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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기쁨 Mar 11. 2024

도망치는 사람

도망치는 것이 버릇이 돼버린 외로운 사람

무언가로부터 도망쳐 본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다.


한때 나는 항상 도망부터 쳤었다.


그 첫 시작은 재즈 베이시스트로서의 꿈으로부터 도망친 것이다.


꿈을 잃었다는 핑계였을까?


아니면 마음속 부담감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생각보다 쉽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일까?


학업도 마친가지로 패배감이나 자신감의 결여로 '난 안되나 봐'하고 그것을 핑계로 도망쳤다.


그 와중에 학점을 어떻게 유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운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도 버릇이 되는 건지 취업에서도 사실 도망쳤다고 할 수 있다.


은근히 다혈질이라고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거나 복잡한 일에 얽히고 싶지 않아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아니다 싶으면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도망부터 쳤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던 것일까?


하지만 이것을 극복하기 까진 몇 년이 걸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원하지 않았지만 아르바이트에서 비정규직으로 어쩌다 시작한 첫 사회생활에서 극복했다는 것이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실패도 하고 많은 경험을 하면서 나 자신을 격려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날씨가 계속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한 날이다.


하루종일 비가 내리던 그날은 외롭다는 생각보다는 비가 오는 소리가 음악처럼 들렸다고 하면 좀 오버였을까? 


손님이 많았지만 그렇게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동행분들과 대화를 하는 손님들 또는 홀로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때론 대화하는 소리와와 고요 속 그 중간 어디에 있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시간이 흘러 한 두 명씩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하고 한가해지는 시간에 자리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기기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R이 늦은 시간에 가게에 방문했다.


"바스키아. 늦은 시간에 미안해."


"아닙니다."


보통 자정이 되기 이전에 들려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던 R이었는데 웬일인지 그날은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에 방문한 것이다.


가뜩이나 인생이 쓴데 자신에게는 싱글몰트보다는 버번위스키가 좋다고 하신 R이다.


메이커스 마크 애호가로 그날도 역시 그의 취향은 한결같다.


"휴. 비가 이렇게 오면 솔직히 집에 들어가기 싫어지네."


"아니 왜요? 저는 이렇게 비가 오면 빨리 집에 가고 싶어 지던데요. 하하하"


"집에 일찍 가봐야 신세한탄하느라 처량해질 거 같고 뭐 그렇다네. 그나저나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지는 날이네."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내 얘기 좀 들어보게.
내가 보기엔 아무리 봐도 가능성이 없는 프로젝트 기획안을 검토하고 있네.

검토하면서 동료들하고 이야기해 보면 다들 긍정적으로 보는 거 같은데 일이 너무 손댈 게 많다는 거지.
쉽게 될 거 같지도 않고 걸리는 게 너무 많다는 거야.

그런 일은 애초에 하지 않는 게 좋아.
해봐야 뻔하다네.
발을 들이는 순간 고생길도 험하고 성취감이라곤 있어 보이지 않으니 답이 없다는 거지.

그래서 팀장한테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할테니 나는 빼달라고 했지.
그랬더니 나보고 그러더군.

'매사에 그렇게 일을 하면 어쩌자는 건가? 모든 걸 부정적으로만 보나? 시작도 전에 발을 빼겠다는 건가?'
이러더군.

그런 프로젝트가 잘 안 되거나 실패한 걸 너무나 많이 봐서 말일세.
내 입장에서는 부정적으로 볼 수 있는 건데 화부터 내더군.
더 이상 싸우기도 싫고 그래서 난 빠진다고 했지.

기분이 좋지 않더군.
모든 일은 신중하게 진행을 해야 하는데 이 회사는 그게 안된단 말이야.


"음... 그 일을 그냥 하시면 안 되는 건가요?"


"왜 그래야 하는 거지?"


"글세요. 아까 동료들이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만큼 많은 분들이 해당 프로젝트에 대해서 어떤 면에서 같은 공감과 생각을 했다고 볼 수 있다고 보이거든요."


"아니야. 내가 보기엔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성공 못할 거라고 장담하지."


"그러다가 그 일이 성공하면요?"


"이 친구야. 그럴 일 없다니까!"


확신에 찬 그의 대답은 더 이상 이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게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도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난다.


"그나저나 R은 여자친구 안 사귀어요?"


"그것도 귀찮아."


"아니 그것도 귀찮다고 하시면 어쩌십니까?"


"바스키아. 그나저나 내가 최근에 홍콩으로 여행을 갔는데 말이야~"


그렇게 화제를 전환하자 R은 신나서 홍콩 가서 먹은 맛있는 음식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렇게 소소한 일상의 대화를 나누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Hank Mobley - The More I See You (1961년 음반 Roll Call)


사실 R이랑 회사에서 같이 일을 해 볼 일이 없으니 잘 모르겠지만 그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귀찮거나 실패할 거 같다는 두려움이 앞서 모든 일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발을 빼는 게 아닌가 조심스러운 생각을 했었다.


실제로 나 자신도 그러기도 했었고 말이다.


결국 그 일에서 도망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한참 시간이 지나 그가 가게에 방문해서 한동안은 못 올 거 같다고 했다.


"뭐 더 잘됐지. 지방으로 가면 그런 귀찮은 일은 안 할 거 같으니까. 지방살이가 익숙해지면 서울에 자주 올라올 테니 난중에 또 보자고~"


그렇게 부정적으로 바라본 그 프로젝트가 나름 성공하면서 자신의 입지가 좁아졌고 지방으로 인사발령이 났다는 이야기와 함께 가게를 나서는 그의 쓸쓸한 뒷모습이 너무나 외로워 보였다.


무언가로부터 자꾸 도망치기보다는 도전적인 삶 속에서 자신을 찾길 바라며 건배!



Hank Mobley 하면 그 역시 Blue Note를 대표하는 테너 색소폰주자이다.


하지만 그의 연주는 당대의 Sonny Rollins, John Coltrane에 비하면 다소 부드러운 톤으로 더 잘 알려져 있고 대표작으로 재즈 마니아들에게 회자되는 음반이 바로 <Soul Station>이다.


물론 <Peckin' Time>이나 <Workout> 같은 멋진 작품들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의 경우에는 그보다는 <Roll Call>이 먼저 생각난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것은 앨범이 발표된 시기는 1961년이지만 <Soul Station>이 녹음되었던 1960년 초에 <Soul Station> 당시 함께 했던 리듬 섹션과 함께 트럼페터 Freddie Hubbard가 참여하면서 Quintet 구성으로 1960년이 끝나는 시점에 녹음한 것이다.


게다가 <Soul Station>과는 다른 좀 더 역동적이고 하드밥의 본령에 굉장히 충실한 연주를 선보인다.

그 이유에는 아무래도 Freddie Hubbard의 참여 때문이 아닌가 싶다.


프런트 라인에 전면으로 나서면서 이 둘의 시너지가 음반 곳곳에 새겨져 있는데 60년대 초반 하드밥의 진수를 제대로 담아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같은 해에 녹음된 <Soul Station>과 비교해서 감상하는 것도 이 작품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다.


Label: Blue Note

Title: Roll Call

Released: 1961


Hank Mobley - Tenor Saxophone

Freddie Hubbard - Trumpet

Wynton Kelly - Piano

Paul Chambers - Bass

Art Blakey - Dru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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