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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기쁨 Mar 04. 2024

위스키는 커피다

위스키를 통해 배우는 인생의 이야기

어떻게 보면 상당히 엉뚱한 발언 같아 보이는 '위스키는 커피다'는 내가 처음 바텐더라는 아르바이트를 할 때 주인장분이 나에게 했던 말이다.


특히 커피 소비가 세계에서 탑인 한국에서는 물처럼 마시긴 하지만 커피를 정말 즐기는 사람들은 향과 함께 산미와 바디감에 상당히 민감하다.


또는 원두에 따른 맛과 향을 즐기며 특정 원두를 찾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가장 흔하게 말하면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커피의 여왕이라고 칭송하는 에티오피아의 예가체프를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다.


물론 신맛을 선호하지 않는 분들은 이 예가체프가 별로일 수 있다.


즉, 커피 마니아들도 이 취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는 취향이 그렇게 확고하지 않아서 대부분의 커피 종류에 구애받지 않는 편이긴 하나 산미를 좀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서 예가체프를 상당히 좋아한다.


우리가 커피 하면 브라질이나 남미 쪽을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 에티오피아는 커피의 고향이라는 말까지 한다.


이와 더불어 에티오피아의 시다모, 하라, 짐마 같은 원두는 그 특유의 향과 맛 때문에 특히 여성분들이 많이 찾는 걸로 알고 있다.


싱글몰트, 블렌디드, 버번위스키는 커피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내가 예전에 바리스타 공부를 잠시 하면서 알게 된 건 기호에 따라 하나의 원두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다양한 원두를 자신만의 비율로 블렌딩 해서 바리스타들마다 추구하는 맛과 향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블렌디드 위스키는 커피처럼 블렌딩을 통해서 브랜드마다의 맛과 향을 추구한다.

버번은 아메리카 위스키라고 해서 스카치위스키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원두를 어떻게 볶고 어떤 두께로 갈고 어떻게 보관해서 숙성시킬 것인지에 따라서 맛과 향이 또 달라지는 것처럼 위스키와 커피는 비슷한 면이 많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분이 말씀하셨던 '위스키는 커피다'라는 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굉장히 간략하게 설명하긴 했지만 바텐더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처음 오시는 손님들이 추천을 원할 때 적어도 위스키의 종류와 브랜드마다 다른 맛과 향의 특징을 어느 정도 알아야 하기에 배웠다.


신기했던 것은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위스키를 배울 때 이런 점 때문에 매력을 느껴서 인지 몰라도 내 인생에서 위스키를 그때만큼 마셨던 적은 없는 거 같다.


하나씩 하나씩 맛과 향의 차이를 느낄 수 있도록 나에게 많은 시간과 위스키를 투자해 주셨던 그 주인장분에게 지금도 고마움을 느낀다.


적어도 취미 하나 정도는 생겼으니 나름대로 좋았다.


게다가 우리가 자주 듣는 온 더락, 스트레이트, 트와이스 업 같은 마시는 방식에 차이점도 알아야 한다.


실제로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저 3가지 외에도 상당히 많은 방식이 존재한다.


나머지 방식이 조금은 비주류라고 하지만 간혹 손님들이 원하시면 서빙을 해야 하기에 알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저 3가지 방식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언급하려고 한다.


스트레이트는 다른 말로 Neat, 즉 니트라고 주문해도 상관없다.

솔직히 나는 이 단어가 좀 더 고전적인 느낌을 준다.


그래서 간혹 손님분들 중에 니트라고 표현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럴 때는 그 손님분이 멋을 안다고 생각하게 된다.


개인적인 생각이니 오해하지 말자!


그래서 니트 아니면 스트레이트로 주문할 수 있다.


여기에 간혹 스트레이트 업으로 주문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나는 이 경우 항상 손님에게 확인을 했다.

왜냐하면 혼동해서 잘못 아시고 주문하시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와 스트레이트 업은 엄연히 다르다.

스트레이트가 니트와 같다면 스트레이트 업은 믹싱 글라스에 위스키와 얼음을 섞어 차갑게 한 이후 얼음을 빼고 차가워진 위스키만 잔에 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 스트레이트 업보다는 업이라는 표현이 더 많이 쓰인다.


트와이스 업처럼 상온의 물과 1대 1로 섞는 건 아니지만 위스키와 얼음이 만나면서 생기는 물 때문에 또 다른 위스키의 풍미를 경험할 수 있다.


트와이스 업의 경우에는 의외로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있는데 이건 적정 온도의 상온의 물과 1대 1로 위스키를 섞어서 마시는 방식이다.


스트레이트로 마시자니 높은 도수 때문에  좀 빡셀 것 같고 그렇다면 가장 생각하기 쉬운 게 온 더락이다.


하지만 위스키가 얼음같이 차가운 저온과 만나게 되면 특이하게 향이 갇힌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래서 위스키 애호가 분들 중에는 트와이스 업으로 주문하시는 분들이 은근히 많다.


그만큼 이 방식이 위스키 고유의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온 더락이 나쁜 방식은 아니다.

온 더락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만의 독특한 향과 풍미가 있다.

결국 이런 방식 역시 사람마다 취향을 타기 마련이다.


예전 합정 근처에서 6개월 정도 프로젝트할 당시 자주 다녔던 이심 커피가 생각난다.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거기도 이런 방식을 채택하는 거 같다.

비싸긴 해도 주문하는 커피 종류마다 물의 온도라든가 이런 것들이 사장님만의 방식으로 다르게 나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주인장분은 위스키 잔에 대해 진심이었다.

이런 부분에서 그분의 위스키에 대한 철학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비용이 만만치 않으셨을 텐데 손님들이 위스키 향을 좀 더 음미할 수 있도록 흔한 올드패션드 보다는 무조건 글렌캐런 브랜드를 고집했고 마시는 방법에 따른 글렌캐런의 모델 라인업을 죄다 구비해 놨으니 할 말 다한 것이다.


잔의 모델과 모양에 따라서 느껴지는 향과 풍미가 다르다는 것이 그분의 철학이었다.

 


Freddie Redd Quintet - Ole (1961년 음반 Shades Of Redd)


"손님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호칭이 필요하다네. 그래 자네는 어떤 호칭을 사용하고 싶은가? 없으면 내가 정해주긴 하지만 생각하는 게 따로 있는지 궁금하군."


나는 학창 시절부터 David Bowie를 굉장히 좋아했었다.

그는 몇 편의 영화에 출연했는데 대학생이 되고 나서 그가 출연한 영화 중 <전장의 크리스마스>를 제외한 영화를 찾아 감상을 했었다.


그중에 그가 Andy Warhol 역할로 출연했던 Jean-Michel Basquiat의 삶을 다룬 영화 <Basquiat>를 보며 Jean-Michel Basquiat의 예술과 삶을 동경했다.


"바스키아라고 하고 싶습니다."


"바스키아. 난 말일세. 사람들이 선호하는 위스키 브랜드나 스타일, 마시는 방법에 따라 그 사람의 성향이나 성격이 조금은 보인다네."


"그런 걸로 손님들의 성향을 파악할 수가 있는 건가요?"


"물론 100프로 파악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지. 사람들마다 각자의 페르소나가 있기도 하고 생각과는 다른 독특한 취향을 가진 분들도 있기 때문에 전부 파악할 수 있다면 그건 신이 아닐까? 하지만 그래도 오랜 시간 사람들과 마주하고 대화를 하다 보면 얼추 맞더군. 아마 자네도 이 일을 하다 보면 조금씩은 보일 수도 있을 걸세."


"그렇군요."


누군가가 대화를 걸어온다면 두려워하지 말게나.

처음 하다 보면 어떤 대화를 나눠야 할지 난감할 수 있겠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매너로 대하고 모르면 모르다고 인정하고 알면 아는 만큼만 꾸미지 않으면서 마치 물 흐르듯 그대로 받아들이면 대화를 나누는데 수월할 거야.

자네에게 그런 대화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걸세.


외로움을 위스키 한잔에 덜어내고 싶어 방문하던 많은 분들과의 대화가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주었는지는 사실 지금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사람들마다 갖는 다양한 생각들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볼 수 있었던 짧지만 귀중한 시간이었다.


거기에 이 위스키가 그 매개체였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독특한 경험이었다.



Freddie Redd는 뛰어난 작곡 능력을 기반으로 비밥의 본령을 잘 보여주는 실력파 피아니스이다.

특히 마약 문제를 다뤘던 브로드웨이 연극 <The Connection>은 그가 음악을 담당하면서 뛰어난 작곡과 연주를 보여줬다.


장수하면서 오랜 시간 활동을 했고 Blue Note 외에도 수많은 레이블을 통해서 자신의 음반을 발표했지만 생각보다는 재즈 팬들의 입에 그렇게 회자되는 뮤지션은 또 아니었다.


그럼에도 Blue Note에서 남긴 3장의 음반은 분명 보석 같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 하나인 <Shades Of Redd>는 그와 자주 놀던 Jackie McLean - 실제로 <The Connection>에서 Freddie Redd와 Jackie McLean은 이 연극에서 배우로도 출연했다 - 이 당시 Charlie Parker의 영향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적인 연주를 Tina Brooks와 함께 프런트 라인에서 뿜어내고 있다.


하드밥의 진수를 보여주는 Freddie Redd의 탁월한 연주와 Paul Chambers, Louis Hayes로 이어지는 인터플레이는 지금 들어도 참 멋지다.


Label: Blue Note

Title: Shades Of Redd

Released: 1961


Freddie Redd - Piano

Jackie McLean - Alto Saxophone

Tina Brooks - Tenor Saxophone

Paul Chambers - Bass

Louis Hayes - Dru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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