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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기쁨 Apr 11. 2024

품위가 느껴지는 사람

멋있는 사람

2000년에 군 제대 이후 수많은 재즈 커뮤니티를 돌아다녔다.


많은 모임들에도 참여하기도 했고 같이 클럽을 다니거나 음감회에 참여하면서 재즈라는 음악에 더 깊게 빠져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제 막 재즈에 입문하면서 호김심에 질문이 많은 사람들 또는 어느 정도 안다 싶으면 아는 척하면서 자신이 재즈 마니아라는 것을 드러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무협장르를 보면 항상 숨은 기인이나 은둔 고수들이 등장하는데 재즈 커뮤니티에도 보면 이런 분들을 간혹 만나게 된다.


아마도 재즈뿐만 아니라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그 어느 형태의 예술이든 장르든 이런 고수들은 어디에나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런 분들과의 대화는 나도 모르게 많은 지식과 지혜를 얻게 된다.


자신이 가진 지식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너무 겸손하지도 않고 대화를 통해서 자신이 아는 것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얼마나 즐거운지 느끼게 된다.


거기에는 공통적으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있다는 것이다.




언제나 바에 들리면 조용하게 고독을 즐기시는 어르신이 계셨다.

E는 언제 들어오셨는지 모르게 조용하게 들어오셔서는 주문을 한다.


"바스키아. 더 글렌리벳 15년산 부탁하네. 항상 마시는 방식으로 말일세."


"E. 언제 오셨어요?"


E는 애연가였다.

재떨이를 건네드리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늘 내가 듣고 싶은 곡이 하나 있네. Roy Eldridge의 'Rockin' Chair' 부탁함세."


언제나 주문을 하시면 신청곡을 요구하셨던 E는 오늘도 여전하다.


"요즘도 재즈 클럽에 자주 다니는지 궁금하네."


"네. 최근에 '올댓재즈'에 다녀왔었습니다."


"그런가? 요즘은 재즈 클럽에 가질 못하겠더군."


"재즈 클럽을요? 어떤 이유 때문인가요?"


요즘은 재즈 클럽에서 연주하는 음악들이 나랑 맞지 않는 거 같아서 그러네.
자네도 알다시피 난 4,50년대의 스타일을 좋아하는 구닥다리 아닌가?

하지만 요즘 재즈 클럽에서 연주되는 곡들은 멋지긴 한데 말이야.
감흥이 없다는 게 크네.

오!
물론 그들의 연주를 폄하하는 건 아니네!
내가 들어도 참 세련되고 멋지거든.

하지만 맛이 없다고 해야 할까?
끝나고 나면 무엇을 연주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게 문젤세.

아직은 기억력이 좋다고 자부하는데 말일세.


"시대가 변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시대가 변했다라... 그렇군. 이제는 영라이언들이 앞으로의 재즈를 이끌어나갈 테니 말이야. 재즈는 그렇게 발전해 왔으니깐 말일세."


"E. 아쉬움이 느껴지는 거 같습니다."


"그렇다고 난 최근 젊은 친구들의 연주를 싫어하진 않는다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을 인정해야겠지. 그렇게 발전해 나가는 것이 아니겠나!"


"하지만 너무 아쉬워하지 마세요. 전 아직도 4, 50년대 음악에 대해 더 알고 싶거든요. E가 오시면 항상 궁금한 게 생겨요."


"허허허. 그런가? 근데 뭐가 그리 궁금한 건가? 자네도 제법 마니아던데?"


그렇게 이어지는 E와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내가 그 시대의 음악을 알게 해주는 힘이 있었다.

현재의 재즈씬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아쉬움도 갖고 있지만 시대의 변화를 인정하시는 그 모습은 소위 '꼰대'와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모르는 부분에 있어서 그분은 나에게 가르친다는 느낌으로 대화를 하시지 않는다.

지식이 많음에도 드러내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그분은 지금 생각해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다.


언제나 열린 마음을 가지셨던 그분과의 대화는 일하는 와중에도 쉼을 줬기 때문이다.



Sonny Rollins - Moritat (1957년 음반 Saxophone Colossus)


최근의 음악 트렌드는 다양한 악기의 발전으로 사운드에 대한 부분이 굉장히 발전하고 있다.


멋있는 사운드 레이어를 만들어내고 쾌감이 느껴지는 음악을 만들기도 한다.

특히 사운드에 대한 아이디어들을 표현해 내기 좋은 시기라는 것이다.


예전 Kenny Barron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요즘의 음악은 머리로 이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이다.

물론 그런 음악도 좋아한다고 말하는 Kenny Barron은 그럼에도 음악은 머리로도 이해할 수 있지만 가슴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게 음악이라고도 말했다.


E는 어쩌면 그런 부분에서 시대의 변화가 아쉬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시는 그 모습을 보고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영라이언에 대해서 내가 좀 더 많이 안다고 판단하셨는지 나한테 물어보시기도 하시면서 찾아 듣기도 하시고 신청곡을 요청하셨던 E는 그들의 연주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시기도 하셨다.


수많은 커뮤니티를 다니다 보면 그런 흐름에 대해서 음악적으로 굉장히 보수적인 분들도 많다.

그런 흐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분에게서는 시대의 흐름과는 상관없는 품위가 느껴졌던 것이다.


나도 저렇게 품위 있게 늙어갈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언제나 멋있는 품위가 느껴지는 당신의 모습에 건배!



재즈 100대 명반이라고 하는 그 리스트에 필히 꼽히는 음반으로 수많은 재즈 팬들에게 Sonny Rollins 하면 언급하는 음반 중 하나가 바로 <Saxophone Colossus>이다.


뭐 이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할까 하는 음반이긴 하지만 그중에 'St. Thomas'는 그의 명 연주를 담은 곡으로 이 곡은 국내의 이정식의 연주뿐만 아니라 Joshua Redman를 비롯해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연주자들이 연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중에 나는 그 곡도 좋지만 이 음반에서는 'Moritat'를 가장 좋아한다.

제목이 저렇긴 하지만 실제로는 'Mack The Knife'다.


이 음반을 수많은 재즈 팬들에게 회자되는 이유는 전체적인 앙상블 때문이다.


하드밥에 대한 완벽한 형태를 보여주는 음반이라고까지 표현하는 음반으로 각 세션들의 놀라운 인터플레이는 거의 교과서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두말하면 잔소리가 될 거 같다.


Label: Prestige

Title: Saxophone Colossus

Released: 1957


Sonny Rollins - Tenor Saxophone

Tommy Flanagan - Piano

Doug Watkins - Bass

Max Roach - Dru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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