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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기쁨 Jan 22. 2024

외로움을 외로움으로 이기려는 사람

외로운 사람 #1

그날도 날씨는 흐렸다.


참 외로움이 느껴지는 날씨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날도 조용히 가게 안으로 들어오셔서 구석에 앉아 조용히 주문만 하시고 언제 가셨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한 '그' 손님이 오셨다.


가끔은 테이블 위에 있는 메모지에 청곡을 적어 건네시곤 하는 중년의 그 손님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다.


다만 재즈를 좋아하시고 어느 대기업의 임원이라는 사실만 스쳐 지나듯 들었을 뿐이다.


주문이나 신청곡을 제외하곤 대화를 거의 해 본 적이 없는 '그' 손님이 그날도 역시 신청곡을 하나 건넨다.


'Alone Together'


"Bill Evans의 곡이든 다른 뮤지션의 곡이든 이 곡으로 부탁해도 될까?"


"물론입니다."


그날따라 손님도 없고 그분 혼자 외로이 앉아 있는 모습과 신청곡의 제목과 묘하게 맞는 이 상황이 나는 그리 나쁘진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우니까 가끔은 이런 외로움을 즐겨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늘상 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분이 문득 나에게 말을 건네셨다.


"자네는 나이가 어떻게 되나? 20대? 어려 보이는데 이런 바텐더 일이 힘들지 않은가 궁금하네."


"이제 24살입니다. 군제대 후 복학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부모님 부담을 좀 덜어드리고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군."


위스키를 한잔 마시고는 대화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오랫동안 기러기 아빠였네. 기러기 아빠가 뭔지 아나?"


"처음 듣는 말입니다. 기러기 아빠가 뭔가요?"


그러면서 한 번도 나와 대화를 해 본 적이 없던 이분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시기 시작했다.


나에겐 딸이 있지.
내년이면 이제 20살이라네.

내가 젊었을 때 말이야.
유행처럼 아이의 장래를 위해 유학을 보냈다네.
그래서 나도 우리 딸이 유치원 갈 때 즈음해서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지.

다행인 건 미국에 사는 큰 형님이 계셔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부담이 덜했지만 어쨌든 나이도 어리고 엄마가 옆에 있어야 하기에 아내와 딸은 그렇게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네.

벌써 14년이 돼 간다네.
이제 곧 한국으로 올 시간인데 며칠 전 그 일로 아내랑 싸웠다네.
한국에 가는 거보다는 미국에서 대학교도 나오고 하는 게 더 좋을 거 같다고 말이야.

솔직히 난 너무 화가 났다네.
얼마를 더 기러기 아빠로 살아야 하는 건지 말일세.
언제까지 더 이 생활을 해야 할까?

이건 너무 힘들고 외로운 생활이거든


"외롭다고 하셨는데 그럼 취미를 한번 가져보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취미도 가져봤다네. 하지만 취미도 하루이틀이라네. 사랑하는 가족이 분명 있는데도 이 외로움이 어디 가질 않는 거야. 그러다 보니 솔직히 불륜도 저질러보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네. 하지만 차마 불륜까지는 못하겠더라고. 근데 미국에 있는 나의 가족은 그저 나의 희생만을 바라보는 거 같아서 너무 화가 나고 외롭다네."


그 외로움이 얼마나 클지 솔직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무려 14년 동안 가족을 해외로 보내고 혼자서 묵묵히 일을 하며 자식의 장래를 위해 희생을 하는 이 분의 아버지로서의 무게감과 외로움은 솔직히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위스키 한잔에 음악을 담아 가슴속으로 털어내는 게 그나마 내 외로움을 달래는 유일한 방법이라네."


"그렇다면 선생님이 미국으로 가보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닐세. 하지만 그래도 내가 하는 일에 아직까지는 자부심을 느끼네. 아직 은퇴할 나이도 아니네."


이후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자신의 일과 가족이 저울질의 대상이 돼 간다고 생각하니 아마도 더 외로우셨을 것이다.


그때 나는 미국에 한번 놀러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무심코 말을 던졌다.


저는 미국 한번 놀러 가보는 게 소원입니다.


갑자기 이분이 내 말을 듣더니 자리에 일어나셔서 한마디 하시고는 코트를 챙기고 나가셨다.


고맙네! 바텐더 양반! 내 난중에 한잔 쏘지!


Jim Hall Ron Carter Duo -  Alone Together (1973년 음반 Alone Together)


꽤 오랜 시간 그분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가게에 방문하시고 그간의 일을 즐거워하는 어린아이처럼 펼쳐놓기 시작했다.


자네가 한 말을 듣고 생각을 했지.

그냥 가끔 가족도 볼 겸 미국으로 놀러 간다 생각하면 되는 걸 말이지.
지금까지 한 번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게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더군.
왜 그랬을까?

외로워서 가족이 보고 싶으면 보러 가면 되는 것을 무려 14년이 지나서야 알았다니!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지금까지 이렇게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네.
그렇게 생각하니 솔직히 좀 억울하군.

그리고 미국으로 가족을 보러 갔네.

더 좋은 일은 말이야.
한국으로 돌아오겠다는 거야!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그분 가족의 앞날에 행복만 가득하기를 바라며 건배!



1972년 기타리스트 Jim Hall과 베이시스트 Ron Carter의 첫 만남이 뉴욕에 소재한 Playboy Club에서 8월 4일 성사되었다.


Jim Hall의 경우에는 듀오 형태의 연주를 상당히 좋아했는데 그런 이유로 Bill Evans라든가 Pat Metheny, Charlie Haden 같은 뮤지션들과의 듀오 형태의 연주를 했었다.


이 만남이 좋았던 것일까?


이후에 이 듀오는 2장의 작품을 더 발매하며 재즈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사실 기타-베이스라는 듀오가 개인적으로는 음악적 매력이 좀 떨어진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서로의 연주가 대화를 하듯 펼쳐지는 이 음반의 분위기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Label: Milestone Records

Title: Alone Together

Released: 1973


Jim Hall - Guitars

Ron Carter - B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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