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아들에게,
네가 초등학생이 된 첫 주 내내 엄마의 가슴이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모르겠네. 나는 잔뜩 긴장했지만 너는 첫 방과 후 수업을 듣고 너무 재미있었다며 다음 주가 기대된다고 했지. 창의과학 시간이었는데, 자석의 인력과 척력을 이용해서 말 장난감 같은 걸 만들어 왔어. 중앙이 뚫린 동그란 자석 네 개를 막대에 같은 극끼리 마주 보게 끼우니 스프링이라도 단 것처럼 띠용 띠용 흔들렸지. 엄마까지 재미있었어. 아침엔 그 자석들을 빼더니 알까기를 하는데, 모두 같은 극이 천장을 보게 두면 자석끼리 부딪히지 않고 휘어서 비켜간다고 너는 설명했어. 미술과 컴퓨터 시간엔 무얼 배울지 기대된다고도 했어.
학교는 과연 유치원과는 달랐어. 6교시가 있는 날도 있었지. (월화수목금이 4-5-4-6-4 교시야) 넌 6교시는 조금 힘들었다고 했지. 그만큼 진득하게 앉아서 뭔가를 배우는 게 처음이라 그랬겠지. 교과서는 무려 10권이고, 그걸 1년 안에 다 배울 수나 있는 거냐며 걱정했어. 즐겁지만 긴장도 많이 해서 피곤했던지 어제 너는 예상보다 일찍 잠들었지. 수요일엔 평일 영상 쿠폰 1시간권을 써보니 학교 다녀와서 잠들기 전까지 시간에 쫓기는 느낌이라며 영상 쿠폰을 주말로 몰아서 쓰기로 했지. 지금까진 평일 이틀과 주말로 하루에 1시간짜리 영쿠를(영상 쿠폰을 넌 꼭 줄여서 말하지) 썼지만, 이젠 주말 이틀간 2시간씩 쓰는 거야. 엄마는 전적으로 동의했어. 알러지성 비염 때문에 코세척을 하기로 한 날에는 코세척이 너무 하기 싫으니까, 싫은 것부터 해야겠다길래 엄마가 박수를 쳐줬어. 저절로 박수가 나오던데? 엄마가 8살일 때보다 네가 훨씬 멋지다. 지금까지 시간을 써오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날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어. 아무래도 너에게 맞는 일과를 확실히 알게 되기 전까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지내봐야 할 것 같아.
너만 쫓기는 느낌이 아니었어. 엄마도 그랬어. 가방 챙기는데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고, 중간에 딴짓은 왜 이렇게 하는 거니? 직접 가방 챙기기 해보는데 자꾸 그 자석을 가지고 노니까 처음 봤을 땐 재밌어 보이던 자석이, 아, 어찌나 꼴 보기 싫던지. 표정이 굳어지더라고. 이래서 선생님이 미리 경고를 주셨나? 미리 내다보시고? 학부모 설명회 때 담임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 아이들이 긴장도 하고 매우 피곤해할 테니 "소리 지르기 금지, 야단 금지"라고.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네가 무서워하는 얼굴이 되기 시작할 때 엄마가 아차! 하고 정신 차렸어. 엄마 심호흡 좀 할게. 목소리가 커져서 네가 무서웠겠다. 그렇게 말하고 심호흡을 좀 했어. 그래서 네가 책상에 앉았을 때 시선이 바로 닿는 곳에 "엄마는 소리 지르기, 야단 금지"라고 써놨어. 수시로 보고 있어.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엔 말도 말이지만 비언어적인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기억했던 것 같아. 표정을 풀고, 심호흡을 하고, 눈길 부드럽게 바꾸고, 소리 지르기 금지, 야단 금지. 엄마가 버럭으로 가면 너도 삐딱으로 갔는데, 엄마가 차분하게 말하면 넌 다시 내게 감겨왔지. 아, 역시, 내가 정신을 차리는 게 중요하겠더라. 아무래도 밖에 나가서 걸어야겠더라고. 태권도에 너를 들여보내고 난 강변을 걸었어. 가는 길에 나도 모르게 들어가 보고 싶어진 곳이 있었는데, 그게 어디게?
성당.
빈 성당에 잠시 들어가 앉았어. 네 왕할머니 (엄마의 외할머니)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셨지. 성당에 들어가니 몇 해 전 돌아가신 할머니 품속에 들어간 것 같아서 괜히 울컥하더라. 엄마는 할머니 사랑을 많이 받았거든. 우리 할머니도 큰 이모를 학교에 보낼 때 이렇게 긴장하셨을까? 생각해 봤는데, 그 생각을 다 마치기도 전에 답을 알았지. 내 할머니는 그런 긴장 따위 안 하셨을 분이야. 흔들림 없는 장군님 같은 분이셨는데. 울컥한 마음이 싹 사라지더라. 혼자석 픽, 웃음이 샜지. 우리 할머니가 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먼저 편안해지면, 너도 편안해질 거야. 넌 이미 잘하고 있고, 아빠도 잘하고 있어. 엄마도 잘, 편안해져 볼게. 엄마는 왕할머니랑 달리 장군감은 아니지만, 예민하고 긴장을 많이 하는 사람은 긴장을 푸는 확실한 방법을 아니까 괜찮아. 많이 걸으면 돼.
성당에서 본 기도문에 마음에 드는 기도문이 있어서 남겨둬.
<초를 봉헌하며 드리는 기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님
제가 여기 밝히는 촛불이
저의 어려움들 속에서 저를 이끄는
빛이 되게 하소서
저의 모든 이기심과 자만심과 허물을
태우는 불이 되게 하소서
저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불꽃이게 하소서
이 촛불에 저를 담아 당신께 봉헌하며
도우심을 청하오니
오늘 저의 모든 행위가 기도이게 도와주소서
사랑해.
넌 늘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아이야.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