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피엔드 Jun 21. 2019

대만 여행기 4일 차

2018.12.10.

아홉 시. 알람이 울린다. 몹시 피곤하지만 억지로 일어났다. 조식 뷔페 먹어야 하니까. 서로가 서로를 깨워 함께 내려갔다.

객실도 좋고 라운지에 수영장, 사우나까지 다 좋은데 식당만 안 좋을 리 없다. 종류도 많고 맛도 좋았다. “이만한 규모의 조식 뷔페는 처음 봐.” 팡이 말했다. 물론 나도 그랬다. 딤섬과 파인애플이 맛있어 여러 번 가져다 먹었다. 아침을 저녁처럼 먹었다.

방에 올라와 다 같이 누웠다. 체크아웃까지 여유가 있으니 조금 자기로 했다. “아 근데 배가 너무 불러 못 자겠는데?” 거짓말이었다. 1분도 안 되어 잠들었다.


당연히 늦었다. 레이트 체크아웃이라 한 시 까지만 나가면 되었는데, 그마저 못 지키고 한시 반에 나왔다. 시간을 넘기면 큰일 나는 거 아닌가?! 아니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하긴 우리 같은 사람이 한둘이겠어. 바로 짐을 들고 다음 호텔로 이동했다. 어느덧 마지막.


그랜드 메이풀 호텔 타이베이. 여기도 꽤 훌륭하다. 널찍한 발코니도 있고 세면대도 두 개다. 커튼이 전동식이어서, 조금만 건드려도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게 신기했다. 미니바 추가 요금이 없다 하여 맥주를 꺼내 마셨다. 캬. 좋다. 매일매일 묵는 곳이 다르니 한 번의 여행에 여러 호텔을 경험하는 재미가 있다. 자신의 복지포인트를 소진해가며 호텔을 부킹 해준 팡. 아주 잘했어. 칭찬해.

이제 남들 가는 데는 어지간히 다 갔다. 101타워만 갔다가 쇼핑하고 끝내기로 했다. 그동안 택시만 타서, 타워까지는 일부러 전철을 탔다. 외국 오면 그 나라 전철 한 번 타봐야지. 역에서 나오니 101타워가 바로 보인다. 중간에 안개가 끼어 꼭대기가 보이지 않으니 더 높아 보인다. 정문 앞에 LOVE 조형물이 있어 포즈를 취했다. 사랑한다 친구들아. 사진을 찍고 타워 안으로 들어갔다.

언제나처럼 배가 앞장을 섰다. 먼저 간 곳은 카렌 철판구이. 꽃보다 할배에 나와 유명해졌단다. 식사에 대한 배의 신념이랄까? 같은 메뉴가 여러 등급으로 나눠져 있는 식당에 가면, 늘 가장 좋은 등급을 주문한다. 여기서도 그랬다. 맥주 하나씩 더 시키니 다 해서 4천 달러(16만 원). 대만 물가 치고는 비싸다. 어디 뭐가 나오나 한 번 보자. 소고기 스테이크, 새우, 관자, 오징어, 대구구이, 닭고기 스테이크가 차례로 나왔다. 아이고, 오늘도 육해공 구성이네. 눈 앞에서 신선한 재료를 손질하여 굽는 과정을 보고, 익어가는 소리를 듣고, 향신료 냄새를 맡고, 마침내 먹어서 맛보기까지, 하나의 시나리오가 입체적으로 완성되는 집이었다. 돈이 아깝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일단 밖으로 나왔다. 같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전망대에 오를지를 의논했다. “안개 때문에 밑에서 위를 못 본다면, 마찬가지로 위에서도 아래가 안 보인다는 거잖아. 가지 말자.” 반대의견은 없었다. “그래. 타워는 들어와 봤으니까, 이제 아이스몬스터나 가자.” 배가 제안했다.

이틀 전. 사모석 망고빙수를 너무 맛있게 먹는 진켠팡에게 배가 한 마디 했었다. “얘들아. 여기보다 아이스몬스터가 더 맛있어. 적어도 내 입맛엔.” 사모석도 이미 눈이 커질 정도의 맛인데, 이보다 더 맛있다고? 그럼 가야지. 꼭 가야지.

지금이 그 타이밍이다. 타워에서 나와 아이스몬스터로 가는데... 가는 길에 에어조단 매장이 있었다. 켠이 여기에 꽂혔다. “야. 잠깐만 구경 좀 하고 가자.”

분명히 잠깐 구경만 하겠다던 켠. 한 농구화를 발견하더니 갑자기 호들갑을 떨기 시작한다. 
“와, 여기 이게 있어? 이거 한국에선 사고 싶어도 못 사는데. 한국 가져가면 백만 원이야 이거.”
무슨 농구화가 백만 원이나 하나.
“백만 원? 여기선 얼만데.”
“우리 돈으로 한 27만 원? 나 이거 살래. 너희들도 사. 이건 무조건 싹쓸이 해가야 된다. 진짜. 장난 아니야.”

켠은 몹시 흥분했다. 허나 진배팡은 이미 닳고 닳은 아재들.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다.
“요즘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 정말 백만 원이면 내가 그 장사하고 말지.” 팡이 웃으며 말했다.
“야 진짜야 검색해봐. 이거 사가면 여행 경비 뽑는 거라니까.”
그래서 검색을 해 봤다. 에어조단 11 콩코드. 검색해보니 3~40만 원대다.

“이거 봐. 한 40만 원 하는데? 백만 원 이래매! 얼마를 부풀린 거야 ㅋㅋㅋ”
켠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확신을 가졌다.
“40만 원이어도 13만 원 남는 거 아니야? 난 살래. 한 세 개 사야겠다. 너넨 안 사?”
응. 안 사. 팡배진은 알고 있다. 세상에 공짜란 없음을.
“야 저거 한국까지 갖고 가는 것도 일이고 또 한국에서 파는 것도 일인데, 카드 수수료 환전 수수료 하면 몇만 원 남는 것도 없겠구만.” 켠을 말리는 팡.
“놔둬. 잘 팔면 술이나 쏘라고 하지 뭐. 못 팔면 두고두고 우려먹을 이야깃거리 생기는 거고.”
켠과 진팡배는 서로를 설득하지 못했다. 잠시 화장실 다녀온 사이 네 켤레를 사고만 켠. 아이쿠. 그사이 한 켤레가 늘었네. 박스에 넣어 쇼핑백에 담으니 어마어마한 부피다.

“뭐야. 이거 결국 우리가 들어줘야 하잖아. 너 이거 잘 팔면 술 사야겠다. 응? 잘 팔면. ㅋㅋㅋㅋㅋㅋ” 팡은 그저 이 상황이 재미있는 눈치다.
“안 팔리면 뭐, 안 사도 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도 웃겨 죽겠다.
“아오. 진짜 니네 나중에 두고 보자. ㅋㅋㅋ” 켠도 웃는다. 배만 웃지 않았다. 당이 떨어져서다.
“됐고. 빨리 빙수나 먹으러 가자. (켠을 보며) 구경만 한대매~!!!” 맞다. 빙수 먹으러 가던 중이었지. 백만 원짜리 에어조단 조심스레 나누어 들고 아이스몬스터로 갔다.


아이스몬스터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망고빙수 두 개를 주문했는데, 생망고가 없어서 토핑 과일은 파인애플로 대신했다. 망고 얼음과 생파인애플. 먹어보니 썩 조화로운 조합은 아니었다. 배도 인정했다. 전에 왔을 때는 망고 철이라 생망고와 함께 먹어 맛있었던 것 같다고. 아쉽다. 차라리 사모석처럼 냉동 망고라도 주지.

이제 기념품 살 차례. 가덕고병에 가서 치아더 펑리수를 샀다. 짐이 점점 늘어난다. 

호텔에 에어조단과 펑리수를 내려놓고 까르푸로 가다... 가 그 옆에 대관람차가 있어 먼저 탔다. 서른여덟, 남자 넷이. 대관람차를. 그것도 크리스마스 시즌에... 그래도 울진 않았다.

까르푸에서 팡켠배는 치약과 젤리 등을 샀다. 나는 아무것도 안 샀다.

저녁은 편의점 음식 사다 호텔에서 먹기로 했다. 만한대찬 마라맛 네 개와 김밥을 샀다. 숙소에서 식사 전에 짐을 싸는데, 기념품 한 데 모아놓고 보니 무지막지하다. 아. 징한 넘들. 아예 장사를 해라 장사를.

마지막 만찬. 김밥은 그저 그랬다. 만한대찬은 역시 최고다. 식당에서도 이만한 우육탕을 못 보았으니 말 다했지. 김밥과 라면으로 배를 채우고 웰컴 프룻을 안주삼아 술을 마셨다. 

밀린 여행기를 쓸까 하다가, 눈 앞의 친구들과의 대화에 집중하기로 했다. 서로의 인생과 여행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새벽 두 시. 다 같이 정리하고 누웠다.

작가의 이전글 대만 여행기 3일 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