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느리게, 그러나 단단하게

:속도를 늦추자, 삶의 결이 보였다

by 그라미의 행복일기

나는 오랫동안 빠르게 살아왔다.
시간에 쫓기듯 일했고, 성과로 나를 증명하려 했다.
늘 해야 할 일이 많았고, 그 속도에 맞추느라
나의 마음은 늘 뒤처져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멈추어 섰다.


퇴직을 앞두고 시계를 보는데,
초침의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열심히만 살아왔던 걸까.

은퇴는 내게 처음으로 “속도를 늦출 자유”를 주었다.
그 자유는 낯설었지만,
곧 내 삶의 균형을 되찾게 해 주었다.


퇴직 후 첫해, 나는 자주 길을 걸었다.
늘 가던 길이지만,
그 길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길가의 작은 들꽃 하나,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잎 하나에도
시간의 결이 담겨 있었다.

“이제는 빠르게 가 아니라, 깊게 살아야지.”
그 생각이 들자
내 삶의 풍경이 조금씩 달라졌다.


예전의 나는 일과 계획으로 하루를 채웠다.
지금의 나는 느림으로 하루를 다듬는다.
아침엔 커피를 내리며 오늘의 마음을 정돈하고
오후엔 글을 쓰거나 걷는다.
일정이 비어 있어도, 마음은 허전하지 않다.
오히려 그 빈 시간 속에서
나는 나를 다시 채운다.

어느 날엔 아무런 계획 없이 산책을 나갔다가
한참을 걷지 않고 그저 앉아 있었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 모든 게 마치 삶의 배경음악처럼 들렸다.
나는 처음으로 그 리듬에 귀를 기울였다.


그제야 알았다.
삶은 원래 이렇게 흘러가고 있었다는 걸.
다만 내가 너무 서둘러 지나쳤을 뿐이라는 걸.

요즘 나는 ‘단단한 느림’을 배우고 있다.
느림이란 게으름이 아니다.
오히려 느림은 삶의 뿌리를 깊게 내리게 한다.

빠름은 눈앞의 결과를 가져오지만,
느림은 삶의 깊이를 선물한다.
빨리 가는 대신 오래 머물며,
더 깊이 바라보며,
더 오래 사랑하게 된다.


나는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할까”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묻는다.


그 질문 하나로도
하루는 충분히 의미로 채워진다.

이제는 실패도 서두르지 않는다.
무언가 잘되지 않아도,
그 또한 내 인생의 한 단면으로 받아들인다.


길 위에서 넘어지면 잠시 앉아 쉬면 된다.
조금 늦게 가면 어떠랴.
나는 여전히 그 길 위에 있으니.


은퇴 이후의 시간은
내가 선택한 ‘삶의 속도’를 되찾는 시간이다.


예전엔 세상이 정한 속도를 따라야 했다면,
지금은 내가 원하는 속도로 살아간다.
아무도 재촉하지 않는 삶,
그 속에서 나는 오히려 더 단단해지고 있다.


삶의 속도를 늦추자, 비로소 내 마음의 결이 보였다.
그 결은 거칠지만 따뜻했고,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처럼 단단해지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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