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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기쁨 Oct 25. 2023

슬펐지만...

슬퍼하진 않았다

대학교 2년 차가 될 때 IMF로 인해 대학교 친구들이 하나둘 안 보이기 시작했다.


계속 미뤄지는 군입대 시기로 어설프게 1학기를 다니며 처음 맞은 학사경고는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지만 한 때 나에겐 특별한 친구가 한 명이 있었다.

1학년 때 우연히 듣는 수업이 겹치면서 말을 트고 친하게 지냈던 나의 친구 J는 언제나 밝은 녀석이었다.

같은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클래식 기타를 정말 잘 치던 친구였다.


내가 J를 좋아하게 된 건 무엇보다 언제나 웃는 듯한 얼굴로 묘한 분위기를 보여줬던 그 친구의 유쾌함에 힘을 얻는 기분이 들정도였다.


이렇게 보면 J도 친구가 많을 것 같았는데 항상 그날의 수업이 끝나면 다른 친구들과 동아리나 소모임, 술자리를 전혀 하지 않고 집으로 바로 갔다.


하긴... 1학년 내내 그렇게 수업을 같이 다녔는데도 술 한잔 해 본 기억이 없을 정도이니.


내 주위에서도 J를 기억하는 친구도 그리 많지 않았다. 같이 클래식 기타를 치던 K란 녀석 정도?


그런데 그 K란 친구도 J가 어디 사는지도 모른다고 했었다.


그 녀석도 군대를 갔던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어느 봄날, J로부터 삐삐가 왔다.


술 한잔 하자는 연락은 그때 내 기억에는 꽤나 신선했던 모양이다.


'아니 이 친구가 술을 한잔 하자고??'


그리고 혜화동 대학로의 어느 조용한 술집에서 만났을 때 그 까까머리는 여전히 기억이 난다.


"어라? 너 군대 가니?"

"그렇게 됐어"


내 예상이 맞았다.


그리고 그날 밤이 깊도록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솔직히 충격적이긴 했다.


"우리 부모님은 다 돌아가셔서 큰 아버지 집에서 지금까지 살았어. 근데 좀 어려우신가 봐"


"..."


"뭐 일단 입 하나라도 덜어드려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군대에 지원했는데 이틀 후에 입대한다."


속으로 부모님이 없는데 군대를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선뜻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원했다는 말에 아마도 군입대가 가능했던 모양이다.


항상 수업이 끝나면 먼저 집에 갔던 이유도 듣게 되었다. 


친구들과 같이 하고 싶었지만 큰아버지한테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아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던 이유, 항상 밝은 모습을 했던 이유는 나에게 너무 슬픈 이야기였다. 큰 아버지가 그래도 대학교는 나와야 사람구실할 수 있다고 대학교에 보냈다는 이야기와 클래식 기타를 치게 된 이유 역시 알게 되었다.


"그 상황에서 사고 치고 다니면 부모 없는 넘이라는 소리 들을까 봐 ㅋㅋㅋㅋㅋ"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J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친구가 군대를 가고 나도 군대를 가고 시간이 지나 제대를 했을 때 기간이 안 맞아 거의 1년을 놀아야 해서 2학기 시점에 학교에 자주 놀러 간 적이 있다.


근데 이미 학교를 다니고 있어야 할 그 친구의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K를 통해서 그에 대한 슬픈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녀석 군대에서 죽었어"

"뭐?? 사실이야? 근데 어쩌다 죽었어? 자살은 아니지?"

"그건 아니고..."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로 타인에 의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이후 장례나 이런 건 어떻게 치러졌는지 들은 게 없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가는 길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슬펐지만 슬퍼하진 않았다.


아마도 내가 슬퍼하면 그 친구가 싫어하지 않았을까 하는 내 마음이 어느 구석 한켠에 자리 잡고 있던 것일까?


그래서 내 나름대로 그 친구를 추억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게 아닌가 싶다. 



Keith Jarrett Trio - Ballad Of The Sad Young Men (1989년 음반 Tribute)

이 곡은 1989년에 발표한 라이브 <Tribute>에 수록된 곳으로 Anita O'Day에 헌정하는 곡이기도 하다.


최근 MMJazz에서 Kurt Elling 관련 기사가 나간 적이 있다.


갑자기 기타리스트 Charlie Hunter와 함께 SuperBlue 프로젝트를 통해서 Funk, Rock에 기반한 독특한 그루브의 음악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물론 나의 경우에는 그의 <The Questions> 음반 리뷰를 맡아서 기고하기도 했었다.

최근 발표한 그의 작품도 좋아하지만 그의 커리어 초중반 Blue Note에서 발매된 그의 작품들도 상당히 좋아하는데 그중에 1995년에 발표했던 <Close Your Eyes>에도 이 곡이 수록되어 있다.


간만에 그의 작품들을 집에서 작업하면서 플레이했다.


그러다 문득 이 곡을 듣고 나의 친구 J가 생각이 났다.


당시 살아오면서 주위에 부모님 없이 자란 아픔과 슬픔을 간직하고 살아온 사람이 없어서 그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겐 그래서 좀 더 특별했던 친구가 아니었나 싶다.


기억에 남을 추억을 서로 공유한 적도 없음에도 군대 가기 전에 내가 먼저 생각나서 연락했다는 그 친구의 마지막 모습이 이제는 흐릿해져 간다.


그 시간을 어떤 식으로든 공유했던 친구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슬프지만 더 슬픈 건 이제 그 기억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상의 온갖 때와 먼지로 불투명해진 창을 통해서 바라보는 것처럼 서서히 흐릿해진다는 것이 더 슬프게 느껴진다.


시간은 언제나 항상 그곳에 머물지 않고 흘러간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쓸쓸하게 다가오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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