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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기쁨 Feb 29. 2024

상대를 얕잡아 보는 사람

자신을 높이려는 마음

몇 년 전 오전에 줄기차게 비가 오다가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해가 쨍쨍하게 뜬 어느 오후 편의점에서 친구와 커피를 마시는 중에 옆 테이블에 이야기하던 아저씨 두 분 중 한 분이 기상청에 전화를 해서 꽤 오랜 시간 폭언과 욕설을 쏟아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요지는 '니들이 일기예보를 잘못하는 바람에 비가 와서 내가 일을 못 나가 손해를 봤으니 어떻게 할 것이냐'였다.


기상청 직원에게 거의 인격모독의 발언을 쏟아내는데 다른 한 분이 말리기 시작했다.


"야 이 사람아! 일기예보가 어떻게 100프로 맞을 수 있겠나? 게다가 그 아가씨가 무슨 잘못인가? 그만하게나."


그럼에도 그 아저씨는 말꼬리를 붙잡고 엄한 곳에 화풀이하고 전화를 끊더니 하는 말은 딱 이거였다.


"아니. 우리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상청에서 일기예보가 틀려서 내가 손해를 봤는데 당연한 거 아닌가?"


저 말에는 은연중에 자신이 세금을 내는 국민이니 나는 위에 있는 사람이고 그들은 우리 세금으로 먹고 사니 기상청 직원들을 낮게 보는 시선이 깔려 있다.


다른 아저씨의 말씀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자네에게도 딸이 있잖나? 만일 자네 딸이 그 기상청 아가씨처럼 자기의 잘못도 아닌데 누군가로부터 욕을 먹었다고 생각해 보게. 그 아가씨도 누군가의 귀한 딸일 텐데 어른이 돼가지고 그렇게 행동해서 쓰나. 이 양반아!" 


분이 안 풀렸는지 그 말에 다음과 같이 대답을 했다.


"아 됐고. 내가 그러는 게 뭐가 잘못된 건가?"


이외에도 학벌과 재력, 권력, 직업으로 상대방을 낮게 보고 얕잡아 보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날 처음 오시는 손님 한분이 계셨다.


나이차가 많이 나지 않는 이상 처음 오시는 손님들은 어느 정도 친밀감을 갖기 전까지 말을 놓지 않는다.

하지만 40대 중반처럼 보이는 이 손님은 내가 어려 보였는지 처음부터 말을 놓는다.


"혹시 달모어도 취급하나?"


"달모어는 여기 주인장분이 취급하지 않으십니다."


"달모어가 없다고? 하긴 이런 작은 바에서 달모어를 찾는 내가 바보지."


스카치위스키를 찾는 손님들이 대부분이고 여기 주인장분은 버번위스키를 제외하곤 스카치위스키 애호가라 달모어 같은 영국산 위스키는 놓지 않으셨다.


가끔 이런 영국산이나 아일랜드 위스키를 찾는 분들이 있긴 하지만 어쩌겠나?


가게 주인장분의 마음이니 나로서는 좀 아쉽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위스키 애호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라인업을 주로 취급하는데 예를 들면 글렌피딕 아니면 맥켈란 12년산이나 그보다 약간 비싼 15년산을 많이 찾는다.


고가일수록 당연히 좋은 위스키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일할 당시에는 대부분의 손님들은 오히려 12년산같은 모델들을 더 선호하셨다.


물론 12년산과 15년산은 가격차이가 나긴 해도 굉장한 차이가 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얘기를 나누다 보면 가격차이보다는 취향차이가 상당히 크다.


어떤 분은 12년산 먹느니 소주를 마시겠다 하시는 분들도 있고 15년산보다는 12년산이 자기에게 맞는다는 분들도 있다 보니 정답은 없다.


물론 어떤 브랜드든 앞 숫자가 바뀌는 21년산 그 이상으로 넘어가면 벽을 느낄 만큼 비싸지긴 한다.


어쨌든 이건 모델라인들만의 독특한 향과 목 넘김에 따른 취향차이인데 바마다 주인장분이 선호하는 모델도 있기 때문에 취급하는 모델라인도 제각각일 것이다.


게다가 이런 작은 바에 오시는 분들은 비싼 위스키보다는 잠깐의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 오시는 경향이 많아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부담 없는 위스키로 구색을 맞추고 있다.


사실 모든 위스키를 취급하면 좋겠지만 현실상 힘들다.

워낙에 종류나 모델라인도 다양하고 그에 따른 비용문제 때문인데 그럼에도 아주 특이한 분 아니면 대부분 취향은 어느 정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정말 단골분들은 간혹 고가 라인을 가져오시는데 단골분에 한해서 여기 주인장분은 저렴한 콜키지 비용을 받으셨다.


그분은 발베니 18년산을 주문하며 이야기를 하시기 시작했다.


나이도 어린 거 같은데 이런 술집에서 일하는 것이 좋은가 궁금하군.
다른 좋은 일도 많은데 말이야.
어디 술집에서 바텐더로 일한다고 말하면 안 부끄러운가?

그리고 이런 작은 술집에서 일하면 월급도 적을 거 같은데 만족하는지 물어보고 싶군.
그래 나이는 어떻고 대학은 나왔나?


"24살입니다. 복학한 지 얼마 안 됐습니다."


"그래? 대학생이라는 건가? 대학생이면 대학생 다운 아르바이트를 할 것이지... 그래 어느 대학 어느 과지?"


SKY에 비하면 좋은 대학교는 아닐 수 있겠지만 공대로는 자부심을 갖고 다녔다.


"00대 전자공학부입니다."


대답을 듣고선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분과의 대화 속에서 상대방을 낮게 보는 시선이 깔렸다는 것이 느껴졌다.


"저는 이 일이 나름대로 좋습니다. 제가 성격상 사람들 만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다양한 생각을 가진 분들과 대화도 하고 제가 알지 못하는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거든요."


"나는 변리사라네. 10년 차인데 연봉이 1억이 넘는다네. 부럽지 않나?"


지금도 그렇겠지만 2002년 당시 연봉이 1억이라면 굉장한 금액이다.


솔직히 연봉 1억이라고 하니 나도 모르게 놀랐다.


"와우! 연봉이 1억이 넘는다니 엄청나군요."


"당연하지!"


굉장히 자랑스럽게 대답하는 그에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연봉 1억이 넘으면 삶이 행복해지는지 궁금하네요. 워낙에 큰 연봉이라 사실 저한테는 와닿지 않거든요."


신나게 자기 자랑을 하시던지라 바로 답을 주실 거라 생각했는데 무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위스키를 한 모금 음미하시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글세... 이렇게 말하고 보니 연봉 1억에 내 삶이 행복한지는 잘 모르겠군."


"이해가 안 가네요. 그렇게 높은 연봉이면 할 수 있는 것도 많을 거고 행복할 거 같은데요?"


"그런가?"


저는 연봉 1억은 꿈도 못 꿉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꿈이 있습니다.
부모님의 학비 부담을 덜어드리려고 이 일을 하고 있지만 재즈 베이시스트로서 열심히 제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죠.
근데 연봉 1억에 행복하지 못한다면 저에게는 그저 숫자에 불과할 것 같습니다.



Tal Farlow - All The Things You Are (1958년 음반 This Is Tal Farlow)


이미 지나간 꿈이지만 당시만 해도 나는 그 꿈을 향해 한 발짝 움직일 때마다 행복함을 느꼈다.


한참 후에 그분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갑자기 자네가 부러워지는군.
꿈을 꾸고 있는 친구라니...

꿈을 꿀 수 있다는 것만큼 행복한 게 또 어디 있을까?
사실 변리사니 연봉 1억이니 하는 게 내 꿈은 아닌데 말일세.


"그럼 원래 꿈은 어떤 거였습니까?"


"글세..."


그러고는 위스키를 한 잔 더 주문했다.

위스키를 음미하며 담배를 피우더니 자신만의 생각에 잠겨있는 듯 그의 눈은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당신의 삶이 외롭지 않고 행복하길 바라며 건배!



비밥 시대의 기타 명인으로 빼놓을 수 없는 뮤지션 중 한 명이 바로 Tal Farlow이다.


특히 그는 스윙시절 Charlie Parker와 Dizzy Gillespie의 연주를 보고 비밥의 세계에 빠졌다고 한다.

뉴욕의 52번가의 재즈 클럽을 그렇게 드나들었다고 하는데 그가 가장 아쉬워한 것은 Charlie Parker와는 한 번도 협연을 못했다는 것이라고 한다.


독특한 것은 그의 테크니컬 한 연주스타일이다. 동시대의 기타리스트 중 Doug Raney의 아버지이자 실력파 기타리스트였던 Jimmy Raney와 비교가 되곤 했는데 확실히 Tal Farlow의 연주는 상당한 드라이브감을 선사하는 스타일을 구사했다.


게다가 손이 엄청 커서 '낙지'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기타 네크를 오가며 보여주는 기교가 일품인 뮤지션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그간 그가 드럼이 없는 기타-피아노-베이스 형식의 트리오에서 벗어나 드러머 Jimmy Campbell이 참여하면서 사운드적으로도 상당히 풍성하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와 오랜 기간 함께 했던 피아니스트 Eddie Costa와의 마지막 세션으로 잘 알려진 작품이기도 하다.


피아노를 타악기처럼 연주했던 Eddie Costa와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인터플레이는 이 작품을 듣는 묘미이기도 하다.


총 2번의 세션으로 녹음된 작품으로 첫 번째 세션에서 Knobby Totah가 베이스를 담당했고 나머지 세션은 Bill Takas가 베이스를 담당했다.


'All The Things You Are'는 두 번째 세션에서 연주한 곡이다. 



Label: Verve

Title: This Is Tal Farlow

Released: 1958


Tal Farlow - Guitars

Eddie Costa - Piano

Bill Takas - Bass

Jimmy Campbell - Dru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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