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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Jun 21. 2019

도쿄 여행기 7일 차

2018.8.3.

여덟 시 사십 분에 모이기로 했다. 곽이 내려오지 않아 전화 걸어 깨웠다. 아홉 시에 아침을 먹었다. 모이는 시간이 점점 늦춰진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곽과 민도 어제 진로를 마시며 급격하게 취했다했다. 25도가 맞나 보다. 둘 다 숙취로 괴로워했다. 하. 출근환을 넉넉히 가져왔어야 하는데.


여유 있게 열한 시에 나섰다. 오늘 목적지는 오다이바. JR을 타고 도쿄텔레포트 역에서 내렸다. 밖으로 나오니 무지하게 덥다. 한 편에선 걸그룹이 열심히 춤을 추고 있었다. 이 날씨에 춤이라니, 저들도 힘들겠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다는 연예인 걱정을 했다.


15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건담 모형이 있어 같이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셋 다 건담을 몰라서, 구체적으로 어떤 건담을 배경으로 찍고 있는지 잘 몰랐다. 당연히 별 감흥도 없었다.

점심은 회전초밥집에 왔다. 간판에 sushi train이라고 쓰여 있는 집이었다. 초밥을 주문하면 신칸센으로 배달 오는 게 귀여웠다. 맛도 좋아 여러 접시를 먹었다. 깨 아이스크림이 있어 주문해 보았다. 깨 꿀떡 맛이 났다.

밖에는 아직도 걸그룹이 춤을 추고 있었다. 옷을 보니 아까와는 다른 그룹이다. 청중들은 당연히 남자들 뿐이었는데, 다 큰 남자들이 걸그룹 안무를 열심히 따라 하는 것이 신기해서, 그걸 촬영하려다 스탭에게 저지당했다. 촬영 금지 팻말을 못 봤던 게 아닌데. 거리가 멀어서, 연예인을 찍는 게 아니어서 괜찮으려니 했다. 약간 민망했다.


덥다. 뙤약볕이다. 숙제하는 기분으로 자유의 여신상을 향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간 곳에 좀 아담한 여신상이 있었다.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근데 여기에 자유의 여신상이 왜 있는 거야?” 내가 물었다. “몰라.” 우리의 공식 가이드인 곽도 몰랐다.

온천에 갈 차례다. 온천은 멀고 날은 더웠다. 에어컨 좀 쐬었다 가자며 아쿠아시티에 들렸다. 그저 몸을 식힐 목적이었는데 생각보다 볼만했다. 특히 점프샵. 프리더를 모티브로 만든 쓰레기통이 귀여웠다. 슬램덩크 단행본은 아직도 팔리고 있었다. 첫사랑을 만난 것 같이 설렜다. 사실 첫사랑 채 해보지도 못한 나이에 이미 완결된 만화다.

다음은 비너스 포트. 마찬가지로 몸을 식힐 목적으로 들렸다. 마카오의 베네치안 호텔처럼 천장에 하늘을 그려 넣었는데, 층고가 낮아서 별로 하늘 같은 기분이 들진 않았다. 하지만 에어컨은 충분히 시원했고 그래서 고마웠다. 토토로 샵에서는 천공의 성 라퓨타 배경음악이 흘러나왔다. 가던 발길을 멈추고 들었다. 건물 내 교차로를 지날 무렵 곽이 말했다. “가게 이름이 너무 야한 거 아니야?” 대체 어떤 아재개그일까 둘러보니 ‘il forno’라는 가게가 있었다. 할 말을 잃었다.

가는 곳마다 아이돌 그룹이 있었다. 심지어 한국 남자 그룹도 있었다. 오늘 무슨 날인가? 뒤늦게 ‘Tokyo idol festival 2018’이라는 배너를 발견했다. 대단한 행사가 진행 중이구나. 하지만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아랑곳 않고 온천으로 갔다.

드디어 오오에도 온천 도착. 입구부터 포스가 넘친다. 곽이 3개월 전에 끊어놓은 외국인 할인권을 보여주고 입장. 곽은 정말 최고다. 먼저 유카타로 갈아입었다. 거울 보니 일본 사람 된 느낌. 다음으로 대욕탕에 가서 개운하게 몸을 씻고 나왔다. 탕이 있고, 가볍게 입은 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 먹고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찜질방과 매우 유사했다. 그래서였을까? 유난히 한국인이 많았다. 땀을 뺐으니 수분 보충 겸 가볍게 맥주나 한 잔 하자며 앉았는데 어느새 맥주 여러 병에 파전까지 시켜먹고 있었다. 이 곳의 파전은 파전을 본뜬 일본 음식이 아니라, 한국에서 먹던 파전 그대로였다. 셰프가 한국인인가?

더 마시다간 취할 것 같다. 숙소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나라 찜질방에서처럼, 안에서 쓴 비용을 나갈 때 한 번에 계산했다. 출구 앞의 무료 셔틀이 우릴 시나가와 역까지 태워주었다. 시나가와 역은 대단히 거대했다. 서울역 두 배 정도? 사람도 몹시 많았다. 도쿄가 서울보다 대도시임을 실감했다. 시나가와에서 JR을 타고 신주쿠로 돌아왔다. 민이 좋아하는 스끼야끼를 먹기 위해 나베조를 찾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았다. 다른 지점을 찾아갔으나 많기는 마찬가지. 세 번째로 찾아간 지점이 그나마 한산했다. 25분 정도 기다려서 자리에 앉았다.

나베조는 한국의 무한리필 샤부샤부 집과 비슷했다. 인당 2400엔이면 고기와 야채를 무한정 먹을 수 있었다. 200엔의 추가금을 내면 국물을 두 종류 고를 수 있어, 우리는 추가금을 내기로 하고 김치 국물과 스끼야끼 국물을 함께 주문했다. 각각에 걸맞은 야채를 넣고 김치 국물엔 돼지고기를, 스끼야끼 국물엔 소고기를 실컷 넣어 먹었다. 무난히 맛있었다.

특이사항은 아르바이트생이었다. 한국 사람이 많이 와서인지 한국인 아르바이트생이 있었는데, 기회만 된다면 고용하고 싶을 정도로 일을 잘했다. 메뉴와 먹는 법을 구체적이고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잘 해낸 것은 그렇다 쳐도, 주문한 사케를 갖다 주면서 “잘 시키셨어요! 이거 저희 일본인 직원들이 제일 좋아하는 사케거든요!”라는 멘트나, 특정 소고기를 지정하여 리필해 달라 하니 “어떻게 아셨어요? 그게 가장 비싼 부위예요!” 같은 멘트는 주인정신없이는 나올 수 없는 거니까. 그 마음씀이 고마워서 나오기 전에 몇 마디 응원을 날렸다. “정말 감동적인 서비스였어요. 덕분에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하시는 일 다 잘 되실 거예요.” 돌이켜보니 좀 진부한 응원이었다.


별도의 2차 없이 숙소에 들어왔다. 충분히 취하지 않아 맥주를 따로 사서 들어왔다. 씻고 맥주 마시며 여행기를 썼다. 벌써 내일이면 귀국이라니. 여행은 언제나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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