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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복과 털양말 Apr 09. 2024

침대에 침이

네가 같이 웃을 수 있게

  아들에게,     


  오늘 너는 꽤 늦은 시간까지 유치원에 있기로 했지. 그건 네 유치원 친구네 엄마의 부탁이었어. 친구 엄마가 오늘 늦게 데리러 갈 상황이 되었는데, 네 친구가 자기만 혼자 유치원에 남는다고 투덜대서 혹시 너도 함께 남아줄 수 있냐고 물어보시더라. 그 말에 엄마가 네게 물어보니 넌 그렇게 하겠다고 했지. 너로선 늦게까지 유치원에 남아서 친구랑 놀 수 있으니 좋고, 네 친구는 혼자 남지 않아도 되니 좋고, 엄마는 혼자만의 시간을 좀 더 가질 수 있어 좋고, 친구 엄마는 안심하고 일을 볼 수 있어 좋지. 게다가 너는 요즘 유치원에서의 시간이 재미있다고 조금 늦게 데리러 오라고 하기도 했잖아. 엄마는 네가 잘 적응하고 있어서 크게 안도하고 지내고 있어. 네가 즐거울 만한 시간이라면 최대한 내줘야지.      


  잘 기억나지 않네. 며칠 전 말이야. 내가 너에게 뭐라고 했더라. 네가 듣고 화가 나거나 불만이 생겼을 말이니, 분명 너에게 뭔가를 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겠지. 그리고 방에서 나갔다가 돌아와 보니 너는 엄마가 눕는 자리에 침을 뱉어놓고 돌아누워 있었어. 그러고 보니 최근에 네가 그런 행동을 했어. 카시트나 마룻바닥이나 식탁에 침을 뱉었어. 그 이야기를 네 아빠에게 하니 ‘한창 그럴 때지.’ 하고 말더라.      


  외할머니는 엄하신 분이었고, 엄마는 그게 갑갑했어. 그런데 엄마가 너에게 똑같이 해버릴까 봐, 늘 그게 무서웠어. 작년에 육아상담센터에서 아이의 기질검사를 했었어. 거기엔 부모의 육아 평가도 포함되어 있었어. 거기 선생님이 하신 말씀에 엄마는 크게 충격을 크게 받았지. 칭찬이 적고, 아이를 평가하고, 엄마라기보다는 과외선생 같다고 했거든. 아이가 엄마에게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게 너무 보인다고. 애가 엄마한테 맞추면 어떡하냐고. 엄마가 어릴 때가 생각나더라. 칭찬받고 싶었고, 부모의 냉정한 평가가 무서웠지. 엄한 선생님 밑에서 크고 싶지 않았어. 외할머니는 외할머니의 방식대로 엄마를 사랑했겠지만, 사람의 마음은 다 다르고 그 속을 헤아리기는 어려운 법이니까. 너도 그랬겠지? 나처럼 서러웠을까? 생각하니 미안해서 눈물이 줄줄 흐르더라고. 나는 너를 누구보다 사랑하는데, 제대로 사랑해주지 않고 있어서 어찌나 후회되던지. 엄마는 그날 예정되었던 상담 시간을 훌쩍 넘기고 훌쩍대며 나왔어.     

  가끔은 널 보면서 내가 널 키우는 건지 어린 시절의 나를 키우는 건지 우스울 때가 있어. 저건 내가 싫어했던 거니까, 너에게도 하지 말아야지. 내가 원했던 것들, 네게도 해줘야지. 그런 생각을 많이 했지. 내가 갖고 싶었던 엄마가 되어줘야지 생각했는데, 내가 가진 엄마처럼 널 대할 때가 더 많았겠지. 내 엄마처럼 널 대하고, 어린 나를 끌어안듯이 너를 품에 꼭 안는 날들이 많았어. 그러나 너는 나와 다른 별개의 사람이지. 나를 네게 과도하게 투영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 이미 오래전인데,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어. 


  너에게 너무 딱딱한 기준을 들이대지 말고 좀 더 너그러워져야겠다는 대화를 아빠와 나누었어. 침을 뱉은 네게 호랑이처럼 호령하지 않고, 하면 안 되는 건 확실히 가르쳐주면서 적당히 눈도 감아주고 네가 자라는 동안 이렇다 저렇다 첨언하지 않고 버텨줘야지. 너는 여리고, 사랑이 넘치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여실히 드러나고, 엄마아빠 말을 잘 듣는 아이니까. (유치원 선생님도 널 며칠 지켜보고 바른생활 어린이라고 부르실 정도지.) 엄마의 울타리가 너무 강하고 무시무시하지 않게 해 볼게. 


  웃는 모습을 보여야겠다. 네가 같이 웃을 수 있게.


  흠 많고 실수도 많은 엄마지만, 너를 사랑해.

  이따 만나.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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