 거 없는데 왜. / 알바 좀 해주실 수 있어요? 직원이 갑자기 아프대. / 오케이.     


준수라는 동생이 일주일 전에 식당을 열었다. 성수동 철판닭갈비, 품꼬. 나는 음식점 경영도 닭갈비 조리도 모르지만, 직원이 갑자기 결근하면 힘들다는 건 잘 안다. 부랴부랴 준수네 가게로 이동.     


준수는 나를 보며 안도했다. 그럴만한 게, 나 아니었으면 오늘 장사 못 했다. 오늘 내가 맡게 된 일은 주방 보조. 점심 메뉴인 닭갈비 덮밥, 닭발 덮밥, 냉쫄면 각각을 세팅하는 법과 초벌 설거지 후 식기세척기를 돌리는 법과 주문받은 음식을 확인하고 처리하는 법을 배웠다.      


손님이 많았다. 모든 지식은 배우기 무섭게 활용되었다. 닭갈비 덮밥은 먼저 공깃밥을 대접에 옮기고 주걱으로 흩뜨렸다. 준수가 닭갈비를 얹어주면, 나는 옆에 파채와 콩나물과 김을 얹어 내놓았다. 홀 직원은 거기에 깨를 뿌려 서빙했다. 닭발 덮밥은 먼저 대접 위에 밥을 놓고 김과 소금과 참기름을 넣어 비볐다. 준수가 그 위에 닭발을 올리고, 나는 옆에 파채와 콩나물을 얹었다. 냉쫄면은 면을 삶고 찬물에 식힌 뒤 대접 위에 올리고 당근채와 닭가슴살과 파채와 콩나물을 두루 얹고 양념장을 크게 두 스푼 넣고 동치미 육수를 촉촉하게 다섯 국자 넣었다. 다섯 국자는 너무 많아서 나중엔 세 국자로 줄였다.     

손님 받는 동안엔 설거지할 새도 없다. 점심 장사를 마친 뒤 비로소 설거지를 시작했다. 뜨거운 물에 수세미로 쓱쓱 헹구고 식기세척기에 차곡차곡 쌓아 넣으면, 다음은 기계의 몫이었다. 그렇다 해도 일이 많았다. 무지무지하게 많았다. 그릇을 다 씻고 나니 네 시. 빡세다 빡세.     


우리도 밥을 먹어야 한다. 오늘 메뉴는 점심 장사하고 남은 닭발 덮밥. 맛이 좋아 다 먹었다. ‘이 정도 맛이면 마음 놓고 팔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엔 홀과 주방을 번갈아가며 보았다. 점심과는 사뭇 다른 저녁 장사. 더 적은 손님이 더 오래 머무르며 더 많은 걸 주문했다. 손님의 오더에 귀 기울이고, 주문 내역을 포스에 입력했다. 파채와 콩나물을 계량하고 뒤집개로 닭갈비를 볶았다. 물을 끓여 라면사리와 치즈떡 사리를 익혔다. 카드를 받아 계산하고 틈틈이 설거지를 했다. “어서 오세요, 품꼬입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큰 소리로 인사했다. 손님들이 웃었다. 나는 한의원 일과 식당 일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생각했다.     


일은 열 시가 넘어서 끝났다. 나도 준수도 지쳤다. 그러나 둘 다 웃음을 잃지 않았다. 간만에 아주 보람찬 하루. 준수는 앞으로 잘 될 거다. 그래야 마땅하다.

'어디에 있든지 주인이 되어라. 처한 곳 어디든 진리가 있으니.'

(19.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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