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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엔드 Jun 21. 2019

대만 여행기 5일 차

2018.12.11.

배의 알람을 듣고 일어나는 게 익숙해지고 있다. 일곱 시. 진짜 피곤해 죽겠다. 출발하는 날부터 단 하루 충분히 잔 날이 없다. 이게 노는 건가. 이게 여행인가.


관광은 어제 끝났다. 오늘은 밥 먹고 귀국하는 일정. 가는 날 빼고 오는 날 빼면 4박 5일 정말 짧긴 짧다.  

조식이 꽤나 만족스러웠다. 어제보다 종류는 적어도 맛은 더 좋았다. 착즙기로 즉석에서 갈아주는 과일주스와 과채주스를 여러 잔 마셨다. 샤오롱바오는 딘타이펑 못지않았고 새우 쇼마이는 딘타이펑 이상이었다. 하겐다즈 라즈베리 아이스크림에선 어릴 때 즐겨먹던 청량과자 ‘짝꿍’ 맛이 났다.

짐 들고 나와 택시를 탔다. 너무 피곤해 깜빡 졸았더니 공항이다. 술과 에어조던 때문에 짐이 너무 많아서 성가시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탑승수속. 팡켠의 위탁 수하물이 15kg을 초과했다. 둘은 그 자리에서 짐을 고쳐 쌌다. 양반처럼 늘 굼뜬 팡이, 이 순간만큼은 놀라울만치 민첩했다.


보안검색대를 지나 면세점. 켠배는 또 위스키를 사겠단다. “적당히 좀 해라, 이 놈들아!” 팡의 말이 너무 웃겨, 나도 따라 했다. “적당히 좀 해라, 이 놈들아!”

나는 살 게 없다. 탑승 전까지 여행기를 썼다. 탑승해서도 여행기를 썼다. 이륙하고 팡켠배가 자는 동안에도 계속 여행기를 썼다. 식사인지 간식인지 애매하게 제공된 빵과 푸딩을 후다닥 먹고 또 여행기를 썼다. 여행 내내 틈만 나면 이렇게 폰 붙잡고 여행기를 썼는데도 현실 진도를 못 따라간다. 수도꼭지 틀듯이 글을 콸콸 쏟아낼 수 있는 재주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금세 인천에 도착했다. 입국 절차를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왔다. 날씨가 확실히 춥다. “출출한데 밥 같이 먹고 헤어지자.” 거 참. 늦어도 이번 주말이면 또 볼 사이인데 뭐가 그리 아쉽다고. 쿨하지 못한 녀석들. 나는 하나도 아쉽지 않았지만 배가 고파서, 단지 배가 좀 고파서 그러기로 했다. 주차해 두었던 켠의 차로 가서 올 때에 비해 늘어난 짐을 차곡차곡 쌓았다. 팡과 함께 에어조던을 옮길 때에는 “아이고 조던님, 구겨지시면 안 됩니다. 큰일 납니다.” “아이고, 백만 원짜리 조던님.” 하며 예를 갖추었다.

인천에선 팡네 집이 가장 가깝다. 팡네 집 근처 감자국거리로 갔다. 팡이 가자 한 곳은 불맛 감자탕. 짬뽕도 아니고 감자탕에 불맛이라니, 거 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상호명이다. 대자를 주문하며 팡이 물었다. “근데 여기 감자탕은 불맛이 나나요?” “아뇨, 그냥 맵다는 뜻이에요.” 뭐야. 이런 게 어딨어. 이 아줌마 장사 날로 하시네. 감자탕 맛은 대단하지도 끔찍하지도 않고 그저 무난했다. 보통 해외여행하고 한국 들어와서 처음 먹는 한식이 대단히 맛있는데 여긴 별로 그러지 않았다. 이 집이 맛이 없었던 건 아니고, 대만 음식이 너무 맛있었던 탓이다. 뼈를 다 건져먹고 수제비, 떡, 라면사리를 추가했다. 밥도 볶아 먹었다.

의리꾼이자 사랑꾼 켠은 팡진배를 각각 집까지 데려다주고 나서 여자친구를 보러 간단다. 먼저 팡이 내리고, 다음으로 내가 내렸다. “잘 들어가. 배는 일찍 자고, 켠은 에어조던 팔리거든 꼭 얘기해라~”


집에 왔다. 아늑한 나의 집. 여행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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