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발등에 원인 모를 줄이 생겼다.
왜 생겼지. 뭐 때문에 생겼지.라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사는 게 바빠서? 귀찮아서?
그러다 얼마 전에 패디큐어 하러 갔을 때, 네일아티스트에게 물었다.
“제가 발등에 줄이 생겼는데, 이게 왜 그런 걸까요?”
네일아티스트는 내 발등을 유심히 보더니, 탄 거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탄 자국은 아니라고 말했다.
네일아티스트는 발등을 다시 자세히 보더니,
발에 맞지 않는, 발등을 조이는 신발을 신어서 생긴 거 같은데,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으니 회사에서 신는 슬리퍼가 머리를 스쳤다.
‘그 신발 때문인가? 그 신발에 내 발에 안 맞았나?’
그렇게 주말이 지나 출근해서 그 슬리퍼를 신었더니..
그때부터 발등이 조여 아프기 시작했다.
신발이 내 발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인식하기 전까지는 발등이 조여 아프다는 느낌을 못 받고 있다가 이것을 인식하기 시작하고 나니, 발등이 못 견디게 아팠다.
이걸 내가 지난 몇 개월 동안 신고 다녔으니, 발등에 줄이 안 가겠냔 말이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나는 도대체 나에 대해서 얼마나 무감각했던 거지?
발등에 생긴 줄을 보고도 왜 생겼지라는 생각만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릴 만큼.
피부에 자국이 남을 만큼 발등을 꽉 조이는 신발을 신고도 아픈 것을 못 느낄 만큼.
나는 나에게 이 정도로 무감각한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를 돌보는 방법을 모르고 살아왔다.
남에게 보이는 부분에만 신경을 쓰고, 발등처럼 나에게만 보이는 부분에는 등한시하며 살아온 거다.
나는 얼마나 많은 부분을 이런 식으로 살아왔을까.
지금이라도 나를 조금 더 들여다봐야겠다.
작은 불편함, 사소한 변화,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신호들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다른 사람에게는 한없이 세심했던 내가, 정작 나에게는 무심했던 시간을 만회하듯
오늘은 내 발을, 내 몸을, 내 마음을 한 번 더 바라본다.
나를 돌보는 건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발등 위 작은 줄 하나를 알아차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걸 이제야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