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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Jun 21. 2019

대만 여행기 1일 차

2018.12.7.

“야, 얼른 일어나.”

배가 잠꼬대처럼 말했다. 아무래도 나보다 배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졸려 죽겠네. 이렇게까지 여행을 가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며 네시 반에 눈을 떴다. 누운 지 두 시간 반 만이었다.

“비행기 시간이 이르니 우리 집에 모여서 같이 자고 같이 이동하자.” 배의 제안이었다. 팡은 술자리가 있다며 난색을 표했고, 켠과 내가 동의했지만 막상 켠은 일이 많아 오지 못했다. 나만 와서 같이 한 잔 하고 누운 게 두 시. 그나마 눕자마자 잠들었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주섬주섬 외투를 챙겨 입고 내려갔다. 새벽 공기가 몹시 찼다. 켠은 이미 와 있었다. 거 참 빠른 친구다. 따뜻한 커피 하나씩 사서 켠 차 타고 출발.

다섯 시 오십 분. 팡네 집 도착. 언제나 늘 변함없이 삼십 분씩은 늦는 팡이 웬일로 십 분 만에 내려왔다. 넷이 다 모이니 신이 났다. 인천공항까지 쉬지 않고 떠들었다. 주로 남들 연애 얘기였다.

일곱 시. 공항 도착. 와.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휴가철 아닌 평일에 여행 가는 건 우리뿐일 줄 알았건만. 가는 곳마다 줄을 서야 했다. 면세점에서 배켠팡은 신나게 위스키를 샀다. 나는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인천공항에서 pp카드를 안 쓰면 손해 보는 기분이다. 음식이 가장 훌륭한 마티나 라운지로 갔다. 샐러드, 만두, 불고기 등을 안주삼아 맥주를 마셨다. 비빔밥도 한 그릇 만들어 먹었다. 켠은 특히 짜장범벅에 기뻐했다. 너무 맛있다며 나에게도 한 젓가락 줬다.

배 채우다 보니 탑승시간이 다 되었다. 게이트까지 열심히 뛰었다. 다행히 아직 줄이 남아있었다. 한 숨 돌리고 여유롭게 탑승했다.


잠깐 눈을 붙였을까. 기내식이 나왔다. 떠먹는 요거트에 삼각김밥, 비스켓. 저가항공답게 귀여운 구성이었다. 배가 불러 요거트만 먹었다. 내가 먹는 걸 보고는 팡이가 자기 요거트도 먹으라며 주었다. 뚜껑에 묻은 요거트를 핥아먹지 않는 사치를 부렸다. 부자 된 기분이다.

자느라 식사를 하지 않았던 켠배가 착륙 즈음 잠에서 깨자, 승무원이 식사를 챙겨 주었다. 둘은 밤에 호텔에서 싱글몰트와 함께 삼각김밥을 먹겠다며 개이득을 외쳤다. 알뜰한 녀석들. 허나 막상 들고 내리려 하자 옆에 있던 승무원이 제지했다. “손님, 기내식은 규정상 기내에서 드셔야 합니다.” 결국 기내식을 반납하고만 켠배. 시무룩.

야호. 대만이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수하물을 찾았다. 환전을 하고 유심카드를 샀다. 타이베이 시내까지 1000불(4만 원)에 가주겠다는 우버 기사가 있어 탑승했다. 인당 만원. 넷이 다니니 여러모로 편리하다.


첫날 묵을 호텔은 Caesar metro hotel. 방에 올라와보니 뷰도 좋고 널찍하다. 짐을 풀고 일단 시그넷 한 잔. 바에서는 한 잔에 3만 원씩 하는 위스키란다. 팡은 한 잔 할 때마다 3만 원 벌었다며 개이득을 외쳤다. 유일하게 반출에 성공한 팡의 삼각김밥을 안주삼아 한 입씩 나눠먹었다. 거들떠보지 않았던 김밥인데 스토리가 생기니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케사르 호텔엔 수영장이 있다. 누릴 건 다 누려야지. 다 같이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수영장에 갔다. 오. 아무도 없다. “야 이거 완전 프라이빗한데?!” 나가보니 없는 이유를 알았다. 수영하기엔 날이 너무 추웠다. 하지만 기왕 옷 갈아입고 왔는데 안 할 수 있나. 용감하게 물에 들어가니 물은 더 차가웠다. 가만히 있으면 추워서 헤엄이 절로 쳐졌다. 여유롭게 즐기려던 수영은 이미 극기훈련이 되어 있었다. 넷이서 수영 시합도 했는데… 이럴 수가, 내가 꼴찌라니. 해양소년단 출신으로서 자존심이 상했다.

수영을 하고 나오니 출출하다. “저녁 먹기 전에 가볍게 컵라면이나 하나 먹을까?” 식탐 좋은 배가 말했다. 작은 컵라면 사자고 들어간 편의점에서 커다란 컵라면 두 개와 샌드위치에 계란까지 사 왔다. 그래. 수영도 했는데 이 정돈 먹어도 되지 뭐.

컵라면은 홍콩에서 경험한 만한대찬 마라맛과 처음 보는 일도찬 홍소 맛을 샀는데 둘 다 맛이 좋았다. 뭘 먹어도 맛있으니 또 신이 난다. 간단히 위스키 한 잔 더 하고 낮잠들 자려하는데, 폰을 보던 배가 당황한 듯 말했다. “야. 내가 다섯 시에 보기로 했었네. 지금 나가야겠는데?”

부랴부랴 준비해서 밖으로 나왔다. 택시 타고 서문정에 오니 배의 현지인 친구 크리스티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대만에 현지인 친구라니. 뉴욕 유학 중에 알게 된 친구라 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영어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배. 이럴 땐 배가 참 새롭게 보인다.


시먼딩은 서울의 명동 같은 곳이다. 우리 같은 외국인이 가는 곳마다 있었다. 명동을 구경하는 중국인이 된 기분으로 거리를 돌았다. 성도양도빙에서 스타푸르츠 주스를 먹고, 아종면선에서 곱창국수를 먹었다. 한국 아재 입에는 새롭고 신선하면서도 거슬리지 않는 맛이었다.

대만 왔으면 훠궈 한 번은 먹어줘야지. 크리스티나를 따라 팔해훠궈에 갔다. 훠궈에 들어가는 야채, 해물, 고기를 비롯해서 음료, 커피, 맥주에 다양한 디저트까지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었다. 인당 700불(28,000원)로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천국 같은 곳. 이런 곳에 데려오다니, 크리스티나는 좋은 사람이다. 배가 부르다 못해 숨이 찰 때까지 먹었다.

소화도 시킬 겸 시먼딩 거리를 몇 바퀴 돌고 나서, 여취여몽이라는 칵테일 바에 왔다. 아니 어쩜 이름부터 이렇게 맘에 들까. 들어설 때부터, 아니 들어가기 전 문 앞에서부터 분위기가 남다르더니 메뉴는 한 술 더 떴다. 이 거리의 이름인 시멘딩부터 반 고흐의 해바라기, 강남김치, 홍루몽, 와사비사시미, 그레이스 아나토미, 오션스 일레븐, 트루먼 쇼 등 별의별 재미난 컨셉의 칵테일이 다 있었다. 완전 창의력대장. 물론 맛도 좋았다. 구글에 리뷰를 올리면 프리드링크를 한 잔 더 준다 하여, 기꺼이 리뷰를 올렸다. 세상에. 구글 평점이 4.8이야. 심지어 프리드링크도 맛있다. 이런 곳에 데려오다니, 크리스티나는 참 좋은 사람이다.

어느덧 열 시 반. 슬슬 들어갈 시간. 숙소까진 걸어서 가기로 했다. 암. 여행은 걸어서 하는 거지. 도중에 위스키 샵이 있어 들렀다. 켠은 카발란을 하나 샀다. 아휴. 위스키에 환장한 친구들.

숙소에서 다시 술상을 차렸다. 켠이, 배의 생일이라 케잌을 사려했는데 편의점이 닫아서 못 샀다며, 생일선물만 전달했다. 아까 산 카발란. 애초에 생일선물로 산 거였다니, 반전 있는 친구다. 위스키 좋아하는 배에겐 최고의 선물이었다.

배켠팡은 술이 세다. 내가 먼저 취해,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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