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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Jun 21. 2019

대만 여행기 2일 차

2018.12.8.

알람 소리에 다들 일어났다. 아홉 시. 웬일로 늦지 않은 시각이다. 알람 누가 맞췄나 물어보니 팡이 맞추었단다. 늘 늦는 친구가 알람을 맞춘다는 아이러니. 호텔을 예약했던 그에게 물었다. 
“우리 오늘 조식 포함이야?” 
어제 하도 많이 먹어서 배는 안 고프지만, 포함이면 먹으러 가야지.
“아니. 4박 중 오늘만 불포함이야.”
“야 그럼 더 자자.”
다들 다시 눕는 분위기다. 한 명 빼고.
“무슨 소리야. 호텔 왔으면 조식을 먹어야지. 어차피 인당 만원밖에 안 해. 개이득?” 
이 말을 누가 했을지 추측해보라. 맞다. 배가 그랬다. 다들 빵 터졌다. 
“개이득은 뭔 개이득이야. 너 설마 배고프냐?” 
“아니, 배가 고프진 않아. 하지만 아침은 먹어야지!” 
배가 고프다 인정하기는 쑥스러운 걸까. 진켠팡은 맞섰다. 
“뭔 소리야. 배가 안 고픈데 뭐하러 먹어.”
“야 그래도 아침은 먹어야 건강하지.”
건강이라면 내가 나서야지.
“한의사로서 얘기하는데, 배부른데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어.”
웃고 떠드느라 잠은 어차피 다 깨버렸다. 맛집이 넘치는데 뭐하러 호텔 조식을 사 먹냐는 팡의 말에 켠이 공감하며 호텔 근처의 평점 높은 국숫집을 찾아냈다. “씻고 나가서 국수나 먹자.” 배도 결국 받아들였다.


샤워실은 하나인데 네 명이 씻으려니 오래 걸린다. 아니, 네 명이어서 오래 걸린다기보다 팡이 있어서 오래 걸린다. 팡 혼자 씻는데 걸리는 시간이 진켠배 셋 모두 씻는데 걸리는 시간과 맞먹는다. 잘생김은 공짜가 아니다.


다 씻고 짐 싸서 나오니 열한 시. 먼저 숙소 앞의 용산사에 갔다. 사람이 많았다. 대부분 진짜 기도하러 온 신자들. 우리 같은 관광객은 오히려 소수였다. 어제 크리스티나가 말해주기를, 여기가 연애 관련 기도빨이 좋기로 유명한 절이라는 거다. 그러니 노총각 오빠들, 꼭 기도하시라고. 그러나 막상 기도를 하려니 제물을 사든 향을 사든 다 돈이었다. 우린 모두 알뜰하고 검소한 유물론자들이어서 깔끔하게 포기했다.

뭘 좀 먹어야지. 길거리에서 소시지와 빨간 귤을 사 먹었다. 소시지는 완전 맛있었다. 귤은... 귤은 그냥 제주 밀감이 최고다. 

국수를 먹자 하여 구글링해 찾아갔는데, 찾아간 곳 보다 앞집이 손님이 더 많아 그리로 갔다. 천양 유방소관. 구글 평점도 4.2로 높다. 리뷰를 보니 관광객에겐 알려지지 않은 현지인 맛집. 메뉴판도 다 한자로만 되어 있어 주인의 추천을 받아 겨우 주문했다. 두부, 국수, 돼지갈비, 소롱포, 볶음밥을 시켰다. 돼지갈비가 가장 맛있었다. 전반적으로 괜찮았지만, 굳이 찾아가야 할 곳은 아니다. 배에 여유를 남기고 나왔다.

택시를 타고 동문 역 앞으로 왔다. 딘타이펑 본점 앞에는 사람이 바글바글. 대기표 끊어보니 우리 앞에 대강 50팀이 대기 중이다. 예상 대기시간은 60~80분. 좋아. 어차피 다른 곳 있다 오면 된다. 대만 전문가인 배가 먼저 나섰다. 든든한 우리 가이드. 옆에 있던 썬메리로 들어가길래 따라갔더니 오, 펑리수 시식코너가 있었다. 냠냠. 이래서 들어온 거였구나.

대만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 망고빙수. 딘타이펑 가까이에 3대 빙수집 중 하나인 사모석이 있다. 여기도 손님이 많다. 우리처럼 딘타이펑 기다리며 들른 사람들도 꽤 있겠지. 두 종류의 망고빙수를 시키려다, 팡이 땅콩빙수도 먹어보쟤서 망고 하나 땅콩 하나 시켰다. 땅콩빙수 먼저 먹어보니 고소하고 괜찮았다. 이어서 망고빙수 먹어보니 놀랍도록 맛있어서 눈이 크게 떠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켠의 눈도 커져 있었다. 땅콩빙수는 결국 남았다. 대만에서 빙수를 두 개 먹으려거든, 그냥 망고빙수로 두 개 먹자.

빙수 다 먹고 다시 딘타이펑. 아이고 여전히 사람이 많고 우리 차례는 멀었다. 다시 커피나 한 잔 하자며 카페거리로 갔다. 마르티네즈 커피란 곳에 들어가려 했는데, 신발을 벗어야 해서 도로 나왔다. 어, 그런데 시음코너가 있네? 별 기대 없이 한 번 마셔보았는데, 커피 맛이 유난히 좋다. “밖에 내놓는 싸구려 커피는 보통 연필심 맛 나지 않아? 그에 비해 여긴 너무 맛있는데.” 고급진 팡이 입에도 맛이 있었나 보다. 가그린 컵으로 두 잔씩 마셨다.

다시 딘타이펑에 갔다. 아휴 여전히 사람이 많긴 한데... 우리 앞으로 열 한 팀밖에 안 남았다. 이제 머물러 기다려야지. 켠은 그 틈을 타 여자친구와 페이스타임을 했다. 거 여친은 귀찮아하는 눈치인데 왜 그렇게 전화를 거는지. 아주 좋아 죽는다. 이런 사랑꾼 같으니.


번호표를 끊은 시각으로부터 한 시간 사십오 분이 지나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드디어! 중식 전문가인 배가 알아서 시켰다. 기대를 너무 많이 했던 까닭일까? 꽤 맛이 있었지만, 눈이 크게 떠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나마 새우 돼지 비빔만두 정도가 내 입에 가장 잘 맞았다. 오히려 날 감동시킨 것은 이 집의 서비스. 모든 종업원들이 늘 웃고 있었다. 주방 종업원들은 아주 위생적인 차림이었고, 홀 종업원들은 외국어에 능통했다.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었다.

다음은 대만의 랜드마크인 중정기념당. “중정이 대체 어떤 일이길래 기념한다는 거야?” 당연히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 구글링 해보니 장개석의 본명이 장중정이었다고. 아하. 장개석 기념관이구나. 매시 정각마다 행해지는 근위병 교대식이 볼만하단다. 근무 교대라. 거 뭐 군대에서 매번 하던 거 아닌가? 어쨌든 배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갔다.

교대식은 이미 진행 중이었다. 사람이 많아 틈을 헤집고 봐야 했다. 오, 멋지다. 근위병들은 한 동작 한 동작에 천천히 뜸을 들여가며 각을 잡았는데, 각자도 멋졌지만 여럿이 한 몸처럼 움직이니 더욱 멋졌다. 잠시나마 내 군 시절을 떠올렸던 것이 미안해졌다. 교대식은 10분 이상 이어졌다. 좋은 볼거리다.

교대식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호젓한 풍경이 펼쳐진다. 사람들은 약속한 듯이 카메라를 꺼냈다. 우리도 단체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팡이 폰으로 점프샷도 찍었는데, 연속 촬영으로 찍지 않아 별로 건질 샷이 없었다. 이거 뭐 언제 해 봤어야 알지.

호텔을 옮길 차례다. 카이사르 호텔에 돌아와 맡겨둔 짐을 찾고, 오늘 묵을 쉐라톤 그랜드 타이베이 호텔로 이동했다. 체크인하고 먼저 간 곳은 수영장. 오후 여섯 시에 해는 이미 져서 어두운데 호텔 옥상의 야외수영장엔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우리밖엔. “야 설마 이 날씨에 수영을 하겠다고?!” 내 말에 아랑곳 않고 배는 이미 물에 들어가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팡과 나도 따라 들어갔다. 아오 추워. 이건 뭐 해병대 캠프도 아니고.

수영 마치고 돌아오니 켠은 욕조에 물 받아놓고 아주 웰빙 중이었다. 아이고 현명한 켠이 보소. 내일은 나도 쉬어야지. 호텔 왔으니 가볍게 시그넷 한 잔씩 했다. 위스키 맛을 모르는 나에게도, 왠지 이게 더 맛이 좋다. 좀 깔끔하달까.


어영부영 있다 다시 나온 게 여덟 시 반. 택시 타고 쓰린 야시장으로. 한자를 보니 선비 사에 수풀림. 사림이다. 선비들 살던 곳에 야시장이라니. 켠이 페라를 제안해서 오랜만에 방송을 켰다. 대만식 빈대떡 총좌빙, 큐브 스테이크, 새송이 구이, 산돼지 소시지, 닭 한 마릴 통째로 튀긴 지파오, 포도주스, 과일에 설탕을 입힌 탕후루까지 다양한 길거리 음식을 사 먹는 광경을 방송에 담았다. 인형 뽑기 다트가 있어 던져보려다, 게임비가 한 판당 100달러(4천 원)이란 말을 듣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는데, 시청하던 율 누나가 게임하라고 8천 원을 송금해줘 다시 돌아가 두 게임을 한 것도 재미있었다. 물론 인형은 못 뽑았다.

야시장 투어와 방송을 함께 마치고 택시를 탔다. 오늘의 가장 중요한 일정. 타이베이에서 제일 핫하다는 옴니 클럽으로 왔다. 1인당 천 달러(4만 원)의 입장료를 내고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갔지만 이럴 수가. 텅텅 비었다. 손님보다 직원이 더 많을 정도. 너무 일찍 왔나? 잠시 나가 맥주 한 잔 하고 돌아오기로 했다.

클럽 근처에는 맥주집이 꽤 있었다. 적당해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생맥주를 팔지 않은 걸 보면 적당한 집이 아니었다. 안주도 뭐 그저 그랬다. 작은 병맥주 각 이병씩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 나누다 보니 열두 시 사십오 분. 이제 다시 옴니로.

한 시간 반 만에 돌아온 옴니는 아까와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입구부터 스테이지까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껏 멋 부린 젊은 남녀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술 마시고 춤을 추었다. 우리는 젊지도 않고 옷차림도 편안했지만 아랑곳 않고 스테이지로 나가 몸을 흔들었다. 웅장한 스피커 진동에 심장도 함께 흔들렸다. 이따금 시원한 차림의 댄서들이 한 번씩 무대로 올라와 웨이브를 췄다. 환호성이 절로 나왔다. 입장료가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아니, 근데 호기심에라도 놀러 온 한국 여성들 없나? 없었다. 한 팀도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한 시간 만에 다들 지쳤다. 숙소 들어오니 두 시. 즉시 싱몰을 깠다. 배는 먼저 누웠고, 진켠팡은 다소 과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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