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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기쁨 Mar 25. 2024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

앞으로 그려가야 하는 것

그날 세라노의 바는 손님으로 북적북적했다.


동행이 있는 손님, 옆 손님과 우연히 스친 인연으로 담소를 나누는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구석에서 홀로 위스키를 마시고 있자니 무언가 내 마음이 허해지는 느낌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는 이런 분위기는 오히려 나를 더 외롭게 만든다.

결국은 나 혼자라는 생각이 더 깊게 파고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하는 일도 불안하다.


이 일을 내가 계속할 수는 있는 것인지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나를 더 외롭게 만든다.


아마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들일 것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취업생들.


자기의 위치에서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수많은 사람들.


그 모든 사람들이 때론 실패에 넘어지고 좌절하기도 하면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겠지만 문득 찾아오는 외로움에 어쩌면 힘들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는 듯 때론 느리게 흐르는 듯 어디까지 왔는지 모를 그때 즈음 세라노가 위스키를 건넨다.


"오늘따라 왜 그래? 잔뜩 분위기를 잡고 있으니 말이야. 내가 한 잔 쏠게."


세라노.

요즘 문득 드는 생각이 제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솔직히 제가 책임감 운운하긴 했지만 저랑은 뭐가 안 맞아요.

게다가 성취감이 있다고 해도 그게 크지 않다는 거예요.
가만히 보면 제가 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위치라는 거예요.

게다가 이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전공에 맞는 일을 하고 있거든요?
저는 공대 출신인데 객관화해서 보면 이 회사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게 신기할 정도예요.

앞으로 미래를 알 수 없으니 막막한 심정이 그지없네요.


"눈을 감아봐!"


뜬금없는 세라노의 요청에 당황하며 말했다.


"아니 갑자기 눈을 감아보라뇨?"


"아니 일단 눈을 감아보라고!"


눈을 감아보라고 세라노가 강권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감으니까 어때?"


눈을 감으면 편하지 않느냐는 대답을 원하시는 것 같아서 청개구리 심보로 대답을 했다.


"어떻긴 뭘 어때요. 앞이 캄캄하지!"


"그래 맞아. 원래 미래라는 건 그렇게 캄캄한 거야!"


너무 당연한 얘기를 표정 변화 없이 아무렇지 않게 하는 세라노가 얄미워서 나도 모르게 약간 흥분하며 대답했다.


"세라노!!!! 장난치지 마세요!"


흥분을 가라앉히고 내 얘기를 잘 들어보게.
많은 사람들은 꼭 자신의 미래를 하얀 캔버스에 그리려고만 하지.
검은 게 뭔가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어.

근데 나는 말일세.
미래는 우리가 알 수 없으니 나는 캄캄하다고 생각한다네.

하얀 캔버스는 앞으로 만들어 낼 자신의 꿈을 그릴 때 쓰는 거라고 생각한다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야.

혹시 자네 Scratch Art (스크래치 아트)라고 아나?
알 거야.
어릴 적에 미술시간에 한 번쯤은 해봤을 테니 말이야.

어쨌든 미래는 눈을 감은 것처럼 앞이 캄캄하다네.
누구도 모른다는 의미야.

하지만 미래를 위해 자신의 발전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사람이라면 다양한 색깔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을 거라는 거야.

그런 사람이라면 앞으로 헤쳐나가기 위해 캄캄한 것을 지우려고 노력하겠지.

그러면 어떻게 되겠나?
밑바탕에 깔린 수많은 땀과 노력의 색깔들이 그 멋진 스크래치 아트처럼 드러날 거라고!

오히려 하얀 캔버스에 그린 것과는 다른 느낌을 줄 거라네.
그렇다면 불안해하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이나 너에게 맞다 싶은 걸 찾아서 공부를 해보라고.

그렇게 걱정만 해봐야 소용없어.
아무 일도 안 일어나니까!


"그렇군요. 제 생각이 너무 짧았네요."


"지금은 그런 고민하지 마. 그냥 지금 니 앞에 놓인 그 위스키나 즐기라고. 내가 특별히 자네가 호기심 가질 만한 걸로 준비한 거야."


나는 항상 글렌피딕 12년산을 즐겼다.

누군가는 가장 무난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내 취향에는 이만한 위스키도 없기 때문이다.


"음 이거 바닐라향이 나는 거 같은데 버번위스키인가요?"


"아니. 그건 아벨라워 14년산이야! 싱글몰트인데 독특하지? 제법 비싼 놈이라구! 특히 나에게 아벨라워 모델 중 14년산은 좀 특별하지. 14년산은 스페인산 최고의 올로로소 셰리 캐스트를 사용한다네."


"음? 아벨라워는 이름만 들어봤지 이렇게 마시는 건 첨이네요. 근데 메뉴에는 못 본 거 같은데요?"


"사실은 말이야 내가 좋아해서 내가 마시려고 몇 개 들여 논 거라 메뉴에 없어. 원래 내가 한잔 하려고 방금 따른 건데 자네가 하도 힘들어하는 거 같아 보여서 기분 좀 전환해 보라고 내 특별히 주는 거야. 즐기라고!"


그때 든 생각은 이런 매력적인 위스키를 메뉴에 넣으면 좋지 않을까였다.


"세라노. 메뉴를 좀 더 늘리면 장사가 더 잘되지 않을까요?"


"아니. 꼭 그렇지만도 않아. 어쨌든 메뉴는 처음 오는 손님도 쉽게 주문할 수 있도록 심플해야 한다는 게 내 철학이니깐!"


"세라노 답군요."


게다가 단골분들이 메뉴에 없는 브랜드를 원하면 나는 그분을 위해 몇 개 가져다 놓곤 한다네.
그러면 단골분들은 자신이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내 가게를 더 찾게 된다네.
장사는 꼭 백화점처럼 다 갖다 놓고 할 필요는 없어.

솔직히 그러면 좋겠지만 관리도 힘들고 비용도 만만찮거든.
장사에 정해진 답은 없지만 내 경우에는 고객의 요청에 맞춰 주면서 그분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준다네.



Charlie Haden - El Ciego (The Blind) (2001년 음반 Nocturne)


집에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어릴 적 재미있어했던 그 스크래치 아트를 떠 올렸다.


스케치북에 형형색색의 크레파스로 바탕을 칠한다.

이 작업은 은근히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해야 하는 작업이다.

그래야 나중에 멋진 색깔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심의 작업을 한 그 위로 검은 크레파스로 전체를 검게 칠한다.


그리고는 바늘 같은 걸로 검은 크레파스를 벗겨내며 그림을 그린다.


그러면 검은색 밑에 드러나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색깔이 드러나는데 그걸 신기해했다.


맘에 안 들면 다시 검은 크레파스로 덧칠을 한다.


내 미래도 그렇게 그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나도 모르게 외로움을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재즈 팬들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 많은 인기를 얻는 Charlie Haden의 <Nocturne>은 Pat Metheny, Joe Lovano, David Sanchez 등 실력파 뮤지션들이 참여한 음반이다.


그중에 피아니스트 Gonzalo Rubalcaba의 연주가 Charlie Haden의 베이스라인과 선율을 이루며 특유의 애상적인 감각을 드러내고 있어 묘한 음악적 정서가 음반 전체를 지배하는 음반이기도 하다.


특히 멕시코의 전설적인 작곡가이자 가수인 Armando Manzanero의 'El Ciego'는 명 바이올린 주자 Federico Britos Ruiz의 연주가 화룡정점을 찍으며 볼레로 특유의 감성을 슬프도록 펼쳐내고 있는 곡으로 래퍼 P-TYPE이 '서시'라는 곡에서 이 음악을 샘플링하면서 더 알려지기도 했다.


Label: Verve

Title: Nocturne

Released: 2001


Charlie Haden - Bass

Federico Britos Ruiz - Violin

Gonzalo Rubalcaba - Piano

Ignacio Berroa - Drums, Percuss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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