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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Jun 21. 2019

도쿄 여행기 6일 차

2018.8.2.

오늘은 구체적 일정이 없다. 여덟 시 이십 분에 모여 아침을 먹었다. 일본식 아침밥 너무 맛있다. 매번 감탄 중이다.


날도 덥고 그간 열심히 돌아다녔으니 오늘은 세 시까지 쉬자는 곽의 제안에 모두 동의했다. 문 밖에 do not disturb 붙여놓고, 맥주 한 캔 마셨다. 하스스톤 좀 하다 누워 잠을 청했다.


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람보르기니였나? 좋은 차였다. 액셀을 밟으면 성난 듯 달려 나가는 게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다 정차 중이던 차를 ‘톡’ 하고 받았다. 앞차도 슈퍼카였다. 내려서 보니 눈에 띄는 손상도 없는데, 복잡하게 보험 처리하지 말고 이천만 원만 달란다. 아니 이 무슨…

하다가 잠에서 깼다. 하 뭐 이런 꿈을. 분명 깼을 당시엔 ‘꿈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놓고, 여행기를 쓰는 시점에서는 ‘재수 없게 뭐 그런 꿈을 꾸나’ 하고 있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변한다.


두시 사십 분. 곽이 교자 사진을 보냈다. 숙소 앞의 교자 집. 나도 먹고 싶어 얼른 나왔다. 물만두와 군만두 모두 맛있었다. 쟈니덤플링 이상이었다.

오전 동안 곽은 하루키가 두 번째로 열었던 재즈바와 그가 애용하던 이발소에 다녀왔단다. 민은 언어의 정원에 나왔던 장소에 다시 다녀왔단다. 이 자식들. 그럴 거면 같이 가자 하지. 혼자 괜히 숙소에서 악몽이나 꾸고 있었다.


3개월 전부터 예약해둔 지브리 박물관에 갈 차례였다. 주오선을 타고 미타카 역에서 내려걸었다. 날은 덥지 않고 길과 동네는 아름다워 걷기 좋았다.

지브리 박물관은 그 위치부터 동화적이었다. 도심에서 멀리, 나무가 울창한 공원 한편에 비밀스레 자리 잡고 있어서, 마치 헨젤과 그레텔이 되어 과자로 만든 집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건물 내부도 일반 계단, 회전 계단, 다리, 전망대 등이 올망졸망 복잡하게 얽혀 재미있는 구조였다. 하지만 실내에선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찍지 못했다.

총 3층에 걸쳐 각각의 방마다 지브리의 역사,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는 과정, 미야자키 하야오가 작업하던 환경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중 유난히 감명 깊게 본 전시물이 있는데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중앙에 기둥이 있는 원통형 기구로, 기둥 주위에는 똑같은 인형들이 원형 트랙을 돌듯이 반복적으로 늘어서 있었다. 그러나 동작이 조금씩은 달랐다. 마치 애니메이션의 각 프레임처럼. 잠시 후 원통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고 동시에 불이 꺼져 인형들은 보이지 않았다. 회전 속도가 충분해지자 깜빡깜빡 빠른 주기로 점멸등이 들어왔다. 그러자 그 불빛에 맞춰 통 안의 인형들이 일제히 춤을 추었다. 인형에 생명이 불어넣어지는 순간.

왜인지 모르겠으나 이걸 보고 있으니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들며 코 끝이 찡해졌다. 신기한 것은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라는 점이다. 곽과 민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는 것. 곽은 나중에 딸을 데리고 다시 오겠다했다. 나는 괜히, 있지도 않은 딸에게, 그러나 어쩌면 다른 평행우주 속에서는 존재했을지 모르는 딸에게, 데리고 오지 못하여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가 조금 더 찡해졌다.

(한국에 돌아와 검색해보니 스트로보스코프라 부르는 물건이었다. 해당 영상을 링크하니 참고하시라.)

https://www.youtube.com/watch?v=J0qYzJUoT7g


지브리 박물관에선 영화도 한 편 볼 수 있다. 우리가 본 것은 털벌레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이었다. 벌레가 기고, 먹고, 똥을 싸는 등의 모든 음향을 사람 입으로 소리 내어 표현한 점이 신선했다. 벌레가 똥을 쌀 때마다 어린 관객들은 소리 내어 웃었다. 어른 관객에게는 다소 난해한 작품이었다.


박물관 2층에는 카페가 있다. 여기서 아이스크림을 판다. 가격은 400엔. 밀크 맛, 요구르트맛, 둘이 믹스한 맛 세 종류가 있다. 우리는 믹스를 시켰다. 너무 달지도 않으면서 상큼한 것이 어딘가 고급스러운 맛이어서, 아이스크림을 다 먹는 동안 “너무 맛있다.”는 말을 대여섯 번씩은 했다. 박물관을 나오기 전에 처음에 보았던 원통형 전시물을 한 번 더 보기로 했다. 또 봐도 감동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가보지 않은 공원 쪽 길을 택했다. 공원 안에 트랙이 있고 그 옆에는 철봉이 있었다. 그걸 본 곽이 턱걸이를 하고 가자 했다. 곽은 분명 턱걸이를 한 개도 못 했었는데. “곽, 이제 턱걸이 몇 개나 하냐?” “음, 예닐곱 개?” 놀라웠다. 대답대로, 곽은 어떤 꼼수 없이 정자세로 턱걸이 여섯 개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와. 너 하나도 못 했었잖아.” “야, 내가 턱걸이 시작한 지 벌써 일 년이 넘었어.” 노력하면 못 할 게 없다.

키치조지 역에 도착. 스타벅스에서 파는 복숭아 음료가 맛있어 보여 다 같이 마셨다. 시원했다. 

신주쿠 역 근처에서 식사를 하고 들어가자는 민 제안에 따라갈 곳을 찾다 이소마루수산에 들어갔다. 많이 먹고 마셨다. 

2차로는 숙소 근처의 장춘관에 갔다. ‘가루비’와 ‘치게’를 시켰는데, 맛본 적 없는 갈비와 정체불명의 찌개가 나왔다. 중국 사람이 한국 와서 짜장면 먹으면 이런 기분일까? 25도짜리 진로소주가 1300엔이었다. 25도 치고는 너무 순했다. 그런데 두 잔 만에 취했다.

앉아서 조는 나를 곽이 깨웠다. 친구들을 남겨두고 먼저 들어왔다. 그대로 침대에 녹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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