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의기쁨 Jan 25. 2024

이미 진 게임

이미 꺾여 버린 마음

그날도 역시 면접은 당연하다는 듯이 떨어졌다.


이유는?


그 회사에 취업해야 할 목적과 이유가 분명하지 않으니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학 시절 재즈 베이시스트가 되겠다는 꿈을 접은 이후 어떤 목적도 없이 대학을 다니고 졸업을 했다.


물론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오겠다는 하나의 목적은 이루긴 했지만 단지 그것뿐이다.


남들 다 하는 취업이다 보니 그저 그 흐름에 맞춰 회사에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지만 목적도 없어 보이고 자신감 없는 내 모습을 누가 뽑고 싶어 할까?


취업을 하는 이유가 뭘까?


돈을 벌기 위해서? 또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성취감을 얻기 위해서?


아니면 부모님이 지금까지 키워주셨으니 이제는 당당히 좋은 기업에 취업을 하고 돈을 버는 자식 하나 있는 거 부모님이 자식 자랑 할 수 있도록?


취업을 하고 돈을 벌고 결혼을 해서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거?


결국 나는 그 질문에 대한 궁극적인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면접을 잘 봤는지 연락을 하거나 문자를 보냈다.


전부 하나같이 하는 이야기는 '잘 될 거야'이다.


잘 되긴 뭘 잘돼?


자존감이 낮아지다 보니 나를 걱정해 주는 친구들의 위로조차 조롱하는 것처럼 들릴 뿐이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이 삐뚤어진 걸까?라는 생각을 한다.


생각해 보면 난 이미 진 게임을 하고 있다.


애초에 진 게임에 최선을 다할 수가 없다.


아니 이 말도 어패가 있다. 


최선을 다할 수가 없는 게 아니고 노력조차 하지 않았는데 무슨 최선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단 말인가?


그냥 정처 없이 홍대를 향했다.


재즈 커뮤니티 모임에서 자주 갔던 재즈 클럽에는 유명한 뮤지션들 외에도 재즈 뮤지션을 꿈꾸는 학생들과 아마추어들도 공연을 하곤 한다.


누가 공연을 하든 상관없었다.

그저 시원한 맥주 한잔에 음악을 듣고 그 순간만큼은 벗어나고 싶었다.


맥주를 시킨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된다.


재즈 스탠더드가 울리고 홀로 맥주를 마신다.


"이보게. 젊은 친구. 상당히 외로워 보이는구먼? 그래 혼자 이런데 오는 걸 보면 재즈를 좋아하는 친구인가 보구먼."


옆 자리에 어느 나이 많으신 어르신이 어깨를 두드리며 슬며시 질문을 던진다.


"외롭긴요? 이렇게 시원한 맥주 한잔에 음악이 있는데 외로울 수가 있을까요? 하하하"


농담처럼 던지긴 했지만 그 순간은 정말 외롭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다.


"외로움을 감추는 데는 '꾼'인 친구인가 보구먼! 그래 그렇게 외로움을 감추면 그 외로움이 사라지던가?"


속마음을 들킨 것처럼 나는 화들짝 놀랬다.


위로를 받고 싶었던 것일까? 대학 시절의 이야기나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내 젊은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게 미안하지만 마치 꿈을 잃은 청춘처럼 보이는구먼!"


"뭐 그렇습니다. 꿈을 잃은 거 같아서 힘이 드네요. 어르신도 젊은 적엔 꿈이 있으셨겠죠?"


"젊은 적이라니? 난 아직도 꿈이 있는데 뭔 소리를 하는 겐가?"


속으로 '아니 낼모레하실 거 같은 노인분이 무슨 꿈을 운운한단 말인가'라고 생각할 즘에 그 어르신은 마치 내 속마음을 읽어내신 듯 이야기를 계속 이어간다.


"물론 자네가 보기엔 노인이 무슨 꿈일까라고 생각할 수 있네. 근데 꿈이 꼭 거창해야 꿈인 겐가?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네."


"그럼 어르신의 꿈이 무엇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말이야.
나는 꿈이란 걸 가져본 적이 없었다네.

그 꿈이란 걸 가 본 적이 없으니 꿈을 잃을 일도 없었겠지.

자네도 알겠지만 과거 한국전쟁이나 그 힘든 시절 무슨 꿈을 꿀 수 있었겠나?
죽지 않으면 다행 아닌가!
그저 굶지 않고 우리 가족 입에 풀칠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먼저였지.

음... 그렇게 보면 그것도 꿈이라고 할 수 있겠구먼.

하지만 단순하게 생존을 하는 것이 진정 꿈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한다면 글쎄...

나이가 들어 아내는 천국으로 향했고 자식도 결혼시켜 분가시키고 이렇게 혼자 있다 보니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네.

아주 오래전에 드럼을 쳤었지.
그게 나는 너무 좋았네.
물론 프로처럼 연주하진 못해도 말일세.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한 가지 꿈을 꾸기 시작했다네.

그래 내 꿈이 뭔지 아직 말을 하지 않았는데 내 꿈은 건강하게 사는 게 내 꿈이라네.

남들이 보기엔 무슨 그런 싱거운 꿈이 다 있냐고 할지 몰라.

지금 연주하는 친구들 다음 스테이지에서 내가 알고 지내는 친구들이랑 연주가 있다네.
건강하게 살아서 드럼 연주를 죽기 전까지 하고 싶은 게 내 꿈일세.


그 말을 듣고는 문득 Art Blakey가 생각났다.


시간이 지나고 한 팀의 스테이지가 끝나고 나서 그 분과 알토 색소폰을 연주하는 나이가 상당히 어려 보이는 뮤지션 한 명과 그 어르신과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베이시스트 한분 이렇게 트리오로 30분 정도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굉장히 잘한다고는 할 수 없었다. 

알토 색소폰을 연주하는 프로에 가까운 실력을 갖춘 분을 제외하고는 취미에 가까운 연주를 보여줬는데 그럼에도 그들이 보여준 앙상블은 그 어느 팀보다 멋지게 들렸다.



The Red Garland Quintet With John Coltrane - What Is There To Say? (1961년 음반 High Pressure)


연주가 끝나고 그 어르신이 자신의 팀 멤버들을 나에게 소개해주며 맥주를 한잔 사주셨다.


"캬~ 공연 후에 마시는 이 맥주가 나는 세상에서 젤 맛있다네. 이 맛에 사는 거 아니겠는가!"


나는 알토 색소폰을 연주했던 분에게 이분들과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물어봤다.


저는 아직 알토 색소폰을 전공으로 하는 학생입니다.
사실 학교에 팀이 있어요
전통 재즈를 하는 팀은 아니고 테크니컬 한 퓨전부터 이것저것 하는 팀이긴 한데 이 분들은 연주 커뮤니티에서 만났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거절했습니다. 하하하
벌써 일 년이 다 돼 가네요.

근데 저는 이분들이랑 연주하는 게 너무 즐겁습니다.
이분들의 연주가 제가 하는 팀 멤버들에 비하면 화려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연주 속에 삶이 녹아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원래 하는 팀의 음악과는 다르게 발라드 위주의 스탠더드 재즈 연주를 하긴 하지만 기교가 아닌 감성을 연주에 실게 되더라고요.

오히려 제가 이분들과 함께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겸손함 속에 진심이 묻어나는 대답을 듣고 나도 모르게 감탄을 했다.


소소한 꿈이라 할지라도 삶의 목표가 되는 순간 외롭지 않다는 것을 그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피아노 트리오를 선호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특히 Red Garland의 음반 중 Quintet구성의 작품들을 상당히 좋아한다.

이유는 이 당시 그는 Donald Byrd, John Coltrane과 함께 베이시스트 George Joyner와 드러머 Arthur Taylor와 레귤러 멤버로 총 4장의 음반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중에 이 작품은 원래 57년에 녹음되었다가 어떤 이유인지 잘 모르겠지만 61년에 비로소 세상에 나왔다.


이 Quintet이 좀 특별했던 이유는 원래 Miles Davis가 54년에 구성한 Quintet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Miles Davis와 당시 Prestige의 설립자인 Bob Weinstock과 사이가 안 좋았는지 어땠는지 이유는 잘 모르지만 57년 Miles Davis가 Columbia로 이적한다.


그래서 Miles Davis가 이적하기 전 Prestige와 남은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마라톤 세션을 강행하는데 결과물이 그 유명한 4부작이다.


Bob Weinstock은 그때 Red Garland와 John Coltrane을 중심으로 나머지 멤버를 모아서 Miles Davis Quinte을 본 따 녹음을 진행하는데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바로 Red Garland Quintet이다.


게다가 Miles Davis의 팀에서 연주하는 Red Garland와 이 시기의 그의 연주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Miles Davis가 Ahmad Jamal처럼 연주하도록 주문하면서 본래 자신의 연주를 숨겨야 했던 그가 드러내놓고 자신의 연주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녹음의 결과물은 정말 훌륭하다.

특히 Donald Byrd는 확실히 Miles Davis보다 기교나 여러 면에서 월등하게 뛰어난 연주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Miles Davis Quintet의 인기를 따라가지 못한 것은 좀 의미심장하다.


Label: Prestige

Title: High Pressure

Released: 1961


Red Garland - Piano

Donald Byrd - Trumpet

John Coltrane - Tenor Saxophone

George Joyner - Bass

Arthur Taylor - Drums

이전 03화 외로움을 외로움으로 이기려는 사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