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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기쁨 Apr 01. 2024

배려하는 사람

아름다움의 또 다른 이름

바텐더 일을 하다 보면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때론 이것이 피곤할 때도 있다.

이유는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에도 공감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역지사지라는 말은 결코 쉽지 않다.

그 상황에 놓여보지 못해 봤다면 사실 머릿속으로는 이해한다 해도 가슴으로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감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정신적 에너지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공감을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말에 집중해 줘야 한다.

그만큼 들어주는 것은 상당한 집중을 요한다.

그 사람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말 한마디를 놓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들어주는 것보다 쾌감을 받게 된다.

자신이 감추고 싶었던 또는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말한다는 것은 억압된 마음의 짐도 함께 풀어놓는 행위도 포함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끔은... 바텐더 일을 하면서 나의 고충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Y는 언제나 미소를 띠고 있던 분이셨다.


나이는 30대 후반으로 작은 기업을 이끌어 가고 있는 대표였는데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항상 자리에 앉으면 발베니 18년산을 트와이스 업으로 주문을 하셨다.


스코틀랜드의 스페이사이드를 방문한 적이 있다는 Y는 그곳에 매료되어 스페이사이드 지역의 위스키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중에 발베니를 최고로 치던 분이셨다.


그분과의 대화는 많지 않았다.

가끔 굉장히 짤막하게 이야기를 하곤 담배를 피우시던 분이셨는데 그날따라 담배를 피우지 않고 가만히 나를 쳐다보면 한마디 던지셨다.


"바스키아. 오늘따라 힘들어 보이는데 무슨 일 있어요?"


"그냥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서 그렇게 보이셨을 수도 있겠네요"


"무슨 생각이 그리 많길래 얼굴이 상당히 어두워 보이나요?"


"그렇게 보이셨나요?"


"말해봐요. 고민이 있으면 오늘은 제가 들어주고 싶네요."


아직은 제가 학생이라서 그런 거 같습니다.
꿈이 있긴 한데 문득 고민이 들어서요.

저는 재능보다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음악, 특히 베이시스트로서의 꿈을 꾸면서 항상 의문을 품었던 건 부족한 재능을 노력만으로 그 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였거든요?

그런데 제 꿈을 위해서 잠도 덜 자면서 노력을 한다고 발버둥을 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재능 있는 사람을 뛰어넘을 수 없을 거 같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게 된 지 얼마 안 됐습니다.

제 꿈을 향해 달려간다고 했을 때 과연 저는 제가 생각하는 그런 베이시스트가 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바스키아는 마치 누군가와의 경쟁을 먼저 생각하는 것 같군요?"


"그런가요?"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한다면 세상에 넘쳐나는 뮤지션들을 설명할 수 없을 거 같은데요? 저는 클래식을 좋아합니다. 특히 피아니스트들의 음반을 좋아하는데 다들 엄청나죠."


"그렇겠죠? 특히 클래식은 그게 더 심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근데 수많은 클래식 피아니스트들의 음악을 듣다 보면 흥미로운 게 있죠.
다들 전혀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어느 누구한테 볼 수 없는 것을 다른 누군가가 가지고 있기도 하고 그래요.
그렇다면 지금 바스키아의 말대로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는 피아니스트는 재능이 없는 피아니스트가 되는 걸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그 피아니스트는 그걸 가진 어떤 피아니스트가 가질 수 없는 다른 것을 가지고 있을 수 있거든요.
저는 각자 가지고 있는 재능이 다른 거라고 생각해요.

많은 클래식 피아니스트들의 음반을 들어보면 실제로도 그래요.
자신의 장점을 부각하기 위해 발전시켜 나가죠.

재미있는 것은 클래식이란 음악도 가만히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작곡가의 곡들을 주로 연주할 때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아요.
보통은 그 영역에 대해서 스페셜리스트라고 하죠.

재미있죠?
전 바스키아가 그런 스페셜리스트가 되면 좋겠네요.

사람은 모든 방면에서 최고가 될 수 없어요.
물론... 그런 천재들이 간혹 나오긴 하지만 그건 예외로 쳐야겠죠.

생각해 보세요.
그런 천재가 존재한다고 치면 다른 뮤지션들은 다 재능이 없는 건지.


"그렇군요. 재능이 부족한 게 아니라 전혀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거군요."


"다른 사람의 재능을 부러워하지 마세요. 때론 그 사람이 바스키아만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부러워할 수도 있어요."


"에이~ 그런 일이 있을리가요!"


중요한 건 따라가려고 하는 것보다는 다름을 먼저 인정해야 해요.
따라가려고만 한다면 아마도 바스키아는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할 거예요.
결국 뮤지션으로서 자신의 재능을 찾는데 집중해 보는 게 어떨까요?



Berns/Köbberling/Weiss - Resolve (2009년 음반 Resolve)


어릴 적 참 재미있게 봤던 무협 만화가 있었다.


이름은 <권법소년 용소야>였다.

해적판으로 국내에서 돌다가 정발 되면서 <쿵후보이 친미>로 다시 나오는 거 같은데 그 만화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소림사에 용소야와 같은 나이의 봉술을 잘 다루는 권법 소년이 있었다.


하지만 봉술 대결에서 용소야는 그를 절대 이길 수 없었다.


용소야는 그래서 그 친구의 훈련을 보며 훈련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훈련을 따라 해서는 그를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 식으로는 평생 그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닐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결국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발전시켜 그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하게 된다.


Y가 나에게 했던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재능을 부러워해 그 재능을 따라가려 하다 보면 결국 2류에 머물 수밖에 없을 거라고 했다.


바텐더를 하면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했던 것은 그분과의 대화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손님의 입장에서 오히려 나의 고충을 들어주고 싶었다고 말하는 그의 배려에는 아름다운 모습이 보였다.


배려있는 당신의 아름다움을 위해 건배!



독일 출신의 베이시스트 Pepe Berns는 콘트라 베이스는 물론 일렉 베이스도 엄청나게 잘 치는 뮤지션이다.

단순하게 연주만 잘하는 것이 아니고 뛰어난 작곡 능력과 자신의 밴드를 이끄는 밴드리더로서의 역량도 상당히 뛰어난 뮤지션이기도 하다.


지금은 국내에서는 크게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유럽 내에서는 실력파 뮤지션으로 Heinrich Köbberling, Sebastian Weiss와 함께 매력적인 연주를 선보여 왔다.


개인적으로 그의 음반 중 좋아하는 음반이기도 하다.


사실은 별로 이 음반에 대해 할 말이 많지 않다.

다만 개인적인 취향에 잘 맞는다고 할 수 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무진장 좋은데 좋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것들!


Label: Jazz Haus Musik

Title: Resolve

Released: 2009


Pepe Berns - Bass

Heinrich Köbberling - Drums

Sebastian Weiss - 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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