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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에 라면에 김밥 먹었습니다.

2020.6.30.

by 해피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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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직전, 단톡방에 라면 사진이 올라옵니다. 제 점심 메뉴가 정해지는 순간입니다.

라면에는 김밥이 잘 맞죠. 한의원 근처에 둘 다 잘하는 집이 있습니다. 아주 유명하진 않지만 은근히 잘 되는 집입니다. 딱 기분이 나쁘진 않을 정도로 불친절한 것도 특징입니다. 빈자리에 앉은 저를 보고는 오늘도 심드렁하게 묻습니다.

뭐 드려요.
해장라면 하나, 김밥 하나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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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주문했는데 김밥이 먼저 나옵니다. 여기 라면은 시간이 좀 걸립니다. 라면도 금방 나오겠지 하고 김밥에 손을 댔다간, 김밥을 다 먹고 나서야 라면을 먹게 됩니다. 전에 제가 그랬습니다. 이번엔 그러지 않기 위해, 살포시 벽으로 밀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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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이 나옵니다. 뚝배기에 담겨 더 먹음직스럽습니다. 근데 김치가 안 나옵니다.

김치 좀 주시겠어요?
배추김치요 깍두기요.
배추김치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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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친절한 집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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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은 밥이 적고 내용물이 많으면 무조건 맛있습니다. 여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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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은 맛이 없으면 안 됩니다. 해장라면답게 콩나물이 들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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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과 라면이 참 잘 어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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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먹는 사진을 같은 단톡방에 올립니다. 저로 인해 라면을 먹는 사람도 존재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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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었으니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여기 계산할게요.
해장라면 하나 김밥 하나 칠천오백 원요.
여기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예.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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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하고 나오며 생각해보니, 여기 사장님이 특별히 짜증을 내거나 반말을 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말할 때 전혀 웃지 않을 뿐입니다. 지극히 사무적인 말투. 그러니까 여기 사장님은, 감정 노동을 하지 않으십니다. 나는 어떻지? 문득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아이고~ 어머니. 허리 아파서 오셨어? 잘 오셨어유~ 내가 잘 봐드릴게. 어 무릎도 아파? 알았어유. 무릎도 치료해 드릴게. 믿고 치료받아 보셔~ 아이고, 침 아프게 놓으면 안 된다고? 알았어유 살살 놔 드릴게~ 아주 놨는지도 모르게 놓을게.

저는 무대에서보다 진료실에서 더 많은 연기를 합니다. 처음 보는 할머니를 마치 이산가족처럼 반깁니다. 감정 노동으로 따지면 이미 중노동잡니다. 사실 대부분의 한의사가 그렇게 살고 있을 겁니다. 이 글 보고 계신 원장님들. 모두 수고 많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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