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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기쁨 Mar 21. 2024

진지하거나 혹은 가볍거나

최소한의 선은 있기 마련이다

어릴 적 아버지가 항상 하시던 말씀이 있으셨다.


"남자라면 무겁고 진지해야 하는 법이야"


그래서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모든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곤 한다.


때론 농담 같은 이야기에도 진지하게 듣다 보면 친구들이 또 항상 하는 이야기는 이거다.


"재미없는 녀석. 너무 진지한 거 아냐. 농담도 그렇게 진지하게 들으면 어떡하냐? 그냥 가볍게 생각하라고!"


그래서 친구들은 날 유머러스하지 못한 넘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내 나름대로 진지함에는 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포함된다.


그리고 그 진지함에는 배려도 포함된다고 나는 본다.


하지만 지금 같은 콘텐츠 시대에 글이나 댓글들을 가끔 보다 보면 '진지충 납셨네'같은 뉘앙스의 댓글이나 덧글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글을 쓰거나 댓글을 단 사람 입장에서는 나름 그래도 생각하고 썼을 텐데 진지하다는 것이 일종의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을 보면 이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까지 들 때가 있다.


무슨 고무줄도 아니고 진지함과 가벼움을 맘대로 오고 갈 수 있을까?


고무줄도 그러다 보면 끊어지기 마련인데 이러다가는 정신 나갈 거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진지하면 진지하다고 가볍다면 가볍다고 하니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까?




그날 가게에는 세라노와 어떤 손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쟈켓을 벗어 의자에 걸쳐놓고 의자에 앉았다.


듣고 싶어서 들은 건 아니지만 대화 내용이 상당히 진지했다.


그 손님의 회사 적응 문제, 여자 문제, 앞으로의 진로등 마치 무슨 상담을 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세라노의 대화는 항상 느끼는 건데 그 진지함과 가벼움 그 사이에서 묘하게 줄타기를 한다는 것이다.


너무 진지해진다 싶으면 약간은 생각할 여지를 줄 수 있는 가벼움으로 반응해 주고 진지하게 접근할 때는 진지하게 접근하지만 그 경계에서 어느 일정 선을 지킨다.


그 가벼움에는 음담패설을 섞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유머러스한 상황을 통해서 분위기를 이끌어 대화를 이어간다. 그런 걸 옆에서 듣다 보면 세라노에게서 신동엽이 떠오르기도 한다.


물론 음담패설이 어감이 그렇긴 하지만 나는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자들끼리 할 수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대화를 하는 상대가 설령 여성이라 할지라도 성향이나 분위기에 따라서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좋은 분위기를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손님은 웃기도 하고 손사래를 치면서 반응도 하면서 마치 그 분위기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대화 중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의 주문을 받고 위스키를 가져다줬는데 여유로움마저 느껴졌다.


얼마나 대화를 했을까?


그 손님이 자리에 일어나서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니 세라노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해요?"


"아! 자주 오는 손님은 아닌데 우리 가게 오래된 단골이야. 고민이 많으신지 이야기가 길어졌네?"


세라노.

나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는데 세라노는 어디 학원 다니셨어요?
예를 들면 대화 스킬 학원 같은 거요?

언제나 세라노와 대화를 하거나 간혹 다른 손님들과 대화하는 걸 들으면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요.

솔직히 저는 음담패설 같은 건 잘 못하겠는데 그것도 상당히 부드럽게 하는 거 보면 놀란다니까요?
어디 그 학원! 저도 좀 소개해주세요!

저 진지해요.
딱 저한테 필요한 스킬이란 말이에요.


"글쎄... 난 학원 같은 건 다닌 적이 없는데?"


"그럼 처음부터 대화를 그리 잘하셨다는 건가요?"


"그건 아니지. 타고난 사람들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스페인에서 오래 있어서 그런 걸 수 있어."


"스페인에 오래 있으면 그럴 수 있다고요? 그게 말이 되는 건가요?"


"하하하. 이 친구 보게나. 스페인에서 보낸 시간이 30년이 훨씬 넘었어. 거기서 회사생활도 10년 넘게 했고 말이야. 그들에게서 배웠다고 하면 답이 될까?"


"흠... 말도 안 돼..."


"스페인은 말이야.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만의 유머감각이 존재하네. 보통 그걸 'Chiste' (치스떼)라고 하지. 어떻게 보면 상당히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어. 하지만 거기에는 분명 한 가지 선을 지켜야 하는 게 있다네. 적절한 상황에서 해야 한다는 거지. 뭐 분위기 파악을 잘해야 한다고 할 수 있겠군. 그러기 위해서는 때론 어떤 대화나 상황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기도 해야 하지."


"그게 가능한가요?"


"그건 잘 모르겠어. 하지만 그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패러디나 풍자에 대해서 상당히 개방적이지. 그래서 그걸 농담으로 받아줄 때는 농담으로 받아주고 같이 웃어주기도 한다네."


"결국 눈치를 잘 봐야 한다는 거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그만큼 그런 상황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공부도 하고 해야 할 거야. 그래야 그런 것들을 우아하게 비꼴 수 있도 있는 거고 그렇겠지. 그래서 때론 진지함 속에서 유머를 찾기도 하지. 그게 그들만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지. 한국에서는 해학이라고 표현하지 않나? 비슷해."


"어렵군요. 결국 세라노가 모든 것에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건가요?"


"진지함과 가벼움은 한 끗 차이야. 그걸 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겠지. 이건 누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건 아닌 거 같네. 많은 사람들과 때론 토론도 하면서 싸워보기도 해야 하지. 하지만 역시 거기에는 지켜야 할 선이 있다네. 화가 나더라도 농담으로 반응할 수 있는 여유도 있어야 하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많은 공부가 필요한 법이네."


"그런 거에 공부씩이나..."


"당연하지. 진지함에 유머를 녹이는 것도 가벼움에 진지함을 녹이는 건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에 맞게 많은 것들에 호기심과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거라네. 스페인에서는 이런 것들이 자연스러웠던 거 같아. 자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여기 까지라네."



J. R. Monterose - Bobbie Pin (1957년 음반 J. R. Monterose)


말이 쉽지 어느 일정 선을 지킨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조금만 잘못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 돼버리는 상황이 되면 난감하기도 하다.


진지함과 가벼움은 한 끗 차이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반대되는 상황에 놓일 수 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말 같기도 하다.


하지만 외로움에 대비되는 반대말을 생각해 보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즐거움?


이 즐거움이 외로움의 반대말이 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본다면 외로움과 즐거움은 한 끗 차이가 될 수 있을까?


아 이거 내가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


외로움의 반대말은 안외로움이라고 가볍게 생각해 보자.



테너 주자 J. R. Monterose는 왠간한 재즈 마이나가 아니면 사실 잘 모를 수 있는 뮤지션이다.


하지만 한 때 일부 재즈 마니아분들에게는 그의 Blue Note에서 발매된 <J. R. Monterose>와 Jaro라는 마이너 레이블에서 발매된 <The Message>는 컬렉션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특히 <The Message>의 경우에는 일본 레이블인 DIW에서 CD로 발매되기 전까지는 LP의 경우 엄청난 고가로 거래되기도 했다.


심지어 리마스터링 LP도 희귀해서 그것도 고가로 거래되었다.


DIW에서는 어처구니없게도 <Straight Ahead>라는 타이틀로 발매되면서 재즈팬들에게 엄청난 욕을 먹었다는 웃지 못할 일화도 있다.


어쨌든 Charles Mingus, Tommy Flanagan, Kenny Dorham 등 당대에 실력파 뮤지션들과 정말 멋진 블로윙을 선사한 테너 주자로 백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드밥의 정수를 제대로 관통하던 뮤지션이다.


Label: Blue Note

Title: J. R. Monterose

Released: 1957


J. R. Monterose - Tenor Saxophone

Ira Sullivan - Trumpet

Horace Silver - Piano

Wilbur Ware - Bass

Philly Joe Jones - Dru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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