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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기쁨 Mar 18. 2024

현실에 안주하는 외로운 사람

외로운 사람 #4

하늘도 무언가를 털어내고 싶었던 것일까?


며칠간 비가 내렸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그날은 상쾌한 공기가 맞이하던 날이었다.


참 신기하게도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날씨가 좋다면 날씨가 좋다고 가게에 많은 손님이 방문한다.


동행분들이 많은 날은 대부분 날씨가 아주 청명하다.


어쩌면 이런 좋은 날에 맘에 맞는 사람들과 위스키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기 좋은 듯싶다.


그날은 오랜만에 가게에 T가 들렸다.


T는 가게에 들르면 항상 하는 그만의 시그니쳐 인사가 있다.


"바스키아 오랜만이야!. 오늘도 자네는 여전히 바쁘게 사는구먼. 좀 대충 하지 얼마나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렇게 열심인가?"


손님이 많긴 해도 사실 가게가 그리 크지 않아 열심히 할 것도 없었다.

그저 내 할 일을 할 뿐이다.


"T. 오랜만이에요. 그간 잘 지내셨죠?"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들렸던 T는 그간 지방출장 때문에 오지 못했다고 한다.


낡아 보이는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치고 앉자마자 한숨을 내쉰다.


"지방출장만 갔다 하면 뭐가 그리 바쁜지."

 

"그래도 바쁜 게 좋은 거죠. 그만큼 회사에서 할 일도 많고 회사가 잘된다는 증거 아닌가요?"


"회사가 잘되면 뭐 하나? 회사만 잘되지 내가 잘되는 건 아니잖나?"


위스키를 주문한다.


T는 상당한 위스키 애호가다.

주문하는 위스키 브랜드를 보면 나름 자신의 취향이 확고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위스키를 받으면 마시기 전에 항상 위스키 향을 한동안 음미를 한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코를 위스키 잔에 깊숙이 가져가 향을 음미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향을 음미하는 시간을 어느 정도 갖은 후에야 맛을 음미하는데 그 행동이 상당히 독특했다.


그러더니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 시작했다.


바스키아.

내 입사 동기들은 지금 다들 한 자리씩 꿰차고 있다네.
나는 나한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승진에서 이상하게 밀린다 말이지.

동기들한테 물어보면 다들 똑같은 대답을 한다네.
자신의 할 일을 잘했다는 거야.

근데 나는 뭐 안 그랬나?
나도 내 할 일만 잘해왔는데 말이지.

솔직히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 외롭다는 생각이 들더군.
내 주위를 보면 내 동기들은 저 앞에 먼저 가있고 밑에서는 치고 올라오고 하니 더 외롭더군.

회사를 옮기기도 쉽지 않고 고민일세.


"제가 회사 사정을 잘 모르겠지만 좋은 일이 생기겠죠?"


"뭐... 이 정도면 됐지. 난 내 할 일을 충분히 하고 있으니깐."


고민이 많았는지 그 이후 대화가 끊겼다.


보통 위스키를 즐기고 이런저런 소소한 일상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시간 채 안 되는 시간정도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T였지만 그날은 꽤 오랜 시간 앉아있었다.


근데 이상하게 그날 그의 모습은 상당히 외로워 보였다.


회사에서 자신의 위치와 입사동기들의 위치를 비교하기 시작하니 씁쓸했던 것일까?

그렇게 몇 잔의 위스키를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스키아. 또 보세. 오늘은 좀 오래 앉아있었구먼. 그리고 대충 좀 해. 이 친구야. 그렇게 열심히 잔을 닦아봐야 누가 알아주나?"


"손님은 알아주시지 않을까요? 그래도 손님이 입을 대는 잔이잖아요."


"암튼 나 이만 가겠네."


"T.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리고 힘내세요. 좋은 일 있을 거예요."


T는 아주 시니컬하게 등지고 손 인사를 하면서 가게 문을 나섰다.



Johnny Hodges Septet - Don't Take Your Love From Me (Alternate Take) (1958년 음반 Blues-A-Plenty)


T와 그동안의 대화를 떠올리면 어렴풋이 알게 되는 건 그는 현실에 안주하며 진취적으로 일을 하기보다는 아마도 자신의 일만 딱 마무리하는 스타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모르긴 몰라도 한자리 꿰찼다는 동기들은 나름대로의 목표를 가지고 자신의 할 일 외에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등을 적극적으로 어필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현실에 안주하게 되면 어떤 면에서는 편하다.

IT세계에서는 자신이 잘하는 스킬과 프레임워크만 잘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딱 드는 생각은 이거다.


이 정도면 충분해!


T도 그랬을까?


하지만 IT는 항상 트렌드가 바뀌고 새로운 기술들이 나오기 때문에 현실에 안주하면 뒤쳐진다.


다른 동료들은 새로운 트렌드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면서 자신의 스킬을 발전시키고 있는데 나만 발전이 없다면 나중에는 그들과 일을 함께 하기 힘들어진다.


결국 일에서도 외로워진다.


사실 내가 그랬다가 7년 동안 현실에 안주하며 편하게 다니던 첫 회사를 뛰쳐나와 스타트업으로 선회했다.


나만 뒤처져서 혼자서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외롭다고 느꼈던 것이다.


일에서도 외롭지 않도록 기도하며 건배!



Johnny Hodges 하면 Duke Ellington Orchestra의 간판 알토 주자로 굉장히 잘 알려진 뮤지션이다.


별명도 꽤 많다.

'Rabbit'이라든가 'Bunny', 'Jeep', 'Squatty Roo'는 잘 알려진 별명인데 그의 별명으로 Duke Ellington이 'Jeep's Blues'를 써주기도 했다.


John Coltrane이 처음 재즈씬에 등장할 때 그의 연주를 자신의 롤모델로 삼기도 했고 Charlie Parker 역시 그를 존경할 만큼 빅 밴드 시절에는 최고의 스타이자 연주자였다.


대부분을 Duke Ellington과 협업을 하기도 했고 그의 오케스트라에 몸을 담고 있었지만 다른 쟁쟁한 뮤지션들과 솔로이스트로서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의 대단한 인지도와 실력을 갖췄던 그 조차도 여간 피곤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자신의 개인 활동도 자주 펼쳤는데 그는 소규모 캄보보다는 Sextet, 그러니깐 육중주 이상의 편성을 상당히 좋아했다.


그래서 대부분 Octet이라든가 어느 정도 중규모의 편성을 즐겨했는데 그중에 내가 개인적으로 손에 꼽는 작품은 Septet, 칠중주 편성의 두 작품 <At The Sportpalast, Berlin>와 <Blues-A-Plenty>이다.


이 작품은 특히 들으면 단번에 알 수 있는 개성적인 블로잉을 가진 Ben Webster와의 트럼페터 Roy Eldridge와 케미가 정말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Duke Ellington과 많은 협연을 하기도 했고 'Lush Life', 'Take The 'A' Train'같은 많은 명곡을 남긴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Billy Strayhorn이 참여하기도 했다.


지금 소개하는 곡은 콰르텟 구성으로 연주하는 발라드 곡으로 원래 오리지널 LP에는 수록되지 않다가 CD로 발매될 때 추가된 보너스 트랙으로 alternate take버전이다..


약간은 낡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뭔지 모르게 그 시대의 낭만을 담고 있는 것 같은 음반이라 더 애착이 가는 작품이기도 하다.



Label: Verve

Title: Blues-A-Plenty

Released: 1958


Johnny Hodges - Alto Saxophone

Ben Webster - Tenor Saxophone

Roy Eldridge - Trumpet

Vic Dickenson - Trombone

Billy Strayhorn - Piano

Jimmy Woode - Bass

Sam Woodyard - Dru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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