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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여행기 1일 차

2020.8.14.

by 해피엔드

여행의 시작을 어디부터 잡아야 할까. 만약 기분이 설레는 시점으로 잡는다면, 켠이 등장했을 때 여행은 분명히 시작했다. 거기부터 쓴다.

배와 나는 집이 가깝다. 평소에도 종종 만나 이야길 나눈다. 전날 밤 배의 집에 모두 모여 함께 출발하기로 정했지만 실제로 온 것은 나뿐. 둘이 맥주 마시며 이야길 나눠도 딱히 여행 기분은 아녔다.

켠은 새벽 한시쯤 왔다. 일하느라 짐 싸느라 늦었단다. 요즘 일이 많아 피곤하다며 마사지나 받고 오자는 켠. 나와 켠은 마사지 매니아다. 배는 졸려서 자고 켠진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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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건너에 있는 왕조풋샵. 발마사지+후면 전신 5만 원. 압이 좋고 시원했다. 90분 동안 꿈과 생시를 오갔다.

야. 허리를 주무르는데 신기하게 코가 뚫리더라.
어그게바로원위취혈의신비지…...
뭐?
어그런게있어좋은거야…...

켠은 코가 뚫렸고 나는 잠꼬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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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니 세시 반. 배의 집에 돌아가 잠깐 누웠다가 네 시 넘어 나왔다. 택시 타고 서울역으로. 역사 안에 있는 모든 상점이 닫혀있었는데, 오직 맥날만 예외였다. 아아 네 잔 주문. 커피 들고 나오니 저 멀리 팡이 보인다. 드디어 A4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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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예정대로 5:11에 출발했다. 나는 바로 잠들었다. 강릉까지는 딱 두 시간 걸렸다. 역에서 나와 택시를 탔다. 기사님 사투리가 구수했다.

여기가 원래는 안목항이었어요. 울릉도 가는 배가 생기면서 강릉항으로 바뀌었지요.

억양이 구수했는데 글로는 표현이 안된다.

강릉항 도착. 바다 냄새가 난다. 탑승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카페에서 빵과 커피를 주문하고, 편의점에서 멀미약을 세 개 샀다. 배는 호기롭게 멀미약을 거부했다. 켠이 사전에 부탁한 일회용 카메라를 나눠줬다. 켠은 카메라를 받자마자 개봉했다.

우리 인생은 찰나의 연속이지만,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서른아홉 개의 순간만 선택할 수 있는 거지.

켠이 우리를 찍으며 말했다. 뭔가 그럴듯한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연결이 안 되는 문장이었다. 켠은 요즘 회사일이 많아 피곤하다 했다. 나는 잘 작동하는 폰카를 두고 굳이 어떤 타이밍에 일회용 카메라를 꺼내야 할지 고민했다. 울릉도에서 마주친 사람들을 찍을까? 아니지, 그럴 사람이 없을 텐데. 바다 사진만 찍을까? 아님 음식 사진? 아니, 아니야. 그건 너무 흔해. 일회용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친구들을 찍을까? 그래. 그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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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여덟 시 반. 여객 터미널에서 티켓을 발급받아 승선했다.

금일 동해상의 높은 파고로 인해 선체 동요가 예상됩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반드시 멀미약을 복용하시고...

겁을 주는 안내방송이 반복되었다. 팡이 슬그머니 멀미 봉투를 가져와 나눠주었다. 출발할 땐 흔들리지 않던 배가 먼바다로 나오니 요동을 쳤다. 그래도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배켠팡진 모두 토하지 않았다. 심지어 팡배는 멀미약도 안 먹었다. 이 정도면 날씨운이 좋다고 봐야지.

울릉도는 멀리 있었다. 자고 또 자다가 깼는데도 보이지 않았다. 저동항까지 세 시간 이십 분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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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완전 화창했다. 하선하여 단체샷 찍고 렌터카를 찾았다. 점심은 정애식당. 홍따밥(홍합따개비밥) 두 개와 꽁치물회 두 개를 시켰다. 육지에서 먹어본 적 없는 메뉴다. 밥 국 반찬 모두 담백했다. 재료 본연의 맛과 향이 살아있었다. 하나도 안 빼놓고 다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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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는 풍미당제과에서 엉겅퀴빵, 호박빵, 오징어먹물빵을 사고 편의점에서 마실 것들을 샀다. 숙소까지 차로 이동. 꼬불꼬불 산길을 거슬러 도착한 대아리조트는 1박 17만 원짜리 방 치고는 상당히 허름했다. 모텔도 아닌 여인숙 수준. 울릉도 물가가 비싸긴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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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샤워를 못한 진켠배가 순서대로 씻었다. 한 명이 씻는 동안 다른 셋은 누워서 쉬었다. 다음 일정은 팡이 정했다.

울릉도 부속 섬 중에 크기순으로 죽도가 첫 번째, 독도가 두 번째고 세 번째가 관음도야. 원래 자연 그대로 보존돼있어 보기만 하는 곳이었는데, 최근에 다리를 놓아서 도보로 다녀올 수 있대.

아무도 가이드를 하지 않으니 결국 팡이 나섰다. 그렇게 팡투어 시작. 이번에 다 같이 장만한 조던을 함께 신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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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터널을 지나 울릉도 북동쪽으로 나오니 관음도가 보인다. 길가 푸드트럭에서 호박식혜와 아메리카노로 목을 축였다. 입장료 사천 원씩 총 만 육천 원을 내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현수교 위에서 점프샷을 찍었다. 관음도 전망대를 풀코스로 돌았다. 정말 환상적인 경치였다.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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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킹 좀 했다고 등이 땀에 젖었다. 배도 고프다. 낮에 해물을 먹었으니 저녁엔 고기를 먹어야 한다. 팡이 말하길, 여기 소는 약초를 먹고 자라서 약소라 한단다. 고깃집 중에 가장 유명하다는 약소마을에 갔으나 재료 소진으로 영업 마감. 대신 옆에 있던 향우촌으로.

약소구이 스페셜 4인분 주세요. 맛있는 참 하나 주시고요.

소고기와 소주가 달았다. 불고기 2인분을 추가해 밥까지 비벼 먹었다. 다들 알딸딸하게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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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는 독도 수산. 오징어회와 호박막걸리를 시켰다. 나는 술에 취해 계속 졸았다. 졸다 못해 아예 배 무릎을 베고 자버렸다. 30분을 기다렸는데 회는 안 나오고 막걸리는 없다 해서 그냥 나왔다. 나만 잘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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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새우에서 새우튀김을 사고 하나로마트에서 맥주와 라면을 샀다. 숙소로 돌아와 맥켈란을 깠다. 새우튀김과 낮에 사둔 빵과 우유를 먹었다. 각자의 근황을 공유했다. 인생과 여행에 대해 이야기했다. 많이 웃었다. 열악한 숙소에 오래된 이불을 깔고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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