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라고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할 때
내 성격이 그다지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가끔 쓸데없는 승부욕도 부리기도 하지만 두리뭉실한 성격과는 다르게 은근히 다혈질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나는 누군가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
물론 남에게 싫은 소리도 잘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일까?
회사에 처음 입사할 때 나에게 잘해주셨던 한 상사위원님이 자신의 일처리를 간곡하게 부탁하곤 했다.
바쁘지 않을 때도 있기도 하고 거절을 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처음에는 도와주기 시작했지만 이것이 반복되니 부탁조차도 하지 않는다.
퇴근 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그냥 책상에 서류를 던지고선 하는 말은 나를 더욱 당황스럽게 했다.
"내일까지 해놔야 돼."
이젠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놓고 가셨다.
그날따라 몸이 두 개라도 모자를 만큼 챙겨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은데 그런 식으로 놓고 가니 나도 모르게 화가 났다.
"위원님!"
하고 뒤를 돌아보니 벌써 사라지고 없다.
다행인 건 그 상사위원이 넘긴 서류를 보니 처리할 일이 많지 않았다.
그로 인해 퇴근 시간이 한 시간 늦어지긴 했지만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막막하다.
눈에 딱 보인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악용하는 것이다.
자신의 일인데도 하기는 싫고 만만한 상대에게 일을 던지고는 자신은 담배를 피우러 가서 들어오지도 않는다.
더 화가 나는 건 그날 오후의 하늘은 수채화 같은 느낌을 주는 상쾌한 날이라는 것이다.
마치 투명한 하늘 위로 만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솜사탕 같은 구름을 그린 것 마냥 날씨가 너무 좋았다.
그날따라 바에 손님이 많았다.
이런 날은 그냥 조용히 한잔하고 싶은데 이런 걸로 또 화가 난다.
오늘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올라왔지만 한숨을 크게 쉰다.
이러다 분노에 불타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아니 오늘따라 왜 그렇게 한숨을 쉬나? 테이블 부서지겠네 이 친구야!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오늘 내가 한 잔 쏘지."
세라노가 한 잔을 건넨다.
세라노.
제 성격에 문제가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거절하는 게 너무 힘드네요.
회사에서 저도 바쁜데 계속 자신의 일을 넘기는 상사위원이 있어요.
바쁜 와중이었는데 회사에서의 제 입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 부탁을 처음에는 거절하지 못했어요.
근데 이 분이 수시로 자신의 일을 저한테 부탁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때도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제는 대놓고 부탁이 아닌 그냥 자신의 일을 던지더라고요.
거절을 못하는 것도 혹시 병일까요?
"글쎄... 거절을 못하는 게 병은 아니지."
"그렇죠?"
"자네 성격 은근히 다혈질이잖아? 근데도 거절을 못한다고? 아니겠지! 거절하는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드는군."
"거절하는 방법이요?"
"그래. 거절하는 방법 말일세. 아마도 그 사람이 너무 바빠서 자네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라고 짐작하고 거절하지 못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한다네."
"모르겠네요. 이제 생각도 안 나요."
"원하는 일은 아니지만 자기 일에 그래도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고 항상 나에게 말하지 않았나? 만일 그런 부탁으로 인해 자네 일에 차질이 생긴다면 말일세. 그때는 어떻게 할 건가?"
"그분이 그래도 저한테 잘해주셨는데..."
"그렇다면 더더욱 필요할 때는 거절을 할 줄 알아야지. 그 사람이 자네한테 잘해줬다고? 인간관계 때문에 거절을 못하다가 지금처럼 한숨 푹푹 쉴 정도까지 왔다면 내 장담하는데 조만간 그 사람과의 관계가 분명 안 좋아질 거라고 확신한다네."
"아 모르겠어요."
입이 타들어가듯 마르기 시작한다.
위스키를 한 모금 음미하고 기분을 가라앉힌다.
거울을 보고 상대방을 주시한다고 생각하고 거절하는 연습을 해보게.
거절할 때는 정중하게 자신의 거절 이유를 설명하면서 말이야.
상황은 자네가 만들어서 입 밖으로 뱉어 보라고.
입 밖으로 뱉어 보는 게 제일 중요해!
그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한 만큼 자네 일도 중요한 거야.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네.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들어줄 순 있겠지...
하지만 확실한 거절 이유가 있다면 거절해야 하는 거야.
그렇지 못해서 자네 일에도 계속적으로 차질이 생기면 그게 그 사람과의 관계보다 더 큰 문제라고!
그때는 늦은 거야!
일과 사람관계 모두를 잃게 되는 것일세!
"세라노. 거절하는 것이 연습이 필요할 정도인가요?"
"모든 것에는 연습이 필요한 법일세. 악기를 다뤄본 자네가 그런 말을 하니 이해가 안 되는군. 심지어 승낙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네."
"승낙하는 것조차도 연습이 필요하다고요?"
"당연한 말이지. 적어도 자네가 승낙을 한다면 그 사람은 어떤 식이든 이득을 얻을 거 아닌가? 인간관계도 중요하지만 'Give And Take'라는 것을 상대방에게 어필할 필요가 있다고."
"너무 계산적인 거 아닌가요? 세라노? 하하하"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실제로 내가 스페인에서 일을 했을 때 'Give And Take'는 성공의 요인으로 봤다네. 여기에 Matcher를 더할 수 있지. 회사에 있다 보면 말일세. 누군가로부터 이득을 얻는 사람 (Taker), 준 만큼 받는 사람 (Matcher), 다른 사람을 먼저 챙겨주는 사람 (Giver)로 나눠지더군."
"흠... 그런가요?"
자네가 Giver가 되었다면 언젠가는 Matcher가 되기도 해야 하고 Taker가 되기도 해야 한다네.
위치라는 것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네.
물론 Giver가 그만큼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요소가 많아 성공이라는 측면에서 확률적으로 높다고 많이들 얘기를 하긴 한다네.
어쨌든 모든 위치에 있어봐야 자네가 Giver가 되든 뭐가 되든 도움이 된다는 거야.
각각의 위치에 서봐야 그들의 마인드를 파악할 수 있고 그에 맞는 대처를 할 수 있지 않겠나?
"아직 저한테는 어려운 말이네요."
"사회 초년생들이 겪는 문제 중 하나일 뿐이지.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언젠가는 자네도 알게 되지 않을까?"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지만 확실한 건 하나다.
나에게 정말 필요한 건 No라고 할 수 있는 용기라는 것
Eric Dolphy의 음악은 프리재즈에 가까워서 사실 재즈 초심자들에게는 생각 외로 접근하기 쉽지 않다.
그나마 60년부터 Prestige에서 발매했던 음반들 중 초기 작품들이 비밥과 프리재즈 사이를 오고 가던 시기라 이때의 작품들을 선호하는 경향도 있고 이후 Blue Note에서 발매된 음반이랑 사후 발굴된 라이브 음원들을 좋아하는 분들도 많다.
그중에 <At The Five Spot> 시리즈는 개인적으로 가장 손에 꼽는 작품 중 하나이다.
일단 원래 이 작품은 61년도에 뉴욕의 어느 호텔의 카페인 Five Spot이라는 곳에서 벌어진 실황 음원이다.
애초에 작품을 발매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고 어느 재즈 팬이 현장에서 녹음한 걸 Prestige의 설립자인 Bob Weinstock에 손에 들어가면서 세상에 나오게 된다.
워낙에 연주들이 길어서 그중에 몇 곡을 추려서 <At The Five Spot>라는 타이틀로 1장이 먼저 세상에 나오고 이 라이브가 끝나고 3개월 후에 트럼페터 Booker Little이 요독증으로 사망하면서 두 번째 작품이 세상에 나온다.
이때 그의 나이가 이제 20대였으니 요절을 한 셈이다.
게다가 3년 후에는 Eric Dolphy가 당뇨로 사망하게 된다.
이후 나머지 곡들을 모아서 65년에 이 두 명의 뮤지션을 기리고자 <Memorial Album>이라는 타이틀로 발매하게 된다.
한마디로 이 3장의 작품은 그 자리에서 공연한 라이브를 쪼개서 발매한 것이다.
그래서 이 3장의 연주를 전부 모아서 컴플릿 시리즈로 내놓은 게 <At The Five Spot: Complete Edition>이 되겠다.
실제로 'Booker's Waltz'는 <Memorial Album>에 수록된 곡이다.
Eric Dolphy와 자주 놀곤 했던 Mal Waldron 트리오의 리듬 섹션 위로 Booker Little과 알토 색소폰에서부터 베이스 클라리넷, 플루트를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운드로 연주하는 Eric Dolphy의 놓쳐서는 안 되는 명 연주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Label: Prestige
Title: At The Five Spot: Complete Edition
Released: 2012
Eric Dolphy - Alto Saxophone, Bass Clarinet, Flute
Booker Little - Trumpet
Mal Waldron - Piano
Richard Davis - Bass
Ed Blackwell - Dru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