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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기쁨 Mar 28. 2024

자신의 감정을 일부러 외면하는 사람

자신의 감정을 아는 것부터 시작

감정이라는 것은 묘하다.


좋은 감정이라면 모르겠지만 우리가 느끼는 많은 것들 중에는 부정적인 것들이 더 많아 보인다.


불쾌함, 걱정, 분노, 실망 같은 것들은 흔히 말하면 나쁜 감정에 속할 것이다.


게다가 이런 감정들은 좋은 감정보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빠르게 전파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러한 감정을 대하는 사람들 역시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러한 감정을 일부러 또는 애써 외면하는 것은 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서 이센스가 불렀던 '독'이라는 가사를 보면 리릭시스트로서 상당히 철학적이다.


외부의 어느 누군가로부터 또는 내부에서 유입되는 나쁜 감정들을 성장을 위한 발판으로 승화시키는 이 가사를 보면 이런 나쁜 감정을 외면하기보다는 정면에서 마주하고 있는 이센스 본인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


하지만 그놈의 대마초가 뭔지...


재즈 베이시스트의 꿈을 접었던 그 순간 끊임없이 자기합리화를 했던 내가 그런 감정을 정면에서 마주하며 실패를 인정하고 대신 재즈 음반 리뷰글을 쓰면서 서서히 극복했다.


물론 꿩대신 닭이라고 그간 들어왔고 공부했던 재즈 음악에 대한 나만의 리뷰를 썼는데 뭐 어떤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떤 계절인지 날씨는 어땠는지 조차도 기억나지 않는 한가한 어느 날 처음 뵙는 손님 한 분이 바에 오셨다.


주문을 마치자마자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나이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지만 빵모자라고 불리는 베레모를 쓴 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독특했다.


게다가 수염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예전 Dizzy Gillespie가 베레모에 선글라스를 착용하면서 당시 패션 스타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게 이 베레모를 쓴 이유는 트럼펫을 불다가 뮤트를 하기 위해 베레모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명 카고 바지 같은 주머니에 대충 구겨 넣기 편한 베레모를 선택했다고 하는데 그 당시에 베레모를 남성이 패션 아이템으로 착용하던 시기는 아니었다. 


군인 이미지가 좀 있기도 하고 오히려 여성분들이 패션 아이템으로 이쁜 베레모를 착용했기 때문이다.


"마치 Dizzy Gillespie가 연상됩니다."


나도 모르게 그분에게 말을 건넸다.


"오! 재즈를 좋아하시는군요. 맞아요. Dizzy Gillespie를 좋아해서 베레모를 쓴 지 오래됐지요."


"그런가요! 사실 베레모하면 뭔지 모르게 예술하는 사람처럼 보여요. 특히 베레모 하면 화가가 떠오르잖아요?"


"하하하하. 그렇죠."


Dizzy Gillepie에 대한 이야기부터 베레모가 어떻게 화가의 상징 같은 모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바텐더님을 여기서 뭐라고 부르나요?"


"단골분들은 저를 바스키아라고 부릅니다."


"그 바스키아? 맞아요? 그런 거 같은데요?"


"네. Jean-Michel Basquiat입니다. 그가 또 재즈를 좋아하기도 했고요."


"아하! 그렇죠!"


아까 화가 말씀하셨는데 사실 저는 화가입니다.

물론 재즈를 좋아하고 특히 Dizzy Gillespie를 좋아합니다만 그 핑계로 베레모를 쓰는 건 아니에요.

꼭 '화가라면 베레모를 써야 하나?'라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나 자신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이 좋아서 어릴 적부터 그림 공부를 하고 대학교를 나오고 꿈에 그리던 화가가 되었죠.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앞으로 화가로서의 고민이나 걱정, 불안감등이 제 자신을 지배하기 시작했다고나 할까요?

먹고는 살아야 하니 홍대에서 크루들과 카페에서 캐리커쳐를 그리면서 돈을 벌고 있지만 이게 저를 더 힘들게 하네요.

그런 거 있잖습니까?
이거 하려고 그동안 노력을 해온 건가? 하는 생각들이요.

물론 캐리커쳐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도 그런 감정들이 저를 지배하고 있으니 하는 일도 회의감이 들기도 하고 뭐 그렇습니다.

베레모를 쓰는 이유는 사실 단순합니다.
회의감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어쨌든 화가라는 아이덴티티를 저에게 부여하기 위해서예요.


"저에게는 상당히 멋진 이야기네요."


"그런가요?"


"화가라고 하셨으면 자신의 감정을 어떤 식으로든 그림으로 표현하실 수 있잖아요?"


"음..."


"저는 작곡을 공부하고 싶네요. 재즈 베이시스트가 꿈이긴 하지만 때론 자신이 느낀 감정이 나쁜 감정이든 좋은 감정이든 곡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베이시스트로서의 제 롤 모델은 Niels-Henning Ørsted Pedersen지만 작곡을 하게 된다면 Steve Swallow를 롤 모델로 삼고 싶네요."


"아하! 그렇군요!"


그분과 자신이 존경하는 화가나 예술 관련 이야기부터 재즈부터 락과 관련된 음악 이야기까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제가 바스키아 캐리커쳐 하나 그려 드려도 될까요?"


"저한테는 영광인데요?"


그러면서 바 안에 있는 메모지에 내 캐리커쳐를 그려주셨다.



Cecil Payne - How Deep Is The Ocean (1956년 음반 Patterns Of Jazz)


그분이 그려준 캐리커쳐를 소중하게 간직했지만 아쉽게도 어디에 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첫 생애 받아 본 나만의 캐리커쳐였는데 받자마자 코팅이라도 할걸 그랬나...


지금도 그분이 들려준 이야기가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크루들과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 어떻게 보면 가장 쉬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화가로서의 고민이나 앞으로의 목표에 대한 불안감을 애써 외면하는 게 차라리 편했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감정을 숨기고 외면하며 그래도 공부했던 기술로 돈을 벌고 있다는 자기합리화가 오히려 자신을 갉아먹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쉬운 것을 택하다 보니 무언가의 벽에 가로막힌 느낌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자신을 가로막는 벽을 부수고 자신의 길을 갈 수 있기를 바라며 건배!



국내외의 재즈씬을 막론하고 바리톤 색소폰 주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Cecil Payne은 비밥 시대에 Charlie Parker, Chet Baker, Dizzy Gillespie, Duke Jordan 등 비밥 시대를 관통했던 실력파 뮤지션들과 많은 협연을 하며 알려진 뮤지션이다.


특히 피아니스트 Randy Weston과 오랜 기간 활동을 해오기도 했다.


그중에 Cecil Payne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하나를 꼽자면 바로 <Pattners Of Jazz> 일 것이다.


전체적으로 LP를 기준으로 A Side는 Quartet편성이고 B Side에서는 Kenny Dorham이 참여한 Quintet구성으로 그의 묵직한 바리톤 색소폰 연주를 즐길 수 있는 소위 명반이라고 할 수 있고 Quartet편성의 'How Deep Is The Ocean'은 정말 매력적인 발라드 연주를 담고 있다.


게다가 그는 Charlie Parker를 굉장히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을 자주 연주하기도 했다.


아쉬운 점은 재즈씬에서 실력에 비해 크게 회자되던 뮤지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Gerry Mulligan보다는 Pepper Adams나 Cecil Payne을 상당히 좋아한다.



Label: Savoy

Title: Patterns Of Jazz

Released: 1956


Cecil Payne - Baritone Saxophone

Kenny Dorham - Trumpet (LP B Side)

Duke Jordan - Piano

Tommy Potter - Bass

Art Taylor - Dru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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