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피엔드 Jun 21. 2019

대만 여행기 3일 차

2018.12.9.

팡배가 깨워서 눈을 떴지만 일어날 수는 없었다. 먼저 먹으라 보내고 더 잤다. 밥을 다 먹은 배의 전화에 그제야 일어났다. 아홉 시. 부랴부랴 씻고 짐을 싸고 조식을 먹었다. 나보다 더 늦은 켠은 아침을 굶었다.

오늘 일정은 예쓰진지 투어. 종일 탈 택시를 한 대 빌렸다. 넷이 다니니 택시 타기가 참 좋다. 약속한 오전 열 시에 20분 늦었다. 하지만 기사님은 조금도 언짢아하지 않으신다. “메이꽌씨. 메이꽌씨.” 아주머니 기사님이셨다. 서투른 영어와 한국어로 설명도 열심히 해주신다. 참 친절하시다.


예쓰진지 하면 yes + 진지함이 떠오를 수 있다. 삐빅. 아재입니다. 미안하다. 사실 내가 그랬다. 예쓰진지는 타이베이 근처에 있는 예류, 쓰펀, 진과스, 지우펀 네 개 도시를 줄여 부르는 말이다. 한 마디로 근교 투어.


열한 시 십오 분. 예류 도착. 바닷가다. 비가 오고 있다. 어, 우산 써야겠는데? 기사님이 그러지 말고 우비 사라 신다. 오케이. 우리 또 말 잘 들으니까. 공원 앞에 가니 과연 우비를 판다. 마침 색상이 네 종류. 배켠팡진 순서대로 보라, 파랑, 노랑, 분홍색 우비를 사 입었다. 보라돌이~ 뚜비~ 나나~ 뽀~ 텔레토비 완성이다.

예류에는 지질공원이 있다. 희한하게 생긴 지형과 뽀글 머리 파마한 돌들을 보는 곳이다. 어떤 돌들은 생김새에 따라 이름이 붙어있었다. 귀여운 공주라든가, 표범이라든가. 하지만 누가 봐도 공주나 표범 같아 보일만큼 닮지는 않았다. 가장 유명한 돌은 여왕 머리였는데, 사진 찍는 줄이 길어서 가까이 못 가봤다.

공원을 걷는 내내 보슬비가 내렸다. 이따금씩은 비바람이 몰아쳤다. 돌뗑이 좀 보겠다고 잠도 못 자고 이게 웬 고생인가. “아 이런 날은 그냥 집에서 귤 까먹으며 만화책 보는 게 최곤데.” 켠의 말에 모두 공감했다. 깊숙이 들어갔더니 휴게소가 나왔다. 여기서 소시지와 우육탕면,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다 맛이 괜찮았다. 대만에선 어디서 뭘 먹어도 맛이 있다더니, 정말 그렇다. 그거 먹었다고 다들 신이 났다. 갑자기 분위기 신남.

다음은 쓰펀. 주차장에서 내려 잠시 걸어가니 예스러워 꽤 운치 있는 마을이 나왔다. 팡이 말로는 여기가 매스컴에 워낙 많이 나와서, 사람들이 대만 하면 보통 여기를 떠올린단다. 그 말 듣고 보니 나도 언젠가 본 것 같기도 하다.

쓰펀은 풍등 띄우는 곳이다. 철길 주위로 풍등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많이들 날리는 4면짜리 풍등이 200달러(8천 원). 먼저 각 면에 붓으로 직접 하고 싶은 말을 적는다. 그러니 무얼 적을지 한 번쯤 생각해 보고 가는 것이 좋다. 나는 갑자기 적느라 뭘 적어야 할지 몰랐다. 넷이 각각 한 면씩 맡아 적었는데, 유독 켠의 필체가 훌륭했다. 어렸을 때 서예를 배웠다는 켠. 외모와는 정말 언밸런스다. 글을 다 적으면 철길 위에서 불을 붙여 하늘로 올려 보낸다. 잠깐이지만 무언가를 날린다는 행위가 주는 쾌감이 있다. 그보다 놀라운 것은 이 철길이 지금도 사용 중이라는 것. 30분에 한 대씩 기차가 선로 위를 지나간다. 신기하다.

마을 안쪽엔 먹거리와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이 있다. 배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닭날개 볶음밥을 판다. 두 가지 맛이 있는데 배가 알아서 볶음밥 맛으로 주문했다. 볶음밥 맛 닭날개 볶음밥이라. 먹어보니 닭날개 안쪽의 뼈를 발라내고 볶음밥으로 채운 음식이다. 맛도 훌륭하다. 넷 다 흡족했다.

철길 옆에는 약간 위험해 보일 정도로 오래된 다리가 있다. 다리 위에 올라가 몸을 흔들면 다리가 함께 흔들려 스릴이 있다. 철길과 다리에서 사진 몇 장 찍고 택시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풍등을 보니 한글이 한자보다 많다. 그러고 보니 예류에도 한국인이 많았다. 예쓰진지가 한국인에게 유명한 투어구나.

다음은 진과스. 구불구불 산을 오르던 기사님이 갑자기 차를 세웠다. 왜인가 봤더니 저 멀리 보기 좋은 폭포가 있다. 폭포 배경의 단체사진과 폭포 마시는 컨셉의 개인별 사진을 찍어주셨다. 친절한 기사님. 다시 차를 타고, 곧 진과스에 도착했다.

진과스는 광산이 있던 도시다. 여기 오면 먼저 광부의 도시락을 먹는다. ‘진과스 제일 맛있는 광부 도시락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인이 얼마나 많이 오는지, 아예 한글 현수막이 걸려있다. 벽에는 ‘국과 김치는 self’라고 써놓은 정도다. 단일 메뉴라 주문하면 금방 나온다. 밥 아래에 나물 몇 가지 깔고 위에는 돼지갈비를 덮었다. 아, 이건 정말이지 한국인 먹으라고 만들었다. 우리 입맛에 딱이다. 한 그릇 더 달라할 뻔했다.

도시락을 먹고 나면 이어지는 코스는 광업을 주제로 삼은 황금박물관이다. 누르면 불이 켜지며 광업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장치도 있고, 디테일하게 광산 내부를 그려놓은 디오라마도 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서인지 의외로 볼만했다. 박물관 끝에는 커다란 금괴가 있다. 다들 여기 줄 서서 사진을 찍는다. 우리도 찍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비를 피해 자꾸 머리를 숙이게 된다. 스타일은 다 망가졌고, 손이 젖어 사진 찍기도 곤란하다. 여행기는 아예 못 쓴다. 양말까지 다 젖어 찝찝하기 그지없다. 지친다 지쳐. 역시 여행은 날씨가 반이다. 그래도 이제 하나 남았으니 힘내야지.

마지막은 지우펀. 진과스와 지우펀은 지척이다. 도착할 즈음 기사님은 지도를 보여주며 우리가 가야 할 루트를 설명해 주셨다. 천천히 반복해서. 앞선 세 도시에선 하지 않으신 행동이다. 길이 얼마나 복잡하길래 그러실까.

지우펀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된 곳으로 유명하다. 끊임없이 먹던 부모가 돼지로 변했던 그 야시장. 그래서 예쓰진과는 달리 일본인도 많이 찾는다 한다.


택시가 선 곳은 관광지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 기사님 말씀대로 세븐일레븐까지 걸어가 코너를 돌자 그제야 시장이 나왔다. 줄지어 늘어선 가게들. 가게마다 홍등이 걸려있었다. 길은 유난히 좁고 끝이 보이지 않아 미로에 들어온 느낌이다. 쓰린 야시장처럼 다양한 종류의 군것질거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과연, 부모가 돼지가 되고 아이가 길을 잃을 법한 거리다.

군것질을 많이 하진 않았다. 파가 들어간 누가 크래커를 시식해보고 구매했다. 땅콩 아이스크림 두 개를 넷이 나눠먹었다. 붕어빵처럼 팥 들어간 빵 하나, 크림 들어간 빵 하나를 넷이 나눠먹었다. 그게 다였다. 하루 종일 비 맞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는데, 길은 좁고 사람은 흘러넘치니 더욱 피곤했다. 센과 치히로에 나온 건물과 유사하여 일본인들이 줄을 서는 아매다루에도 전혀 관심이 가지 않았다. 다들 그랬다. 지쳐서 사진도 얼마 안 찍었다.

여섯 시. 드디어 숙소로 돌아갈 시간. 차에 돌아오니 기사님이 너무 반갑게 맞아주신다. 마치 귀가하는 아들 맞이하는 엄마처럼. ‘아휴 오늘 너무 힘들었어요.’ 나도 모르게 징징댈 뻔했다. 중국어를 몰라 다행이었다. 오늘 묵을 곳은 리젠트 타이베이 호텔. 호텔 앞에서 기사님과 이별했다. 감사합니다. 기사님. 덕분에 편안히 잘 다녀왔어요.

내리자마자 분수가 보인다. 좋은 호텔이라는 감이 온다. 숙소 문을 열고 다들 감탄사를 외쳤다. 여태 묵었던 곳 중 최고다. 발코니도 있으니 말 다했다. 방 건너편에 라운지가 있었다. 간단한 식사에 음료와 주류까지 제공되는 곳이었다. 호텔에도 라운지가 있는 줄 처음 알았다. 방 번호를 말해주니, 우리도 사용이 가능하단다. 야호.


호텔이 좋아 다들 신이 났다. 내친김에 호텔 구경을 하기로 했다. 지하에 캐비어 파는 곳이 있었다. “이 정도 호텔 묵으면, 안주로 캐비어 정돈 먹어줘야 하지 않냐?” 배의 제안. 좋은 숙소 묵는 사람으로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가장 작은 걸로 샀다. 많이 먹으면 질리니까...

구경을 마치고 라운지에 갔다. 여러 종류의 디저트를 다 맛보았다. 망고 맥주와 파인애플 맥주를 마셨다. 뭐 하나 맛없는 게 없었다. 아, 맥주 빼고. 여기 맥주는 탄산이 적어 약간 김 빠진 맥주 먹는 느낌이다.

원래 오늘은 수영장 안 가려했는데, 여기 수영장은 야외 온수풀이란다. 그럼 또 안 가볼 수 없지. 온수풀이어도 날이 차니 춥긴 추웠다. 물론 어제와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비로소 수영을 즐겼다.

수영한 다음엔 사우나에 갔다. 사우나도 무료다. 와. 진짜 개이득. 온탕에 몸을 담그니 하루의 고생을 다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건식 사우나 옆에, 반대로 찬 공기의 냉방이 있었다. 몸을 달군 채 들어갔다. 시원하고 좋았다.


이제 뭘 좀 먹어야지. 팡 가이드북에 나온 맥주집으로 갔다. 중앙시장 생맹해선 100. 안주가 무척 저렴한 곳이다. 한국인 많이 가는 곳이니 한자 메뉴판 보며 고민할 필요 없이 한글 메뉴판을 달라고 하면 된다. 안주가 저렴해 육해공을 다 시켰다. 다 먹을만했다. 그중 최고는 단연 탕수 돼지갈비. 너무 맛있어서 이것만 하나 더 시켰다.

호텔로 돌아와 언제나처럼 싱몰을 마셨다. 안주로 크래커에 캐비어를 얹어 먹었다. 먹어보니 그냥 명란젓이랑 비슷하다. 생선알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뭐. 술을 마시는 동안 팡켠배는 유튜브를 보았다. 나는 계속 여행기를 썼다. 꽤 늦게까지 마셨다. 팡이 먼저 눕고 얼마 안 있다 켠이 누웠다. 배는 나와 두어 잔 더 하고 누웠다. 컴컴한 방 침대에서 눈이 감기기 전까지 글을 썼다.

작가의 이전글 대만 여행기 2일 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