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의기쁨 Jan 18. 2024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하는 사람

시작이 두려웠던 사람

그날 오후는 흐리멍텅하다는 느낌을 주는 기분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가게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잔을 정리하고 있었다.


손님이 오기에는 아직은 이르다고 생각한 시간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스키아! 오랜만이야!"


일주일에 두세 번은 방문했던 J였다.


한동안은 들르지 않아서 일이 바쁜가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오랜만이에요. J. 그동안 좋은 일이 많았나 봐요? 얼마나 좋은 일이 많으셨으면 이렇게 오랜만에 오시는 거예요?"


의례 하는 인사이긴 하지만 정말 좋은 일이 많길 바라는 인사이기도 하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주문을 한다.


"항상 먹던 맥켈란 12년산으로!"


언제나 싱글몰트를 고집하는 그의 목소리는 뭔지 모르겠지만 상기된 느낌을 줬다.


시간이 흘러 취기가 살짝 돌았는지 문득 질문을 던졌다.


"자네한테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여자 친구는 있나?"


"물론이죠."


"오! 그래? 어떻게 만났는지 물어봐도 되겠나?"


군 제대 이후 복학하기 전에 했던 게임 내의 길드 모임에서 처음 만난 것을 시작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한참을 듣더니 조용히 운을 떼며 질문한다.


"그럼? 언제부터 사귀게 된 건가?"


아마도 이게 제일 궁금했던 모양이다.


당황스러운 질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J는 한 번도 내게 개인사에 대해서 물어본 적도 없고 대부분이 회사 얘기였는데 특히 여자 얘기는 더더욱 하지 않았던 사람이라 오히려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에 대해 내가 더 궁금했다.


사실 나도 그게 의문이다. 왜냐하면 호감은 있었지만 내가 따로 그녀에게 대시를 한 기억도 없었다.

그저 길드 모임에서 내가 챙겨준 것 정도인데 그녀는 그걸 호감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하긴 지금 생각해 보면 모여서 공대 파티할 때 누구보다 더 먼저 그녀 옆에 앉아서 그녀를 챙기면서 겜을 했으니 이것도 대시였으려나?


이야기를 듣더니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럼? 자연스럽게 연인 사이가 된 건가.... 이거 부러운데?"


"부럽다니요? 전 J가 더 부러운데요?"


이 대답은 진심이었다. 

딱 봐도 180은 넘어 보이는 훤칠한 키에 아주 잘 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시원시원한 마스크는 누가 봐도 멋진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 들려줬다.


난 지금까지 여자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어.
놀랍게도 사귈 수 있는 기회는 엄청 많았는데 말이지
물론 썸은 많이 탔지. 근데 문제는 썸만 탔다는 거야.
맘만 먹었다면 여자 친구를 사귀었을 텐데 말이지...

공부를 시작한다거나 취미활동을 시작한다거나 하는 건 너무 쉽게 하는데 이상하게 사람 관계에 있어서 어떤 인연을 시작하는 게 너무나 힘들어.

문제는 나도 상대방도 서로 맘에 들어한다는 거야.
근데 상대방이 누군가와 친하게 대화를 하거나 뭔가 있어 보이는 관계처럼 보이면 '난 안되나 보다'하고 포기했다는 것이 문제라네.

사실 알고 보면 별거도 아니더라고.
그냥 내 마음이 조급해서 그런 건지 이유를 모르겠어.

자네는 이런 내 맘을 알겠나?
자연스럽게 여자 친구를 사귀었다니 이해할 수 없을 거야.

하... 그런데 진짜 맘에 드는 여성이 생겼는데 이번에도 그렇고 싶지 않다는 거야.


한숨을 내쉬며 위스키를 입에 가져간다.


답답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사람 관계란게 젤 어려운 일중 하나가 아니던가?


나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한마디 무심하게 던졌다.


저도 그 여성분이 궁금하네요.
지금 그분한테 전화 한번 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여기로 오시라고요.
만일 오시면 제가 한잔 쏘겠습니다!



Sonny Stitt  - Can't We Be Friends (1957년 음반 Kaleidoscope)


사실 내 입장에서는 전화를 걸든 안 걸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솔직한 맘에는 '설마 전화를 걸 수 있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취기와 함께 앞에서 전화하길 바라며 멀뚱멀뚱 바라보는 바텐더 한 명이 있다 보니 용기라도 생긴 걸까?


문득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곤 통화를 하다 잠시 밖으로 나간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아름다운 여성분과 함께 환하게 웃으며 들어오는 J를 보고 나도 모르게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맙소사!


당신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며 건배!



Sonny Stitt은 알토 색소폰 주자로 등장 당시만 하더라도 Charlie Parker의 후예로 알려진 뮤지션이다.


아쉽게도 그의 활동 지역을 당시 재즈씬의 메카였던 뉴욕보다는 L.A. 를 근간으로 활동을 해왔다.


따라서 후반 활동이 생각보다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해서 실력에 비해 아쉬운 평가를 받는 뮤지션이기도 하다.


50년에서 52년 사이의 세션 녹음을 모아서 57년에 발표한 이 음반은 이후 리마스터링되기도 했는데 Kenny Drew, Art Blakey 등 당시 재즈씬을 주름잡던 실력파들이 참여하기도 했던 음반이다.


Label: Prestige

Title: Kaleidoscope

Released: 1957


Sonny Stitt - Alto Saxophone

Charles Bateman - Piano

Gene Wright - Bass

Teddy Stewart - Drums

이전 01화 프롤로그: 일상의 조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