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엔 역시 양양이죠.
일 년에 한두 번은 양양에 갑니다. 서핑하러. 길이 잘 뚫려있어 금방 갑니다. 마침 별다른 일정이 없던 이번 주말. 같이 갈 사람을 찾아보았으나 다들 일정이 있네요. 까짓 거 혼자 가면 됩니다. 네비에 죽도해변을 찍고, 유튜브로 90년대 락발라드를 틉니다.
처음부터 너란 존재는 내겐 없었어. 니가 내게 했듯이. 기억해 내가 아파했던 만큼 언젠간 너도 나 아닌 누구에게 이런 아픔 겪을 테니.
익숙한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다 보니 금세 양양입니다.
성수기 주말이지만 코로나 때문인지 사람이 많지도 적지도 않고 적당합니다. 조용히 해변을 산책하다 편의점으로 갑니다.
청하와 프랑크 소시지를 사들고 야외 테이블에 앉습니다. 앞에 놓인 쓰레기가 담뱃갑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플레잉 카드 케이습니다. 앳된 청년들이 옆 테이블에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가까워서 얘기하는 게 다 들립니다.
야. 솔직히 양양까지 와서 이러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러니까. 바다 와서 원카드가 뭐냐. 원카드가.
양양까지 와서 원카드 하는 청년들 옆에서 혼술 합니다.
2차는 클라우듭니다.
원카드! 야 너 빨리 먹어.
무슨 소리야. 나 원카드 했어.
야 너 진짜 치사하게 이럴 거야?
아니 분명히 원카드 했다니깐. 야. 내 말 맞지?
앳된 청년들은 아직도 카드놀이 중입니다.
3차로 먹을 만두를 데워왔더니 청년들은 어디 가고 없습니다. 저도 만두와 맥주를 먹고 숙소로 들어가 잠을 청합니다.
아침입니다. 아아 한 잔 사서 바다로 갑니다.
날씨가 좋습니다. 부지런한 서퍼들은 벌써 물에 들어가 있습니다. 커피를 다 마시고 샵으로 가 슈트와 보드를 렌탈합니다. 1일 렌탈료 5만 원.
외국에선 어떨지 몰라도, 한국에서의 서핑은 그렇게 익사이팅하지 않습니다. 물속에서 파도를 기다리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렇다고 뭐 집채만 한 파도가 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해변으로 보내줄 수 있을만한 작은 파도 하나를 목이 빠져라 기다립니다. 그래도 어쩌다 하나 잡아 타면 그게 짜릿합니다. 그 맛에 합니다.
오늘따라 바다가 호수처럼 잠잠합니다. 패들링 하느라 팔힘만 뺍니다. 점심때가 되니 배도 고픕니다. 서핑은 여기까지. 그래도 몇 번 탔으니 만족합니다.
샤워하기 전에 인증샷으로 슈트 셀카 정도는 찍어줘야 합니다. 그래야 서핑 다녀온 겁니다.
여행에 식도락이 빠질 순 없죠. 양양 맛집으로 향합니다.
입구에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도 대기표 받고 기다립니다. 대기용 의자에 편안히 앉아있다 차례가 되어 들어갑니다.
메뉴를 훑어보지만 혼자선 시킬게 메밀국수뿐입니다.
메밀국수 하나 주세요.
국수가 나왔는데 어떻게 먹어야 할지 감이 안 옵니다. 옆 테이블 아저씨한테 조심스레 물어봅니다.
저 이거 혹시 여기다 부어 먹는 건가요?
네. 저기 보시면 자세히 나와있어요.
아저씨께 물었는데 맞은편의 따님이 벽을 가리키며 대신 알려줍니다. 친절도 하셔라.
동치미 국물과 겨자, 참기름, 양념장을 조금씩 넣고
한 젓가락 당겨봅니다. 음... 아무래도 줄 서서 먹을 맛은 아닙니다.
혹시나 해서 양념장을 좀 더 넣어봅니다. 오. 맛이 좋아집니다.
겨자와 참기름도 더 넣습니다. 아. 왜 줄 서는지 알 것 같습니다.
국수 양이 몇 젓가락 안 됩니다.
여기 사리 하나 주세요~
새로 나온 사리를 넣고
이번엔 처음부터 양념과 참기름 겨자를 듬뿍 뿌려줍니다.
저는 계란을 마지막에 먹습니다.
동치미 남겼다고 비난하시면 안 됩니다.
양양 맛집 인정합니다.
이제 서울로 돌아갈 차례. 길이 많이 막힙니다. 올 때처럼 90년대 락발라드를 따라 부릅니다.
꼭 하나만 바래요. 날 대신해 그녈 영원히 지켜줘야 해요. 내가 못 이룰 사랑, 이제는 다 모두 이룰 그대. 행복하길. 그녀의 사랑이니까.
길은 막히고 몸은 피곤하지만 기분이 좋은 주말입니다.(20.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